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포도 품종

[프랑스] 그로 망상 - 드라이 화이트 와인의 유행과 함께 운명이 바뀐 포도 (재업)

까브드맹 2023. 12. 31. 10:00

그로 망상 포도와 잎의 모양

그로 망상(Gros Manseng)은 프랑스 남서부에서 많이 재배하는 청포도입니다. 망상(Manseng)이란 이름이 붙는 포도 중엔 포도알이 큰 것과 작은 것이 있습니다. 전자는 프랑스어로 '크다'란 뜻인 'gros'를 붙여서 그로 망상, 후자는 '작다'란 뜻의 'petit'를 붙여서 쁘띠 망상이라고 부르죠. 그래서 그로 망상을 영어로 라지 망상(Large Manseng), 혹은 빅 망상(Big Manseng)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로 망상과 쁘띠 망상은 매우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점이 뚜렷합니다. 그로 망상이 포도알이 더 클 뿐만 아니라 병충해에도 강해서 수확량이 많이 나오죠. 와인을 만들면 쁘띠 망상보다 맛이 풍부하지만, 질감은 덜 우아합니다.

1. 그로 망상의 특성

1) 포도의 특성

그로 망상은 수확 시기에 따라 와인의 맛과 향이 달라집니다. 잠재 알코올이 11.5~12%일 때 와인을 만들면 과일과 꽃의 풍미가 나오고 좀 더 신선한 맛이 납니다. 잠재 알코올이 12.5~13.5%라면 풍미가 더 강렬해지고 힘이 넘치게 되죠. 만생종으로 가루 곰팡이(owdery mildew)에 취약하지만, 보트리티스(botrytis)에는 내성이 있습니다.

그로 망상은 포도 껍질이 두꺼워서 와인을 만들 때 세심한 손길이 필요합니다. 포도즙을 짤 때 거칠게 다루거나 포도즙과 껍질을 너무 오랫동안 함께 두면 지나치게 추출된 탄닌과 폴리페놀(Polyphenols)로 인해 와인 품질이 조잡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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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와인의 특성

그로 망상은 다른 양조용 포도와 다르게 포도즙이 회색입니다. 이것은 최소의 침용 과정만으로도 깊은 황금빛 색을 띠는 와인을 만들 수 있는 것을 뜻하죠. 그로 망상 와인은 산도가 높고 풍미가 강렬합니다. 감귤류와 살구, 모과, 꽃 향과 함께 향신료 풍미가 나오고 뒷맛에 기분 좋은 쓴맛이 남죠.

와인은 대부분 가볍고 신선하게 만들어져서 시장에 나오면 일찍 소비해야 하지만, 맛이 풍부한 일부 와인은 약 8년까지 숙성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발효하고 숙성하며, 신맛을 줄이기 위한 젖산 발효(malolactic fermentation)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프랑스 남서부에서 그로 망상과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을 혼합한 드라이 화이트 와인이 많이 나옵니다. 이 조합은 매력적인 맛과 향으로 세계 와인 시장에서 많은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일부 와인 생산자는 그로 망상으로 오크통에서 숙성한 달콤한 귀부(貴腐) 와인을 생산합니다. 이런 와인은 음식과 맞추기 좋고, 특히 거위 간인 푸아 그라(foie gras)와 매우 잘 어울리죠. 그로 망상으로 만든 스위트 귀부 와인은 쎄미용(Sémillon) 포도로 만든 것과 풍미가 비슷해서 와인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2. 그로 망상의 역사

그로 망상의 원산지는 프랑스 남서부로 아마도 포(Pau) 근처의 베어른(Béarn) 지방이 고향인 것 같습니다. 그로 망상은 매우 오래된 품종입니다. 1562년에 쥐랑송(Jurançon)에서 생산된 "vinhe mansengue"라는 와인으로 그 존재가 처음 언급되었죠. 그러나 그 포도가 쁘띠 망상인지, 아니면 그로 망상인지 1783년까지 구별하지 못했죠. 유명한 포도 학자인 피에르 갈레(Pierre Galet)는 1990년에 두 품종 사이의 형태학적 유사성에 주목했습니다.

그로 망상의 부모 품종이 어떤 포도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Galicia) 지방의 알바리뇨(Albariño) 포도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있고, 실제로 두 포도는 비슷한 특성이 많습니다.

1950년대 후반의 프랑스에는 그로 망상 포도밭이 약 58헥타르만 남아서, 그로 망상의 미래가 암울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와 70년대에 드라이 화이트 와인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와인 생산자들은 이에 대응하기 시작하면서 그로 망상에게 부활의 기회가 찾아왔죠.

원래 쥐랑송 일대에선 주로 쁘띠 망상을 사용한 고품질 스위트 와인을 생산해 왔습니다. 당시 쥐랑송의 달콤한 쁘띠 망상 와인은 유명했고, 지금도 여전히 유명하죠. 그렇지만 와인 생산자들은 드라이한 와인을 만들 때 쁘띠 망상 대신 그로 망상을 찾았습니다. 그들이 그로 망상을 선호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그로 망상은 열매와 포도송이가 커서 수확량이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포도 수확량이 늘어나면 포도 품질은 반비례해서 떨어지지만, 그로 망상은 다른 포도와 달리 수확량이 많아도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품종입니다.

둘째, 그로 망상의 천연 산도가 매우 높아서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드라이 하고 새콤한 와인을 만들기 좋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특성이 비록 쁘띠 망상이 더 우아한 포도라는 평가를 받아도 그로 망상 재배지가 쁘띠 망상보다 더 넓어진 이유이죠. 다행히 운명이 바뀐 그로 망상은 이제 프랑스 남서부에서 널리 재배되며 포도밭은 3,046헥타르로 늘어났습니다.

 

 

3. 그로 망상 와인 생산지

1) 프랑스

남서부 프랑스의 와인 생산지 지도

남서부 프랑스의 쥐랑송 AOC(또는 AOP)과 베어른 AOC, 튀르쌍(Tursan) AOC, 피레네 산맥 부근의 이룰레귀(Irouléguy) AOC 등지에서 그로 망상으로 쥐랑송 섹(Jurançon Sec) 같은 드라이 화이트 와인을 생산합니다. 가스꼬뉴(Gascogne) 지방의 페슈앙 뒤 빅-비히(Pacherenc du Vic-Bilh) AOC와 꼬뜨 드 가스꼬뉴(Côtes de Gascogne) IGP, 플록 드 가스꼬뉴(Floc de Gascogne) AOC에서도 그로 망상으로 화이트 와인을 만듭니다.

2)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차콜리 데 알라바(Chacolí de Alava, Txakoli de Álava) DO와 차콜리 데 비즈카이아(Chacolí de Bizkaia, Txakoli de Bizkaia) DO에서 그로 망상을 재배합니다. 포도밭 면적은 13헥타르 정도입니다.

3) 기타 국가

호주에는 10헥타르의 그로 망상 포도밭이 있고, 브라질과 우루과이에서도 소량 재배합니다. 포도밭이 점점 느는 추세입니다.

4. 그로 망상 와인의 향

그로 망상 와인의 대표 향 중 하나인 아카시아

그로 망상 와인에선 허니서클(honeysuckle)과 아카시아 같은 꽃, 감귤류와 살구, 사과, 파인애플 같은 열대 과일, 미네랄 등의 향이 풍깁니다. 오크통에서 숙성한 달콤한 그로 망상 와인에선 설탕에 절인 과일과 꿀, 향신료, 견과류, 송로버섯 등의 향과 풍미도 나옵니다.

5. 그로 망상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

그로 망상 와인에는 각종 샐러드, 새우와 게 같은 갑각류 요리, 조개구이와 조개찜, 생선구이, 닭고기 같은 백색육, 생치즈인 파니르(paneer)와 향신료를 사용한 인도식 요리 등이 어울립니다.

달콤한 디저트용 그로 망상 와인은 케이크와 말린 과일, 과자, 아이스크림 등 각종 디저트가 어울리고, 로크포르(roquefort) 같은 블루 치즈도 잘 맞습니다.

6. 그로 망상의 다른 이름

그로 망상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립니다. 프랑스에선 그로 망상 블랑(Gros Mansenc), 그로 망상 블랑(Gros Manseng Blanc), 망상 그로 블랑(Manseng Gros Blanc)이라고 부르며, 스페인에선 이치리오타 쥬리아 핸디아(Ichiriota Zuria Handia), 이치리오타 쥬리아핸들라(Ichiriota Zuriahandla) 등으로 부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