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Château Cos d'Estournel)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은 프랑스 보르도 매독 지역의 쌩-테스테프(Saint‐Estèphe) 마을에서 가장 훌륭한 와인을 생산하는 샤토와 그 샤토를 대표하는 와인 이름입니다. 대단히 화려하고 동양적인 모습 덕분에 보르도의 타지마할로 불리며, 보르도 10대 와인 중 하나로 평가받죠.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 러시아의 많은 짜르(Tsar)들도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의 와인을 즐겨 마셨다고 합니다.
꼬스 데스투르넬의 이름에서 "Cos"의 정확한 발음은 "꼬[ko]"가 아니라 "꼬스[kos]"입니다. 이 Cos는 동부 지중해 연안의 섬 꼬스(Cos)나 수도원, 교회와 관련 있는 담으로 둘려 싸인 밭(Clos)을 뜻하는 단어와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옛날 가스꼬뉴(Gascon/Gascogne)에서 자갈 언덕의 준말로 사용한 "꼬(Caux)"와 어원이 같은 단어이죠. 그래서 아직까지 남은 프랑스 남서 지방의 관습대로 단어의 끝자인 "s"를 발음합니다. 자갈 언덕은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의 포도밭 상태를 아주 잘 묘사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이름의 뒷부분인 "d'Estournel"은 1700년대 후반에 쌩-테스테프 마을 남부의 포도밭을 소유한 데스투르넬 가문의 이름을 가져와서 붙인 것입니다. 그래서 "Cos d'Estournel"은 "꼬 데스투르넬"이 아니라 "꼬스 데스투르넬"로 철자 전부를 끝까지 발음해야 하죠.
2.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의 역사
샤토 꼬스 데스뚜르넬은 보르도에서 가장 오래된 샤토 가운데 하나입니다. 보르도의 주요 지주이면서 대주교였던 베르트랑 드 고트가 1305년 교황 클레망 5세로 등극하면서 이 와이너리에 그의 이름이 붙었던 기록도 있죠.
데스투르넬 가문은 원래 꺄오르(Cahors) 와인을 생산하는 프랑스 남부 로(Lot) 지방의 케르시(Quercy)에 있었습니다. 1791년 기이 데스투르넬(Guy d'Estournel)이 죽으면서 꼬스의 포도원은 당시 29살인 루이 갸스파르 데스투르넬(Louis Gaspard d'Estournel)에게 상속되었습니다. 당시 쌩-테스테프에는 포도원이 거의 없었으나 꼬스 데스투르넬은 메독의 다른 포도원 같지 않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죠.
1811년 여름에 갸스파르는 소유지의 언덕에서 남쪽의 샤토 라피트-로칠드(Château Lafite-Rothschild)를 바라보며 라피트의 명성과 토양, 위치를 자신의 샤토와 비교해 보고 "꼬스 데스투르넬"의 가능성을 확신했습니다. 자기 포도원의 포도가 매우 뛰어나다는 걸 깨달은 갸스파르는 좋은 와인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이로부터 특급 포도원인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의 역사가 시작되었죠.
갸스파르는 1821년부터 1847년까지 모든 재원과 정열을 바쳐서 포도밭을 14헥타르에서 58헥타르로 늘립니다. 또한 와인 양조장과 지하 저장고를 전면 보수하면서 아랍과 인도, 극동 여행에서 받은 감명을 따라 동양풍의 아치(Arch)와 망루, 중국식의 사암 탑으로 건물을 장식했죠. 뽀이약(Pauillac)에서 쌩-테스테프로 이어지는 주요 도로에 건설한 개선문에는 데스투르넬 가문의 문장과 모토인 "항상 충실한(Semper Fidelis)"이란 글귀를 새겨 넣었습니다. 다만 갸스파르는 포미에에 훌륭한 저택을 갖고 있었기에 샤토에 거주용 건물은 건축하지 않았습니다.
뛰어난 포도밭과 양조 시설, 저장 창고를 만든 갸스파르는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과 와인의 명성을 널리 알리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그의 유산과 건강의 희생을 불러와 그는 재산을 매각이라는 압력을 받게 됩니다. 1852년 런던의 은행가인 찰스 세실 마틴(Charles Cecil Martyn)은 1,150,000 프랑에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을 샀습니다. 이 거래에는 샤토 포미(Château Pomys), 샤토 꼬스 라보리(Château Cos-Labory)와 다른 작은 재배지들도 포함되었죠. 이 금액은 몇 개월 후 무통 로칠드가 1,125,000 프랑에 매각된 것과 비교하면 비교적 좋은 거래였습니다.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은 팔렸지만, 마르틴은 갸스파르가 그토록 사랑했던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에 계속 머무르도록 허락했습니다. 갸스파르는 이듬해 91세의 나이로 샤토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비록 가진 것 없이 세상을 떠났지만, 갸스파르가 쏟아부은 노력은 그가 죽은 2년 후인 1855년에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이 "1855년 공식 보르도 와인 등급제(Bordeaux Wine Official Classification of 1855)"에서 그랑 크뤼 2등급(Deuxiemes Crus)으로 분류되면서 보답을 받게 되죠.
마르틴은 1869년까지 부재지주이자 단순 소유주로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을 관리했습니다. 그가 꼬스 데스투르넬을 에라주(Errazu)에게 넘겼을 때 1852년에 함께 계약했던 샤토 꼬스 라보리는 1860년에 이미 다른 사람에게 처분된 후였습니다. 에라주는 스페인 바스크(Basque) 주의 귀족 출신으로 상류 사회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는 성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의 소유권은 1889년에 보르도의 호스타인(Hostein)에게 넘어갔다가 1894년에 다시 호스타인의 사위이며 샤토 몽로즈의 소유주인 루이 샤르 모리에(Louis Charmolue)에게 이전되었죠.
1917년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은 보르도의 유명 네고시앙(Négociant)인 지네스떼의 페르낭 지네스떼(Fernand Ginestet)에게 다시 한번 매각됩니다. 이때 이웃한 샤토 마부제(Château Marbuzet)도 함께 매각되어 오늘날까지 두 샤토는 자매 샤토로 한 가문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1949년 이후 유명한 양조학자인 에밀 뻬이노(Émile Peynaud) 교수를 영입해 품질 향상을 꾀했고, 그 결과 균일한 품질의 훌륭한 와인을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가장 포도밭인 뻬싹-딸랑스를 재정비하면서 와인 품질이 한 단계 높아젔다는 평가를 받게 되죠.
1970년에 지네스테 가문의 재산이 분할되면서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은 페르낭 지네스테의 손자들인 장 마리(Jean Marie)와 이브(Yves), 브뤼노 프라(Bruno Prats) 형제들에게 상속됩니다. 그러나 프라가의 형제들은 1998년 10월 초에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과 네고시앙 와인 브랜드인 메트르 데스투르넬(Maitre d'Estournel), 자매 샤토인 샤토 마부제를 보르도의 와인 회사인 베르나르 따이앙(Bernard Taillan)과 아르헨티나의 투자 그룹에게 1억 1천5백만 불을 받고 팔아버렸습니다.
2000년 11월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은 스위스에 근거지를 둔 프랑스 사업가 미셀 레비에(Michel Reybier)에게 2년 전과 같은 가격인 1억 1천5백만 불에 다시 매각됩니다. 현재 소유권은 도멘 레비에(Domaines Reybier)가 갖고 있으나 샤토 운영은 브뤼노 프라의 아들인 장 기욤 프라(Jean‐Guillaume Prats)가 1998년부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욕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셀 레비에도 모든 것을 투자해서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의 와인을 1등급 수준으로 향상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습니다.
3.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의 샤토 건물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의 건물은 이 지역의 샤토 중에서 가장 장엄하고 우아하기로 유명합니다. 부드러운 금빛 사암을 쓴 건물에는 중국식 탑 세 개를 얹어 놓은 형태의 아주 환상적인 동양식 아치와 망루가 있죠. 잔지바르 군주의 후궁 출입문을 본떠서 만든 주 출입문은 포도나무 잎과 포도송이, 꽃, 이색적인 동물 장식으로 조각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건물이 주거용이 아니라 와인을 양조하고 숙성, 보관하는 셀러(Cellar)라는 것이죠. 샤토의 자갈 언덕 정상에서 뽀이약과 쌩-테스테프 지역의 경계와 샤토 라피트-로칠드의 포도밭이 내려다 보이는 이 환상적인 건물은 생산하는 와인에 걸맞은 금자탑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의 포도밭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의 포도밭은 쌩-떼스떼프의 남단에 있는 평균 고도 20m의 자갈토 언덕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뽀이약과 쌩-테스테프 마을의 경계에 있으며 샤토 라피트 로칠드와 이웃하고 있죠. 면적은 약 71헥타르이며, 토양 구조는 석회질 성과 가론강(Garonne River) 강변의 굵은 자갈토 성분이 연속적으로 나타납니다. 지면의 경사와 토양 구조는 비가 왔을 때 확실한 배수를 보장하며, 하절기에 폭염이 내리쬘 때는 자갈층이 이전에 품었던 습기를 포도나무로 되돌려 줍니다.
표면이 자갈로 구성된 포도밭 상단 구역에는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을 재배하고, 자갈 언덕에는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을 키웁니다. 경사가 끝나는 곳의 석회질 토양에는 메를로(Merlot)가 자라죠. 세 품종의 재배 비율은 각각 60%, 2%, 38%입니다. 헥타르 당 포도나무는 8000~10,000그루를 심으며, 한 그루 당 포도송이의 숫자를 줄여서 포도의 맛과 향을 응축합니다. 포도나무의 평균 수령(樹齡)은 35년입니다.
화이트 와인용으로 청포도인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과 쎄미용(Semillon), 무스까델(Muscadell)도 일부 재배합니다. 재배비율은 각각 45%, 45%, 10%입니다.
5.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의 와인
와인 양조는 1984년에 만든 깨끗하고 현대적인 양조실에서 이뤄집니다. 알코올 발효는 샤토 오-브리옹(Château Haut-Brion)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높이가 낮고 폭이 넓은 스테인리스 발효 탱크를 써서 하죠. 발효 온도는 32℃ 이상을 넘지 않도록 철저하게 조절하며 발효 기간은 20~30일입니다.
1990년에 와인 저장고를 확장하면서 내부와 외부를 현대화했고, 건물 외관을 단장하면서 이전 모습으로 복원했습니다. 내부에 새로운 접견실이 설치되었고 포도밭의 주위 환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발코니도 설치했죠. 오크 숙성 창고에 냉방 시설을 추가로 설치했으며 병입실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와인의 품종 비율은 까베르네 소비뇽 55~65%, 메를로 35~45%입니다. 일반적인 메독 와인과 다르게 메를로의 비율이 높은 편이며, 이런 특징은 풍부한 과일 풍미로 표현되죠. 까베르네 프랑도 재배하지만, 최근 까베르네 프랑을 사용한 적은 1986년 단 한 번뿐이었습니다. 새 오크통 사용 비율은 1987년처럼 포도의 탄닌이 적은 해에는 3분의 1 가량, 1985년처럼 탄닌이 많은 해에는 100% 사용합니다.
샤토를 대표하는 그랑 뱅(Grand Vin)인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은 쌩-테스테프의 다른 와인과 차이점이 많습니다.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의 토양이 다른 지역보다 자갈이 더 많고 점토는 더 적어서 쌩-테스테프의 다른 와인보다 더 부드럽고 우아하지만, 덜 거칠면서 강력한 맛을 내죠. 숙성이 덜 되었을 땐 조금 거칠지만, 대부분 맛의 농도와 식감의 밀도, 알코올 비중이 높아서 진하고 강건하며 감칠맛이 나죠.
샤토 꼬스 데스투르넬의 깊은 색은 성분의 농축도를 반영합니다. 풍성하고 넉넉한 탄닌은 강한 힘을 보여주나 결코 불쾌하지 않고 오크와 완벽하게 동화됩니다. 생생한 향신료와 초콜릿 풍미는 풍성한 과일 풍미와 함께 하며, 와인의 힘은 조화로운 숙성 향과 맛의 균형을 이루며 표출되죠. 이러한 특성 덕분에 샤토 꼬스 데스투르멜은 아주 오랜 기간 보관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죠. 매년 생산량은 약 2만 상자입니다.
1994년부터 생산한 세컨드 레이블(Second Label) 와인인 레 빠고드 드 꼬스(Les Pagodes de Cos)는 수령 5년에서 20년 사이의 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듭니다. 힘이 강하고 향이 좋으며 여운이 대단히 긴 와인으로 빈티지에서 10년 안에 마시기 좋은 세련되고 즐거운 와인입니다. 매년 생산량은 8천 상자 가량입니다.
화이트 와인인 샤토 코스 데스투르넬 블랑(Chateau Cos d'Estournel Blanc)도 350 상자 가량 생산합니다. AOC 등급이지만, 오크 향이 매우 강하고 세련된 와인으로 가격도 상당하죠. 평론가들의 점수도 높아서 2017 빈티지는 제임스 서클링(James Suckling) 96-97점, 젠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 17/20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