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시음기

[프랑스] 15년의 긴 시간이 만든 감동 깊은 우아한 맛과 향 - Chateau Lassegue 1996

까브드맹 2011. 6. 9. 06:00

샤토 라세그 1996

샤토 라세그 1996은 프랑스 보르도(Bordeaux)의 쌩-테밀리옹(Saint-Emilion) 마을에서 수확한 메를로(Merlot)와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으로 만드는 AOC 등급 와인입니다.

1. 장기 숙성 와인

고급 와인은 아니지만, 장기 숙성이 가능한 튼튼한 구조를 가진 와인을 보관하기 좋은 장소에서 오랫동안 숙성하면 어떤 맛과 향을 보여줄까요? 그러한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와인을 마신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마셨던 와인은 프랑스 보르도 쌩-테밀리옹 지역의 샤토 라세그 1996 빈티지였습니다. 이 와인은 최근 빈티지이면 6~9만 원 사이에 구입할 수 있는 와인으로 쌩-테밀리옹 크랑 크뤼(Saint-Emilion Grand Cru)로 분류되는 괜찮은 와인이지만, 아주 고급 와인은 아닙니다. 보르도 메독 지역의 크뤼 부르주아(Crus Bourgeois) 등급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게다가 쌩-테밀리옹의 1996년 작황은 오-메독 지역을 포함한 포르도 좌안과 달리 평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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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마신 샤토 라세그는 제공자가 와인을 구매하자마자 바로 셀러에 보관했고 마시기 직전까지 셀러에서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것입니다. 구매 후에 약 13년간 좋은 환경에서 고이 숙성해 온 것이죠. 이 와인은 제게 정말 감동을 주었습니다.

장기 숙성 와인을 의미하는 뱅 드 가르드에 관한 정보는 하단의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2. 와인의 맛과 향

색은 뜻밖에 연합니다. 레드 와인은 오랫동안 숙성하면 색이 옅어지기 때문이죠. 반대로 화이트 와인은 색이 짙어집니다. 루비에서 석류석 색으로 넘어가는 단계이고, 잔을 돌릴 때 흘러내리는 눈물은 진합니다. 원래 향이 좋은 쌩-테밀리옹 와인이지만, 이 와인은 정말 향이 좋았습니다. 레드커런트, 서양 자두, 블루베리, 블랙 체리, 블랙커런트 순으로 점점 색이 짙어지는 과일 향이 나오고 은은하고 우아한 오크 향이 함께 합니다. 감초와 캐러멜의 달콤한 향도 나오는군요. 굉장히 복잡하지만, 부드러우며 우아합니다.

 

 

완전히 숙성했는지 첫맛은 부드럽지만, 강인한 힘을 가졌습니다. 뭐랄까요? 마치 유리를 녹여서 마시는 느낌? 맑은 기름을 마시는 듯한 느낌? 뒷부분에 슬쩍 떫은 느낌이 나지만, 이것마저도 기분 좋게 느껴집니다. 한마디로 "좋다!"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나올 만큼 맛있습니다. 드라이한 맛과 여기에 어울리는 조금 높은 산미가 있습니다. 15년이 지났는데도 정말 우아하고 탄탄하며 세련된 맛이 납니다. 맑게 살아있는 맛이랄까요? 힘이 아직 살아있으면서 억세지 않게 부드럽게 이어지는 느낌이 좋습니다. 우아하며 맑고 청아한 맛. 뭐라 표현하기 힘든데... 아주 맑고 적당히 진하며 깨끗한 느낌? 아련했던 젊은 날의 연인을 떠올리게 만드는 와인입니다. 여운도 은근히 깁니다. 처음엔 강도가 약한 듯하지만, 뒤로 갈수록 점차 강해지면서 깊은 느낌을 줍니다.

균형은 아주 좋습니다! 향, 질감, 맛, 여운의 네 요소가 긴 시간을 통해서 완벽한 조화를 이뤄냈습니다. 와인 자체의 한계 때문에 그랑 크뤼급 와인의 울리는 듯한 감동은 없어도 순수하고 우아하며 은근히 깊은, 그러면서 강인한 맛을 보여줍니다. 아련한 옛 추억이 떠오르는 감동이 느껴집니다.

 

 

문제는 시음한 와인이 15년간 잘 숙성된 1996 빈티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중에선 구할 수 없으며, 설령 구할 수 있어도 셀러 안에 보관할 만큼 고가 와인이 아니므로 와인 상태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마 마트에서 샤토 라세그 1996년을 구매한다면 이미 변질하였을 확률이 90%가 넘을 겁니다. 저도 와인 제공자가 샤토 라세그를 더 구매하지 않았다면 다시 마실 기회가 아마도 없을 겁니다.

아주 비싸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와인이라면 좋은 환경에서 긴 세월 동안 숙성했을 때 어느 정도 감동스러운 맛을 낼 수 있는지 여실히 느끼게 해 준 와인이었습니다. 보르도 와인이 왜 오래 묵을수록 좋다고 하는지 실감 나더군요. 역시 와인은 기다림의 미학을 가진 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고기와 양고기 스테이크, 양 갈비와 소갈비, 등심과 안심구이 같은 육류 요리 등과 함께 마시면 아주 좋습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B+로 맛과 향이 좋은 매력적인 와인입니다. 2011년 5월 16일 시음했습니다.

 

[기초] 뱅 드 가르드(Vin de Garde)

"와인은 오래 보관할수록 맛이 좋아진다."라고 알고 있는 분이 많습니다. 이 말은 일부 와인에만 해당하죠. 병에 담은 지 2~3년 안에 마셔야 제맛을 느낄 수 있는 와인이 오래 보관할수록 맛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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