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일반

[수다] 와인 레이블에 관한 소고(小考)

까브드맹 2018. 3. 11. 10:30

20세기 초에 유럽과 식민지의 지배층에 주로 유통 및 판매되던 와인은 10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전 세계로 퍼져나가서 20세기 후반에 이르면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호감을 느끼고 즐겨 마시는 주류가 되었습니다. 주 소비층도 유럽의 백인들에서 전 세계의 와인 애호가들로 옮겨갔죠. 오늘날 와인은 세계 각국 어디에서나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남녀노...소는 빼고, 누구나 즐기는 기호품이 되었습니다. 담배와 달리 와인은 '건강에 좋다'라는 인식과 유럽 문화에 대해 동경이 합쳐지면서 동양의 와인 붐은 경제 발전과 함께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일본과 한국에 이어 중국의 와인 붐은 세계 와인 시장의 고급 와인 가격을 들썩일 정도니까요.

그러나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와인을 마셔왔던 유럽인과 달리 다른 지역의 사람에게 와인은 여전히 '상류층의 술'이자 '배우기 어려운 술'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품종과 지역, 만드는 방법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며 다른 술보다 복잡하게 분류되는 와인은 다양성이 장점이자 매력입니다. 하지만 와인을 처음 마셔보는 사람에겐 골치 아프고 쉽게 다가서지 못하게 하는 단점으로 작용하죠. 그래서 와인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데도 불구하고 아직은 대중적인 주류로 자리 잡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와인을 많이 생산하는 미국에서조차 일반 서민이 친숙하게 여기는 술은 맥주나 위스키이며 와인은 이에 비교하면 소비량이 적은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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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분은 상점에 진열된 수많은 와인 중에서 어떤 와인을 골라야 할지 결정하지 못해 매우 난감해했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와인을 잘 아는 분은 레이블에 적힌 정보를 보고 원하는 와인을 고를 수 있지만, 와인 초보들은 레이블을 봐도 그 안의 정보를 파악하지 못해서 점원의 말만 듣고 와인을 사거나 보기에 좋아 보이는 와인을 고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분에게 확실하게 다가오는 와인 정보는 레이블의 디자인과 색상, 그리고 무엇보다 와인의 '이름'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길고 발음하기 어려울수록, 레이블 디자인이 밋밋하고 글자가 많을수록 와인을 구분하기 어려워져 와인을 재구매하지 않게 되죠.

그러다 보니 익숙하지 않은 맛은 둘째치고, 흰 바탕에 포도원 그림, 빽빽이 들어간 글자, 발음하기 힘든 지명이 적힌 프랑스 와인은 일반인에겐 그게 그거 같고 이름도 기억하기 힘들어 다시 사려고 해도 사기 힘든 와인이 되어버렸죠. 반대로 검은 바탕에 노란 캥거루가 그려져 있어 특징이 뚜렷하고 이름도 외우기 쉬운 "옐로우 테일"이나, 프랑스 와인이어도 샤토 "딸보" 처럼 이름을 기억하기 쉬운 와인은 몇 번이고 다시 찾는 와인이 되었습니다. 신세계 와인이 날로 발전하는 품질과 개성적이면서 기억하기 쉬운 디자인과 이름으로 세계 와인 시장에서 점차 점유율을 늘려나가자 전통을 중시하던 프랑스 와인도 변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랑 크뤼 같은 고급 와인을 제외한 중저가 와인들은 신대륙처럼 개성적인 레이블 디자인을 채택하고 이름도 외우기 쉬운 것으로 하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죠. 프랑스 와인 생산지 중에서 비교적 전통에 덜 얽매이는 남부 프랑스의 와인들이 그런 경향이 강합니다. 아래의 와인들은 요즘 남부 프랑스에서 요즘 나오는 와인들입니다.

와인 레이블 모음 1

강렬한 색상과 원색의 대비, 쉬운 이름 등을 사용하고 있죠. 아래에 나온 비슷비슷해 보이는 일반적인 보르도 와인의 레이블과 비교해보면 와인을 구분하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형태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와인 레이블 모음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