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시음기

[스페인] 보발 포도의 잠재력을 엿볼 수 있는 초콜릿 향의 와인 - Bodegas Mustiguillo Mestis 2008

까브드맹 2011. 8. 15. 06:00

보데가스 머스티귀요 메스티스 2008

메스티스(Mestis) 2008은 보데가스 머스티귀요(Bodegas Mustiguillo)가 스페인 발렌시아(Valencia) 지방의 우띠엘-레쿠에나(Utiel-Requena) 지역에서 재배한 보발(Bobal) 포도 50%에 뗌프라니요(Tempranillo)와 시라(Syrah),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50%를 섞어서 만드는 와인입니다.

1. 보발 포도

제 눈에 들어온 와인이 하나 있었습니다. 비냐 그라듀카 틴토(Vina Graduca Tinto)라는 스페인 와인으로 8천 원 정도에 파는 평범한 와인이었죠. 이 와인이 왜 저의 관심을 끌었는가? 와인에 사용한 포도가 "보발"이라는 낯선 스페인 토착 품종이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들어보는 포도로 만든 이 와인이 과연 어떤 맛을 갖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제 머릿속을 맴돌았던 것이죠. 값도 싸서 한 병 사다가 어느 날 오후에 마셔봤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대실망이었죠.

싸구려 딸기 맛 분말주스 향, 조잡한 질감, 가볍고 평범한 맛, 느껴지지 않는 여운이 이 와인의 특징이었습니다. 굳이 장점을 꼽으라면 와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편하게 마실 수 있고 여러 음식과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는 정도? 그리고 8천 원이란 저렴한 가격일까요? 그냥 평범한 싸구려 테이블 와인이 이 와인의 정체였던 것이죠.

반응형

 

그런데 보발이란 포도가 여전히 제 관심을 끌었습니다. 보발이 600종이 넘는 토착 포도가 자라는 스페인에서 재배량을 기준으로 20위 안에 들어가는 품종이기 때문이었죠. 정말 형편없는 품종이라면 이렇게 많이 재배할 리가 없으며, 제대로 만든 고급 보발 와인이라면 뭔가 다른 맛을 보여줄 거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보발로 만든 고급 와인을 국내에선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있어도 수입을 안 하는 건지, 아니면 스페인에도 고급 보발 와인은 없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눈에 띄지 않더군요. 그러던 중 드디어 보발로 만든 "메스티스(Mestis)"란 와인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먼저 보발 포도에 관해 알아보죠. 보발의 원산지는 스페인 발렌시아의 우띠엘-레쿠에나 지역입니다. 이곳은 낮과 밤의 일교차가 아주 극심한데 보발은 이런 가혹한 자연환경에서 잘 자랄 뿐만 아니라 생산량도 많습니다. 밤낮의 일교차가 심하면 포도에는 산 성분이 많이 축적되며, 이 산이야말로 탄닌과 당분과 함께 훌륭한 와인을 만들기 위한 필수 요소 중 하나입니다. 더구나 보발은 색소와 탄닌이 많아서 다른 포도와 혼합하거나 장기 숙성하기 좋습니다. 또한, 몸에 유익한 레스베라트롤(Resveratrol) 성분이 다른 포도보다 많아서 건강에도 좋고 상쾌하면서 독특한 향이 있어 와인을 만들면 향이 좋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성질을 가졌지만, 그동안 보발의 잠재력을 알아보지 못한 채 스페인 와인 산업의 흐름에 따라 값싼 벌크와인으로만 생산했으므로 그저 잘 자라고 수확량만 많은 포도로 취급받아 왔죠. 하지만 스페인의 몇몇 와인 생산자는 보발의 잠재력을 눈여겨봤습니다. 그중 한 명이 토니 사리옹(Toni Sarrion)이었죠. 그는 자신의 와이너리인 보데가스 머스티귀요의 포도밭에 보발을 심고 세 종류의 보발 와인을 만들었습니다. 세 와인은 보발을 100% 사용한 퀸차 코랄(Quincha Corral)과 75% 사용한 핀카 떼레라조(Finca Terrerazo), 보발을 절반 넣고 여러 글로벌 품종을 섞은 메스티스(Mestis)입니다.

메스티스(Mestis)는 발렌시아어로 "인종 간의 어울림(Mix Race)"을 뜻하는 말입니다. 스페인어로는 "메스티자제(Mestizaje)"라고 적죠. 메스티스의 뒷 레이블에는 이런 이름을 지은 유래에 관해 "(와이너리에서 생각하는) 길을 따라 자신들을 도와준, 와인으로 뭉쳐진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헌정"이라고 적어놓았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힘을 합쳐 와인을 만드는 모습이 보발에 뗌프라니요, 시라, 카베르네 소비뇽을 하나로 뭉쳐서 만든 이 와인을 떠오르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00% 보발이 아니라서 아쉽지만, 메스티스는 보발 포도의 우수한 성질을 엿볼 수 있는 매우 뛰어난 와인입니다. 다른 보발 와인에서 찾아보기 힘든 뛰어난 품질 때문이었는지 로버트 파커와 와인 앤 스피리츠(Wine & Spirits)에서는 이 와인에 각각 90점을 줬습니다.

 

 

2. 와인의 맛과 향

색은 깨끗하지만 짙은 퍼플빛입니다. 첫 향은 고소한 다크 초콜릿과 초콜릿 케이크의 향이며, 이윽고 진하고 검은 과일, 고소한 견과류, 볶은 아몬드와 헤이즐넛, 향신료 향이 나옵니다. 나중엔 고소하고 달콤한 향이 이어지면서 자두와 블랙베리 같은 과일 향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탄닌이 많지만 부드럽고 진해서 떫은맛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후반부에 입안을 조여주는 느낌이 약간 있군요. 맛은 드라이하며 부드럽고 적당한 산미가 있습니다. 알코올 도수는 13.5%로 크게 부담 가지 않습니다. 고급 다크 초콜릿의 느낌은 향에서도 나오지만, 입에 남는 맛이 더욱 좋습니다. 검은 과일 풍미도 있지만, 그보단 오크와 초콜릿, 구운 견과류 느낌이 더욱 우아하고 강하게 나옵니다. 단맛이 약한 것을 빼면 고급 진판델 와인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초콜릿과 구운 견과류의 자취가 길게 이어지는 여운이 아주 좋습니다.

각 요소의 균형이 아주 좋으며 우아하고 진합니다. 다만 지구력은 생각보다 짧아 조금 아쉽습니다.

초콜릿과 초콜릿 케이크, 바비큐 그릴에 구운 쇠고기와 양고기, 양고기 볶음 등과 잘 어울리는 맛으로 만약 밸런타인데이 선물로 받은 초콜릿과 함께 마실 와인을 찾는다면 제격입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B로 맛과 향이 좋은 매력적인 와인입니다. 2011년 8월 11일 시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