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민속주] 민속주 부활의 신호탄 - 1988년 지정 팔대 민속주

까브드맹 2009. 12. 15. 11:32
1988년에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리게 되자 정부에서는 국내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그 당시까지 푸대접 받으며 밀주_密酒의 형태로 이어져오던 민속주 중 8개를 선정하여 판매를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어서 1995년에는 판매만 하지 않는다면 집에서 술을 만들어 마실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되었지요. 아래는 88년 당시 제정되었던 8대 민속주들입니다.

1. 면천 두견주

이미지 출처 : http://www.jindalae.co.kr/webapps/intro/img/page1-04.gif

진달래 꽃잎을 섞어 담는 향기나는 술로 진달래꽃을 '두견화_杜鵑花'라고도 하므로 두견주라고 한답니다. 두견주에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복지겸_卜智謙에 얽힌 전설이 있는데요, 그가 병이 들어 온갖 좋다는 약을 다 써도 병이 낫지 않자, 그의 어린 딸이 아미산에 올라 100일 기도를 드렸답니다. 이에 감동한 신선이 나타나 이르기를

"아미산에 활짝 핀 진달래꽃으로 술을 빚되 반드시 안샘(지금 면천초등학교 뒤에 있는 우물)의 물로 빚어 100일 후에 마시고 뜰에 2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어 정성을 드려야만 효과가 있느니라."

고 하여, 딸이 그대로 하였더니 아버지의 병이 나았다고 합니다. 또 다른 얘기로는 중국에서 술과 시성_詩聖으로 유명한 두보·이태백이 진달래로 술을 담아 먹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고도 합니다.

술의 색은 연한 황갈색이고 단맛이 나며 점성이 있는데 신맛과 누룩냄새가 거의 없고 진달래 향기가 일품입니다. 알코올 도수는 21도 정도로 발효주로서는 상당한 편입니다. 제조 과정 중에 증류주를 붓는 과정이 있는가 했는데, 그런 과정은 없더군요. 그런데도 21도의 도수가 나온다니 신기합니다.

두견주는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피로회복에도 효과가 있으며, 특히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주어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초보자들이 두견주 담근답시고, 진달래 대신 철쭉으로 술을 담게 되면 최대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자료 참조 : 문화재청 홈페이지)

2. 지리산 국화주

이미지 출처 : http://image.aving.net/img/2007/11/05/20071105203644123.jpg

국화주는 1900년대에 이르러 일제 치하에서 맥이 끊겼다가 1987년 정확한 고증을 토대로 정부로부터 국가지정 민속주로 지정받아 부활한 술입니다. 국화주는 예로부터 왕이 내리는 술로서 태종 이방원이 신하에게 즐겨 하사하였다고 하며, 국화는 예로부터 불로장수 및 상서로운 영초_靈草로서 숭상되어 왔답니다.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는 국화주를 먹는 날로서 국화 화전과 함께 즐겼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이 날 국화주를 마시면 장수를 누리고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었기 때문이라 하네요.

국화주는 알콜농도가 소주보다 약한 16%로 달짝지근한 맛과 은은한 국향이 가을을 담고 있으며, 술맛이 꿀을 약간 섞은 것처럼 달짝지근합니다. 음주 후 머리를 아프게하는 아세트 알데히드등의 성분이 다른 술에 비해 적게 검출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오옷! +_+) 국화주는 국화에 생지황, 구기자, 나무껍질을 넣고 찹쌀로 빚으며 '동의보감' '임원십육지' '증보산림경제' 등에 기록되어 전승되고 있습니다. 동의보감과 본초강목 등에는 국화가 청혈해독 약리작용이 있으며 고혈압 방지뿐만 아니라 근육과 뼈를 강화해주고 눈을 밝게 해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국화주를 연명주 또는 불로장생주라고 부르는 근거도 여기에 있답니다. 소주, 맥주와 달리 안주도 기름진 육류보다는 담백한 안주가 어울린다고 하네요.

(자료 출처 : http://blog.naver.com/iamcalm/30074836368, http://blog.daum.net/lsj2355/15610898?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lsj2355%2F15610898, http://www.xn--3e0bq63c1nj.net/)


3. 안동 소주

안동소주의 시원은 원나라의 한반도 진출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13세기에 원나라가 고려와 강화 조약을 맺고 실질적으로는 고려 조정을 좌지우지하며 한반도에 진출한 후에 일본 원정을 목적으로 안동에 병참기지를 두었을 때, 몽고군을 통해 알콜 증류를 이용한 소주 제조법이 전래됐다고 합니다. 이후 고려의 권문세가 사이에 소주가 유행했으며, 홍건적의 난을 피해 공민왕이 안동에 몽진 왔을 때 안동 사람들이 소주를 진상했다고 합니다. 안동소주는 안동 지역의 특산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는데, 일반 백성들은 안동소주를 상처, 배앓이, 식욕부진, 소화불량 등에 구급처방으로 활용하기도 한답니다. 

안동소주를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쌀, 보리, 조, 수수, 콩 등 다섯가지 곡물을 물에 불린 후 시루에 쪄서 여기에다 누룩을 섞어 10일 가량 발효시켜 진술을 만듭니다. 이 진술을 솥에 담고 그 위에 소주고리를 얹어 불을 지피면 진술이 증류되어 소주가 만들어지는데, 목성산의 맑은 물이 좋아 이곳에서 생산되는 안동소주는 그 맛과 향이 뛰어나다고 하네요. 

조선시대에 소주는 사대교린의 정책을 위한 조공품과 하사품으로 많이 활용되었는데, 조선 왕조 실록에 보면 일본의 사신이나 대마도 도주에게 소주를 하사하는 대목이 적지 않게 나옵니다. 이후 안동소주는 가양주로 전승되어 오다 1920년 안동시에 공장을 세워 ‘제비원소주’라는 상표로 상품화 되었고, 1950년 6.25 사변때 참전한 외국군에게도 그 맛과 향이 알려져 전후에 상당량이 미국으로 수출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62년 주세법 개정으로 순곡소주 생산이 금지되어 생산이 중단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일제시대에도 생산이 계속되었던 안동소주가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생산이 중지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 것이죠. 그뒤 1987년에 와서 안동소주 제조비법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조옥화씨가 기능보유자로 인정되면서 1990년 민속주로 생산과 판매가 다시 이루어졌습니다.

안동소주의 알콜 농도는 45도이며 맛과 향이 깔끔하고 깨끗한 것이 특징입니다. 

(자료 참조 : 문화재청 홈페이지) 

4. 한산 소곡주

한산소곡주는 한산지방의 이름난 술로서 빛깔은 청주와 같습니다. 국내 전통주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술로서 유구한 세월만큼이나 그 맛도 널리 정평이 나있지요. 한산소곡주의 유래는 일정한 문헌이나 고증할만한 자료는 찾을 길이 없고, 다만 우리 민족이 즐겨 마신 술의 종류나 그 제조비방을 기술한 문헌으로 산림경제(1674∼1720) 동국세시기(1849)등이 있는데 그중에서 소곡주를 으뜸으로 치고 있습니다. 

재래의 약주와 비슷하나 주향과 주훈이 독특하며, 특히 제조기간이 100일을 경과하고 찹쌀로 만드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백제 멸망 후에 백제 왕실과 유민이 건지산에서 백제 부흥을 꿈꾸며 주류성을 쌓고 슬픔을 달래기 위해 빚기 시작했다고는 전설이 어려 있는 술이기도 하지요. 소곡주_素穀酒라는 이름의 유래는 멸망한 백제의 한을 달래기 위해 하얀 소복을 입고 빚었다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는 합니다만, 이건 술의 색깔과 백제 멸망이라는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이 결부되어 생긴 전설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술의 색깔이 당시의 탁주와는 달리 맑고 깨끗해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전국에 가장 많이 알려진 술로서 동국세시기, 산림경제 외에도 경도잡지, 시의전서, 규합총서, 음식디미방 등에도 제조법이 기록되게 됩니다. 

소곡주는 찹쌀을 빚어 100일 동안 익혀 만드는데 이로 인해 백일주라는 별칭도 갖고 있습니다. 소곡주는 누룩을 적게 쓰고 땅속에 항아리를 묻은 후에 저온에서 장기간에 걸쳐 발효시키는데, 이는 와인의 저온 발효 방법과 같은 방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저온에서 장기간에 걸쳐 발효가 천천히 이루어지면 맛과 향이 뛰어난 술이 완성되지요. 그래서 소곡주는 누룩향이 적고 입에 착 달라붙는 감칠맛이 있어 마실 때 거부감이 없어 한 번 마시게 되면 끝장을 볼 때까지 계속 마시게 되는데, 소곡주는 알콜 도수가 18도로 발효주로는 상당히 독한 술입니다. 그래서 소곡주에 붙은 또 다른 별칭이 '앉은뱅이 술'인데요, 조선시대에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가 한산에 들어서 소곡주를 마시다가 그 맛과 향에 취해 연일 소곡주를 마시다가 과거보는 날짜를 놓쳤다는 이야기도 있고, 남의 집에 들어간 도둑이 소곡주를 마시고 취하여 일어서질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소곡주를 빚던 며느리가 술맛을 보느라고 젓가락으로 찍어 먹다가 저도 모르게 취하여 일어서지도 못하고 앉은뱅이처럼 엉금엉금 기어다녔다고 해서 붙은 별칭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 . 모두 소곡주의 맛과 향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나타내는 이야기들이지요.  

또한 소곡주는 술 맛 뿐만 아니라 청혈 해독의 약리작용이 있으며, 말초혈관을 확장하고 혈관운동 중추를 억제하는 혈압강화작용이 있어서 고혈압 예방에 좋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답니다. 

(자료 참조 : http://www.sogokju.co.kr, http://cafe.daum.net/snrnskekdhkdy, http://cafe.daum.net/yoonws01)


5. 김천 과하주

이미지 출처 : http://www.doopedia.co.kr/_upload/image1/330000/336500/1024/336994.jpg

과하주는 수백 년 내려온 김천의 유명한 술입니다. 찹쌀과 누룩을 원료로 하며, 김천시 남산동에 있는 과하천_過夏泉의 물을 사용한는데, 이 샘물로 술을 빚으면 술맛이 좋고 여름이 지나도 술맛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여 과하주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오래된 향지 금릉승람(1702년)에는 이렇게 과하주 맛의 비결에 대해 

“김천 과하주는 온 나라에서 그 이름이 높으며 외지 사람이 그 술을 빚는 방법을 배웠으나 맛이 본토주(김천 과하주)와 같지 아니하였음은 그 샘물이 타지와는 달리 특이한 신비가 있는 연고다.”

라고 하여 이 고장 물에 그 비결이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과하주는 예부터 음력 정월에 빚어서 4월에 즐겨 먹었다고 전합니다. 우선 밀을 갈아 샘물로 반죽해 누룩을 만들고, 찹쌀을 샘물에 담갔다가 하루 뒤 건져내 고두밥을 찝니다. 이를 떡판에 올려놓은 다음 누룩가루가 24시간 우러난 것과 함께 버무려 떡편을 만들고, 식힌 떡편을 독에 넣고 한지로 밀봉해 서늘한 곳에서 30일 이상 장기 저온 발효시킨 뒤 떠낸 16도 약주가 경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과하주입니다. 그리고 정주_精酒를 뜨고 남은 술지게미에 증류소주를 부어 숙성시켜 거르거나 16도 약주를 증류시켜 소주를 만든 뒤 이를 16도 약주와 섞어 숙성시키면 한여름 복더위에도 변질될 우려가 없는 30도 안팎짜리 과하주가 되는데, 여름에 강해 이름 그대로 한여름을 나는 '과하_過夏' 술입니다. 소주처럼 톡 쏘는데 맛은 약주로 술이 약한 사람도 즐겨찾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16도 약주에 증류한 소주를 부어서 알콜 도수를 높여 무더위에도 술의 변질을 막는 방법인데, 이는 포트 와인이나 셰리의 제조법과 같은 맥락의 방법입니다. 과하주와 포트가 누가 먼저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고, 또 당시에 유라시아 대륙의 양 끝에 위치한 나라 사이에 어떠한 교류가 이루어졌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뜨거운 여름에 술이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인류 공통의 고민이 양쪽에서 똑같은 해결책을 탄생시킨 것이 아닌가 합니다 ^^. 달짝지근하면서도 약간 신맛이 느껴지는 과하주는 손에 묻으면 끈적거릴 만큼 진합니다. 또한 숙취가 없고 갈증을 없애주며 적당량을 마시면 혈액순환을 도와 고혈압과 신경통에 좋은 것으로도 알려졌습니다. 

과하주는 일제시대까지 ‘큰도가’(김천주조회사)에서 빚었는데 한때 중단되었다가 광복 후 재개되고 다시 한국전쟁으로 자취를 감추었다가 1984년 송재성씨가 시험양조 끝에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해 김천 명주_名酒의 맥을 이었는데, 1999년 송재성씨가 사망하여 현재는 기능보유자가 없는 상황입니다.

(자료 참조 : 문화재청 홈페이지, http://cafe.daum.net/rubylovelove)

6. 전주 이강주

이강주는 조선 중엽부터 전라도와 황해도에서 제조되었던 술로 우리나라 5대 명주의 하나로 손꼽히며 '경도잡지', '동국세시기', '임원 16지', '동국세시기', '한국의 명주' 등에서 그 기록을 찾을 수 있습니다. 동국세시기에는 

"소주는 공덕 옹막에서 삼해주를 빚는 독에서 만든 천백독의 술이 가장 유명하다. 평안도 지방의 감홍로·벽향주, 그리고 황해도 지방의 이강주, 호남 지방에서 나는 죽력고·계당주, 충청도 지방에서 나는 노산춘 등이 가장 좋은 술들이다. 또 이 술들 가운데는 선물로 오는 것도 있었다." 

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또 조선상식문답에는

"가장 널리 퍼진 것은 평양의 감홍로니 소주에 단맛이 나는 재료를 넣고 홍곡으로써 발그레한 빛을 낸 것입니다. 그 다음은 전주의 이강고梨薑膏 니 뱃물과 생강즙과 꿀을 섞어 빚은 소주입니다. 그 다음은 전라도의 죽력고니 청대를 숯불 위에 얹어 뽑아 낸 즙을 섞어서 곤 소주입니다. 이 세가지가 전날에 전국적으로 유명하던 술입니다."

선조 때부터 상류 사회에서 즐겨 마시던 고급 약소주로 이름을 날리며, 옛 문헌 곳곳에서 자랑이 대단한 이 술은 토종 소주에 배와 생강이 들어감으로써 이강_주란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호남의 술로서 이강주, 죽력고, 호산춘하면 조선 시대에 전국적으로 유명하였는데 특히 이강주는 고종 때 한미 통상 조약 체결을 맺으면서 조선을 대표하는 술로 동참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백미를 원료로 해서 종래의 토종누룩을 이용해 약주를 만든 후 이 술로 토종 소주를 내리고 여기에 배, 생강, 울금, 계피, 꿀을 넣어 장기간 후숙시켜 마시게 되는데, 왕실에 진상품으로 올리던 울금이 전주 지방에서 재배된 것도 이강주가 전주에서 빚어질 수 있었던 이유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마실 때 부담이 없는 명주로 현재 중요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만드는 법은 우선 백미와 누룩과 깨끗한 물을 항아리에 넣어 밑술을 잡습니다. 3일 후 덧술을 하는데 이때는 백미가 아니라 보리쌀을 써서 누룩과 물을 밑술과 합하여 덧술을 합니다. 덧술한지 4일이 지나면 숙성되는데 이때의 주도는 15도 정도입니다. 이렇게 숙성된 약주를 가지고 소주고리에서 소주를 내리는데, 한 솥에 숙성된 약주 1말을 넣고 4회 물갈이를 하면서 35도 정도의 소주를 받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토종 소주에 배, 생강, 울금, 계피를 넣고 꿀을 가미하여 이강주를 만들어지는데, 주도가 높아 오래 두어도 안전하며 오래 갈수록 맛과 향이 좋아진답니다. 꽤 복잡하네요. 그런데 다른 나라의 술은 어떨진 모르겠지만 이렇게 밑술에 덧술을 하고 각종 약재나 향신료를 추가하는 것이 우리 술의 중요한 특징인 것 같습니다. 

이강주는 미황색의 감미 음주로 맛은 달콤하고 매콤하며 계피향과 생강향이 그윽하게 퍼지는 게 특징으로 예전에는 약소주로 분류되었으나 현재는 리큐르 종류로 분류됩니다. 

(자료 출처 : 전주 이강주 홈페이지(http://www.leegangju.co.kr))


7. 경주 교동 법주

이미지 출처 : http://kyodongbeobju.com/_system/include/image.view.php?id=shop&uid=118

법주는 경북 경주시 교동에 있는 최부자 집에서 대대로 빚어 온 전통있는 술로, 만들 때 그 제조법이 엄격하고 까다롭기에 법주_法酒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경주법주를 처음 만든 사람은 최국준으로, 그는 조선 숙종(재위 1674∼1720) 때 궁중음식을 관장하는 사옹원_司饔院의 참봉을 지냈다고 합니다. 

법주를 만들 때에는 최씨 집안 마당의 우물물을 쓰는데, 물의 양과 온도가 사계절 내내 거의 일정하며 옛부터 물맛이 좋기로 이름이 나 있다고 합니다. 곡주를 만들 때 물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처럼 집안에 좋은 물을 얻을 수 있는 우물이 있다면 술 맛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술을 빚을 때는 이 물을 일단 팔팔 끓인 다음 식혀서 사용합니다. 

법주의 주원료는 토종 찹쌀로 물과 누룩과 쌀로 빚어지는 순수한 곡주로서, 색은 밝고 투명한 미황색을 띠며, 곡주 특유의 향기와 단맛, 약간의 신맛을 지니고 있습니다. 알코올 도수는 16∼18도 정도입니다. 제조방법의 가장 큰 특징은 밑술을 먼저 빚은 다음 이를 바탕으로 제2차 발효과정을 거쳐서 원래의 술을 숙성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조하는데 약 100일 정도가 소요되며 온도만 주의하면 1년 이상 보관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현재는 기능 보유자 최경에 의해 전승되고 있습니다.

다른 민속주가 밀주로 분류되며 암울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1970년대 초반에도 경주 법주는 슈퍼나 백화점에서 당당히 판매되었던 적이 있는데요,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얽혀있습니다. 국제 외교 무대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할 전통주가 없어 고심하던 박정희 전대통령은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전통주를 개발하라고 지시했답니다(이때 막걸리는 제외하라고 지시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_-....). 이에 여러 지방의 전통주가 보고되었는데 그 중 경주법주가 최고로 꼽혔고, 금복주와 국세청 기술연구소가 함께 연구하여 1972년 경주에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후에 경주법주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974년 방한한 미 포드 대통령 환영 만찬회, 1975년 몽고 대통령 만찬회에 접대용으로 선을 보이고, 1977년에는 팀스피리트 작전에 참가한 미장병들에게도 하사품으로 주어졌습니다. 1983년에 경상북도에서는 이 경주법주를 후세에 길어 보존할 전통민속주로 지정했고 1985년에는 남북적십자회담 만찬회에서 주된 만찬주로 놓여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때 보고된 수 많은 다른 민속주도 함께 개발되었더라면 지금 우리 전통주의 세계는 훨씬 풍성하고 다양해졌을텐데, 경주 법주만 남기고 나머지 술은 다시 밀주 취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박대통령은 진정으로 전통주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다만 국제 외교 무대에서 프랑스나 영국 등 여러 선진국들이 자국의 고유한 식문화로 와인이나 위스키 등의 전통주를 선보이는데 대항하기 위해 '우리도 이런 전통주가 있소'라는 보여주기 차원으로 경주법주를 육성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일제에 의해 압살되었다가 8.15 광복 후에서서히 살아나고 있던 전통주들을 1962년 주세법 개정으로 쌀로 술을 빚는 것을 금지시킴으로써 풍비박산 내버린게 5.16 이후에 등장한 군사정부이기도 하지요.

(자료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하로군의 소소한 풍경(http://haromk2.egloos.com/3908194))

8. 서울 문배주 

이미지 출처 : http://www.moonbaejumall.com/shop/data/scriptrotator/2.jpg

소주와 같은 증류주로서 문배나무의 과실 향이 풍긴다는데서 문배주라는 이름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문배주의 제조에 문배나무 과실이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배주는 다른 첨가물 없이 조, 수수와 누룩으로 빚는 순곡 증류주인데요, 알코올 함량은 약 40%로 북쪽 지방의 술이라 독한 편입니다. 도수가 높아서 위스키나 보드카와 같이 영구히 보관할 수 있다. 대동강 인근의 석회암층 물로 술을 담가 마신 것이 시초라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그러나, 한국 전쟁 이후 대한민국에서 제조되는 술은 예전 평양의 문배주와는 달리 화강암층의 물을 사용합니다. 그러니 정통(?) 문배주를 마시려면 북한에서 물을 수입해오거나, 통일이 되거나 해야겠죠? ^^

문배주는 원래는 평양 인근에서 마시던 향토주로 고려 시대에 어느 가문에서 조상 대대로 비밀스럽게 전해 내려오던 제조 방법대로 문배주를 빚어 고려 태조 왕건에게 진상했는데, 왕건이 매우 기뻐하면서 높은 벼슬을 주었다는 이야기 전해 옵니다. 그러나 알콜 증류법이 고려 중기 이후 몽고에 의해 전해졌으므로 순창 고추장과 마찬가지로 위의 전설은 후대에 만들어진 거라 볼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평양 주암산 아래에 있던 평창양조장이 문배주 제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고려 시대부터 왕이 마시는 술로 알려졌고, 현대에도 귀한 외국인 손님의 환영연에서 문배주를 대접하는 전통이 있어 빌 클린턴, 미하일 고르바초프 등이 한국을 방문하여 문배주를 즐겼다네요. 클린턴은 모르겠지만 보드카를 즐기는 고르바초프는 매우 좋아했을 듯~ 남북 정상 회담에서 양 정상이 건배하고 마신 술도 문배주일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술 중 하나입니다. 1986년에 서울의 문배주, 충청남도 면천의 두견주, 경주 교동 최씨가의 법주가 중요무형문화재로 함께 지정되었습니다.

(자료 참조 : 위키 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