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일반

[기초] 와인의 산미에 관하여

까브드맹 2018. 7. 7. 08:00

와인과 산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맛이 강한 술을 낯설어합니다. 주로 마시는 술 중에서 신맛이 강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죠. 일반 소주는 신맛이 절대로 없습니다. 단맛과 쓴맛 두 가지뿐이죠. 국내산 맥주도 쌉싸름한 맛과 고소한 풍미는 있어도 신맛은 거의 느낄 수 없습니다. 막걸리는 신맛이 조금 나지만, 그렇게 강하진 않죠. 막걸리에서 주로 느낄 수 있는 맛도 아스파탐의 단맛과 탄산가스의 시원한 느낌이며 신맛은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지방의 특색있는 막걸리는 조금 다르지만,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대량 생산 막걸리들은 신맛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약주로 넘어가서 산사춘 같은 발효주에선 신맛을 잘 느낄 수 있지만, 이걸 사서 마시는 분은 전체 소비자 중에서 극히 일부일 뿐이죠. 

이렇게 신맛이 강한 술을 마시는 일이 별로 없고 낯설다 보니 술에서 신맛이 나면 싫어하고 꺼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죠. 이러한 현상은 와인 종류에 따른 판매량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레드 와인보다 화이트 와인의 판매량이 매우 적은 것은 "와인은 포도로 만드는 붉은 색의 술"이라는 고정 관념 외에 신맛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화이트 와인의 특성도 많은 영향을 주는 듯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신맛이 강한 술만 아니라 신맛이 강한 와인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많은 분이 와인 맛이 드라이한 지 달콤한지 따질 뿐이지 산도의 높고 낮음을 따지는 분은 드물죠. 

와인에서 신맛을 좌우하는 산(酸) 성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와인에는 굉장히 다양한 산이 들어있는데, 산의 이름과 와인에 미치는 작용을 간단하게 알아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① 주석산(Tartaric acid)

와인에서 가장 중요한 산으로 발효가 끝난 다음 와인이 화학적인 안정성을 유지하도록 해줍니다. 와인의 색깔이나 풍미에도 영향을 미치죠. 화이트 와인에서 병 안에 떠다니는 하얀 앙금과 레드 와인의 코르크 마개 안쪽에 붙어있곤 하는 투명한 결정체는 주석산이 결합해서 생성된 것입니다.

② 사과산(Malic acid)

주석산과 함께 와인에 들어있는 주요한 유기산 중 하나입니다. 와인의 사과산은 와인을 신선하고 오래 보관할 수 있게 해주는 화학적 작용에 관여합니다. 사과산이 많으면 와인 맛이 신선하지만, 날카롭게 느껴질 수도 있으므로 레드 와인은 대부분 젖산발효를 해서 사과산을 젖산으로 바꿔줍니다. 신선한 맛을 강조하는 화이트 와인은 젖산발효를 안 하는 쪽이 더 많습니다.

③ 젖산(Lactic acid)

주석산과 사과산보다 훨씬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산으로 와인에서 느낄 수 있는 밀키(Milky)한 풍미는 젖산과 관련이 있습니다. 젖산은 당분을 알코올로 변환하는 1차 발효가 끝난 다음 날카로운 사과산을 부드럽게 만드는 젖산발효를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④ 구연산(Citric acid)

구연산은 라임(Lime) 같은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에 많이 들어 있지만, 와인용 포도에는 매우 적은 양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와인 속의 구연산은 보통 상업적으로 생산한 산미제를 넣어서 만듭니다. 와인 생산자들은 포도의 산미가 약하면 와인 전체의 산도를 끌어올리려고 법으로 허용된 산미 보조제를 사용하곤 하죠. 

⑤ 기타 산

아세트산(Acetic acid), 아스코르브산(Ascorbic acid), 소르브산(Sorbic acid), 호박산(Succinic acid)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와인에는 다양한 산이 들어있고, 산들은 탄닌과 알코올, 당분 등과 함께 와인 구조를 튼튼하게 해줘서 와인이 신선한 상태로 오랫동안 숙성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반응형

와인의 맛이라는 측면에서 각종 산은 침샘을 자극해서 식욕을 돋워주고 와인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생하고 힘찬 느낌이 들게 해주죠. 만약 와인의 산도가 너무 낮으면 와인은 힘이 없고 밋밋한 맛이 나게 됩니다. 그래서 일교차가 심한 곳에서 만드는 고급 와인일수록 산도가 강해서 마셨을 때 힘차고 또렷한 느낌을 주지만, 평지에서 대량 생산하는 저렴한 와인은 산도가 낮아서 마셨을 때 특별한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이 많죠. 한마디로 맛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맛이란 측면에서 신맛이 가진 또 하나의 역할은 단맛과 조화를 이뤄 질리지 않는 맛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늦게 수확하거나 말려서 당도를 높인 스위트 와인이 단맛만 너무 강하면 마치 꿀을 먹을 때처럼 단맛에 질려서 많이 못 마시게 되죠. 하지만 적당한 산도가 함께 들어있으면 와인 맛이 새콤달콤해지며 훨씬 산뜻하고 깔끔한 풍미가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스위트 와인은 대부분 산미가 많은 포도로 만들죠. 리슬링 포도로 만든 독일 스위트 와인이 디저트 와인으로 이름 높은 것도 리슬링의 높은 산도가 와인의 맛을 좋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참고 자료>

1. 크리스토퍼 필덴, 와인과 스피리츠 세계의 탐구(Exploring the World of Wines and Spirits), 서울 : WSET 코리아, 2005

2. 영문 위키피디아 와인에 들어있는 산 항목

3.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