와인/포도 품종

[스페인] 아이렌 - 아주 넓은 지역에서 재배하는 스페인 토종 포도 (재업)

까브드맹 2023. 12. 26. 20:12

아이렌 포도와 잎, 나무 형태의 모습

아이렌(Airén)은 스페인에서 대중적인 화이트 와인을 만들 때 많이 사용하는 유럽종 포도입니다. 수입된 저렴한 스페인 화이트 와인은 대부분 아이렌으로 만든 것이죠. 수확량은 많지만 와인은 개성 없이 밋밋해서 오래된 올드 바인(old vine)에서 수확한 포도가 아니라면 대부분 브랜디나 건포도 제조용으로 사용됩니다.

1. 아이렌의 특성

스페인 토종 포도로 스페인의 뜨거운 햇볕에서 포도를 보호하기 위해 나무의 키를 낮게 하고 덩굴을 위에 올린 형태로 재배합니다. 가뭄에 특히 강해서 스페인 남부의 건조한 기후에서 잘 자라죠.

2004년 기준으로 아이렌 포도밭의 총면적은 약 306,000헥타르로 세계에서 가장 넓었고, 수확량은 스페인 전체 포도 수확량의 30%를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그 후 재배 면적이 점점 줄어들어서 2015년 기준으로 218,000헥타르가 되었지만, 스페인에서는 뗌프라니요(Tempranillo)에 이어서 재배 면적 2위를 차지할 만큼 여전히 많이 기르고 있습니다.

아이렌 재배지의 면적은 넓지만 덥고 건조한 지역에서 주로 기르다 보니 1헥타르당 나무 숫자는 평균 1,500그루 정도로 매우 낮습니다. 그래서 다른 포도와 같은 수의 묘목을 심으려면 훨씬 넓은 땅이 필요하죠.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이나 메를로(Merlot) 같은 포도는 프랑스 보르도를 기준으로 1헥타르당 평균 6,000~9,000그루 정도 심으므로 재배하는 나무 숫자를 따져보면 아이렌보다 더 많습니다.

아이렌 와인은 달지 않고 드라이합니다. 바디는 라이트에서 미디엄 정도로 가볍고, 산도도 낮은 편입니다. 알코올 도수는 아주 좋은 것은 13.5%까지 올라가지만, 대부분 11%~12% 정도입니다. 아이렌만 사용해서 와인을 만들면 가볍고 밋밋하기 때문에 종종 비우라(Viura)와 베르데호(Verdejo),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같은 포도를 함께 넣어서 더 무게감 있고 균형 잡힌 와인을 만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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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이렌의 역사

아이렌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615년 가브리엘 알론소 데 에레라(Gabriel Alonso de Herrera)가 쓴 <일반 농업(Agricultura General)>이라는 저작입니다. 그는 아이렌으로 만든 와인을 마셔보진 않았지만, 풍미가 강하지도 바디가 풍부하지도 않으며, 건포도로 만드는 것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

1807년 록사스 클레멘테(Roxas Clemente)는 '라이렌(Layrén)' 포도에 관해 기술했습니다. 그는 만투오 라에렌(Mantúo Laerén)이나 라에렌 데 레이(Laerén de Rey)로도 알려진 라이렌 포도의 특성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적었습니다.

'희끄무레하게 매우 딱딱한 싹, 털이 매우 많은 노란 빛이 도는 녹색 잎, 단단하게 뭉친 포도알, 알이 크고 늦게 익으며 눈에 띄는 잎맥.'

록사스 클레멘테는 산루카(Sanlúcar)와 헤레즈(Xerez), 트레부에나(Trebujena), 아르코스(Arcos), 에스페라(Espera), 모구에르(Moguer), 타리파(Tarifa), 파사레테(Paxarete)에서 라이렌을 재배한다고 기술했습니다. 또한 발데페냐스(Valdepeñas)와 만자나레스(Manzanares)에서도 재배하며 훌륭한 증류주 생산을 위한 뛰어난 와인을 만들 수 있다고 언급했죠.

1885년 아벨라(Abela)는 만투오 라에렌(Mantúo Laerén) 포도가 코르도바(Córdoba)에서 만투오 라이렌으로 불리며 재배되고, 까세레스(Cáceres)와 시우다드 레알(Ciudad Real), 말라가(Málaga), 세비야(Sevilla), 톨레도(Toledo) 주변 지역에서도 기른다고 밝혔습니다.

 

 

1914년 가르시아 데 로스 살모네스(García de los Salmones)는 아래의 지역에서 라이렌을 재배한다고 했습니다.

'마드리드(Madrid), 톨레도주의 비야카냐스(Villacañas), 쿠엥카(Cuenca)주의 타란콘(Tarancón), 시우다드 레알주의 캄포 데 크립타나(Campo de Criptana), 바다호스(Badajoz )주의 프레제날 데 라 시에라(Frejenal de la Sierra), 그라나다(Granada)주의 몬테프리오(Montefrío), 하엔(Jaén)주의 바에사(Baeza), 말라가주의 코인(Coin), 알메리아(Almería )주의 피냐나(Fiñana), 세비야(Sevilla)주의 카잘라 데 라 시에라(Cazalla de la Sierra), 카디즈(Cádiz )주의 에스페라(Espera), 코르도바'

그는 아이렌이란 품종명을 처음으로 언급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1954년 마르실라(Marcilla)는 아이렌을 라만차(La Mancha)에서 거의 독점적으로 재배하는 전형적인 포도로 정의하면서 아래와 같이 특성을 서술했습니다.

'땅을 기어가듯 덩굴이 자라는 포도나무, 첫 번째 새싹을 포함하여 매우 잘 자라며 짧은 가지치기가 가능하다. 포도송이는 크고 포도알이 촘촘하다.'

아이렌 와인에 대해선 라만차에서 일반적이진 않지만, 으깬 포도(must)즙으로 훌륭한 테이블 와인을 만들 수 있으며 뛰어나고 독특한 맛을 가진 화이트 와인이 된다고 했죠. 와인의 평균 알코올 함량은 12~14%이며, 작황이 좋은 해에는 15%까지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1965년 페르난데즈 데 보바디야(Fernández de Bobadilla)는 만투오 라에렌의 농업적 가치에 대해 늦게 익는 만생종으로 수송하기 좋지만, 으깬 포도즙은 아주 달지 않고 와인 품질은 낮다고 적었습니다.

 

 

1996년 젠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은 <와인 양조를 위한 포도 가이드(Guía de Uvas para Vinificación)>에서 아이렌 포도밭이 423,100헥타르로 세계에서 가장 넓고 스페인에서 가장 흔한 품종이라고 했습니다. 발데페냐스와 라만차에서 절대적으로 많으며, 스페인 남부에서는 라이렌으로 알려져 있다고 썼죠.

아이렌이 스페인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품종이 된 것은 20세기 중반의 프랑코 정권 시기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스페인은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해결책 중 하나로 프랑스와 브랜디 수출 계약을 맺었죠. 아이렌은 수확량이 매우 많고, 개성이 적은 중성적인 와인을 만들 수 있으며, 당도도 높은 편이기에 브랜디를 만들기 좋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렌의 대량 재배가 시작되었습니다.

1997년 호세 페닌(José Peñín)은 <세계의 균주(Cepas del Mundo)>라는 저서에서 스페인에서 자라는 모든 포도 품종의 2/3가 라만차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면서 아이렌 역시 라만차에서 기원했다고 썼습니다. 호세 페닌은 아이렌 와인이 포도 품질보다 양조 과정의 잘못으로 저평가되었다고 하면서 점토 항아리인 테라 코타(terra cotta)에서 발효하는 전통 양조법을 문제 삼았습니다. 게다가 대부분 다른 포도와 섞어서 와인을 만들거나 증류주를 위해 쓰였다고 했죠.

농업적 가치에 대해선 라만차의 해발 최대 700m 고지대에서 혹독하고 건조한 기후와 석회질 토양에 완벽하게 적응했으며 가뭄과 질병에 매우 강한 품종이라고 적었습니다.

3. 아이렌 재배지

1) 스페인

아이렌 포도 재배지 지도

스페인 와인법에서는 아이렌을 아래 지역의 와인을 만들 때 사용할 수 있는 포도로 규정합니다.

① 알리칸테(Alicante)

② 부야스(Bullas)

후미야(Jumilla)

④ 라만차

⑤ 발데페냐스

⑥ 비노스 데 마드리드(Vinos de Madrid)

⑦ 몬티야-모리레스(Montilla-Moriles) : 라이렌(Lairén)이란 이름으로 허용

발데페냐스와 라만차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고 시우다드 레알과 톨레도에서도 많은 양을 생산합니다. 후미야 북쪽의 알바세테(Albacete)와 쿠엥카에서도 위의 지역보다 조금 덜할 뿐이지 꽤 많은 양을 재배하죠. 또한 마드리드와 아주 남쪽의 몬티야-모릴레스(Montilla-Moriles)에서도 상당한 양을 재배합니다.

 

 

스페인에서 아이렌은 여전히 중요한 포도로 비노스 데 마드리드의 주요 품종이며 브랜디 제조에 사용하는 화이트 와인용 포도로 많이 쓰입니다. 스페인산 브랜디에서 아이렌이 차지하는 위치는 프랑스 코냑(Cognac)에서 재배하며 신맛이 강하고 알코올 도수가 낮게 나오는 우니 블랑(Ugni Blanc) 포도와 같습니다. 둘 다 와인으로 만들면 별 볼 일 없지만, 증류해서 브랜디로 만들기엔 아주 좋은 포도죠. 우니 블랑도 판매하는 와인은 별로 볼 수 없지만, 재배 면적은 프랑스에서 2위를 차지하는 점이 아이렌과 비슷합니다.

스페인에선 많은 수의 아이렌 포도나무를 뽑아버리고 뗌프라니요 같은 다양한 레드 와인용 포도나무를 심고 있습니다. 아이렌 와인이 밋밋하고 개성 없긴 하지만, 이것이 아이렌 포도밭을 없애는 주요한 이유는 아닙니다. 스페인에서도 와인 소비의 흐름이 레드 와인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이죠

2) 기타 지역

프랑스 남부에 약간의 아이렌 포도밭이 있고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도 소량 재배합니다.

4. 아이렌 와인의 향과 맛

아이렌 와인의 주요 향 중 하나인 푸른 사과

아이렌 와인에선 푸른 사과, 레몬과 오렌지, 자몽 같은 시트러스 과일, 바나나, 파인애플, 장미 향이 나옵니다.

호세 페닌은 아이렌 와인은 일반적으로 창백한 노란색을 띠고 잘 익은 바나나와 파인애플, 자몽 향을 풍기며, 산도가 부족하지만 꽤 맛있고 상쾌하면서 우아하진 않아도 마시기 쉬운 와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가장 좋은 와인은 마신 후에 불쾌한 느낌을 주지 않고 조화로운 맛과 함께 신선한 장미 향이 남는다고 했습니다.

5. 아이렌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

닭고기와 칠면조 같은 가금류 요리와 흰살생선 요리에 잘 맞습니다. 새우와 조개, 굴 같은 해산물도 좋은 안주가 되죠. 다양한 샐러드와 함께 가볍게 즐길 수 있으며 각종 채소 요리와 어울립니다. 스페인에선 가스파초(gazpacho) 같은 차가운 수프와 함께 마십니다. 치즈는 라만차 지역의 전통 치즈인 만체고(manchego)가 좋습니다.

6. 아이렌의 다른 이름

아이렌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 아이덴(Aiden) : 알바세테

• 라이렌 : 코르도바

• 만체가(Manchega) : 알바세테

• 발데페네라(Valdepeñera) 혹은 발데페냐스 : 시우다드 레알

• 포르카얏(Forcayat) : 까탈루냐(Catal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