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시음기

[프랑스] 지금은 안정이 덜 되었지만, 몇 달 지나면 좋은 모습을 보여줄 - Lady Greysac 2017

까브드맹 2020. 11. 20. 09:00

Lady Greysac 2017

레이디 그레이삭(Lady Greysac) 2017은 프랑스의 보르도(Bordeaux) AOC에서 재배한 메를로(Merlot)와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포도로 만든 레드 와인입니다.

1. 그랑 뱅과 세컨드 와인

프랑스 보르도에는 약 3,000개의 샤토가 있습니다. 규모도 와인 품질도 천차만별이지만, 명성이 높고 생산량도 많은 샤토라면 한 종류의 와인만 생산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포도나무는 오래될수록 뿌리를 깊게 내리면서 양분을 더 많이 흡수하고 포도 품질도 좋아집니다. 훌륭한 와인은 질 좋은 포도를 사용해야 하기에 포도나무의 수령(樹齡)은 무척 중요한 부분이죠. 그래서 샤토에서는 오래된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 샤토를 대표하는 와인인 '그랑 뱅(Grand Vin)'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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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포도나무가 너무 오래되면 포도맛은 좋지만 열리는 포도송이 숫자가 줄어들어 수확량이 떨어지게 됩니다. 이러면 와인 생산량도 떨어지고 경제적 이익도 줄어들게 되죠. 그래서 샤토에서는 너무 오래된 포도나무는 뽑아버리고 새 묘목을 심습니다. 새로 심은 어린 포도나무는 수확량이 많지만, 포도 품질은 상대적으로 부족하죠, 이런 포도를 고급 와인 양조에 쓸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그랑 뱅에 쓸 수 없는 포도를 모아서 만드는 와인을 '세컨드 와인(Second Wine)'이라고 합니다.

모든 샤토에서 세컨드 와인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규모가 적거나 와인에 큰 열의가 없는 생산자는 샤토의 모든 포도를 섞어서 그랑 뱅만 만들죠. 반면에 규모가 크고 와인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생산자는 포도 품질을 세세하게 나눠서 그랑 뱅, 세컨드 와인뿐만 아니라 더 대중적인 와인도 만듭니다. 이런 생산자의 세컨드 와인 중에선 다른 샤토의 그랑 뱅보다 훨씬 품질이 좋고 가격도 비싼 것들이 있죠.

 

 

2. 와인 생산자

레이디 그레이삭 2017은 샤토 그레이삭(Château Greysac)의 써드 와인(Third Wine)입니다. 쌩-테스테프(St. Estephe) 북쪽에 있는 샤토 그레이삭은 1700년대에 세워진 샤토로 오랫동안 프랑수아 드 군즈버그 남작의 소유였습니다. 1975년에 아넬리(Agnelli) 가문에 매각되었고, 2012년에 다시 도멘 롤랑 드 비(Domaine Rollan de By)의 장 기용(Guyon)에게 넘어갔죠.

샤토 그레이삭의 그랑 뱅은 크뤼 부르주아(Cru Bourgeois) 등급에 속합니다. 2014 빈티지가 와인 인슈지애스트(Wine Enthusiast)에서 91점을, 와인 애드버킷(Wine Advocate)에서 91점을 받았을 만큼 맛과 향이 좋죠. 2017 빈티지는 젠시스 로빈슨으로부터 15.5/20점을 받았습니다. 레이디 그레이삭 2017의 품질도 여기에 맞춰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기술 문서를 보니 샤토 그레이삭이 보통 메를로와 까베르네 소비뇽,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쁘띠 베르도(Petit Verdot)를 사용하는데 비해 레이디 그레이삭은 메를로와 까베르네 소비뇽만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3. 와인의 맛과 향

Lady Greysac 2017의 색

진한 루비색입니다. 검은색 과일 향과 태운 나무와 삼나무 같은 나무 향, 연필심, 후추와 파프리카의 풋풋하고 매콤한 향이 나옵니다. 시간과 함께 커피콩과 초콜릿 향이 슬슬 올라오고 가죽 같은 동물성 향도 풍깁니다.

부드럽고 풍성합니다. 마신 후에 탄닌 기운이 살짝 남는군요. 구조는 조금 아쉽습니다. 드라이하고 검은 과일의 단 풍미와 산미가 함께 나옵니다. 블랙커런트와 후끈하고 매운 후추, 파프리카와 녹색 채소, 그을린 나무와 타임(thyme) 풍미가 이어집니다. 알코올은 와인에 힘을 주지만 아직 어리고 서투릅니다. 국내에 도착한 지 한 달도 안된 시점이라서 그런지 다소 어수선한 느낌이군요. 온도를 낮추니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보르도 와인답게 여운은 긴 편이며 타임과 태운 나무, 검은 과일의 느낌이 남습니다.

 

 

부드럽고 활달한 탄닌과 검은 과일의 알맞은 산미, 13%의 알코올이 초반엔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다가 시간과 함께 안정되어 갑니다. 온도를 낮추니 우아한 모습도 보여주네요. 안정이 덜 된 이른 시기에 마셔서 아쉬운 맛이 났지만, 두세 달 지나서 마시면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 같습니다.

함께 먹기 좋은 음식은 소고기와 양고기 스테이크, 숯불이나 그릴에 구운 소고기, 미트 스튜, 훈제 치킨과 훈제 오리, 미트 소스 파스타, 숙성 치즈 등입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C+로 맛과 향이 좋은 와인입니다. 2020년 10월 23일 시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