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음회&강좌

제 9회 서울국제주류박람회 참관기 3/3 - 기타 주류편

까브드맹 2011. 5. 25. 18:19

우리 술 전시대의 모습

○ 제9회 서울국제주류박람회 참관기 1/3 - 와인 편 1

○ 제9회 서울국제주류박람회 참관기 2/3 - 와인 편 2

이번 서울국제주류박람회에 출품된 주류는 와인만이 아닙니다. 우리 전통 주류와 일본의 사케, 중국의 고량주도 박람회에 나왔습니다. 박람회에 전시된 주류 중 와인이 가장 부스 크기도 크고 종류도 많았지만 위의 세 주류 역시 전시장 한쪽을 차지하고 열성적으로 술을 홍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더군요.

1. 꾸준한 홍보와 노력으로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국산 주류

때때로 너무 상업적인 술이 나올 때도 있지만, 국산 주류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제품을 전시하고 기획하는 능력 또한 한층 나아지고 있고요. 화요(火堯) 부스에 길게 이어진 관람객들의 줄과 대조적으로 썰렁했던 중국 고량주 부스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굳어졌습니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국산 주류의 모습을 볼 때 괜히 마음이 뿌듯해지더군요.

1) 지장수 호박 막걸리

지장수 호박 막걸리

강원도에 있는 낙천 주식회사에서 만드는 지장수 호박 막걸리입니다. 지장수는 황토를 물과 섞은 다음 황토가 가라앉으면 그 위에 뜨는 담황색의 물을 말합니다. 이 지장수를 써서 호박을 넣고 만든 막걸리가 이 지장수 호박 막걸리입니다. 맛이 부드러우면서 단데, 그 단맛이 다른 막걸리와 조금 달랐습니다. 훨씬 은은한 단맛이 나더군요. 그래서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단맛을 내기 위해 아스파탐을 사용하지 않고 과당을 썼다고 합니다.

지장수 호박 막걸리의 백 라벨

그래서 뒷면을 보니 역시 아스파탐을 넣었다는 표시가 없었습니다. 평소에 "아스파탐을 넣지 않고 막걸리를 만들 수는 없는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뜻 밖에 아스파탐을 사용하지 않은 막걸리를 만났네요. 개인적으로는 아예 감미료를 넣지 않고 만든 막걸리가 더 좋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과당을 넣어서 막걸리를 만드는 것도 재미난 생각이로군요. 기회가 되신다면 꼭 한 번 드셔보세요. 맛이 꽤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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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까메오 막걸리

까메오 막걸리

좀 더 고급 스타일인 까메오 막걸리. 역시 지장수를 사용했고, 위의 호박 막걸리는 국산쌀과 수입쌀을 섞어서 만들었지만 이 막걸리는 100% 국산쌀로 만들었습니다. 둘 다 살균탁주이기 때문에 6개월간 보존이 가능합니다.

3) 옥선주

옥선주

옥선영농조합법인에서 만든 옥선주. 병 디자인이 상당히 예쁘죠? 그래서 사진을 찍은 겁니다. 하지만 다른 쪽으로 생각해 보면 생산이나 보관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한 와인이나 사케는 병의 디자인을 거의 비슷하게 통일하고 있어 병 모양만 봐도 와인인지 사케인지 빠르게 인식할 수 있지만, 국산 주류는 병의 디자인이 이처럼 제각각이다 보니 병만 봐서는 이게 국산술인지, 중국술인지, 일본술인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죠. 게다가,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청주인지, 전통 소주인지, 막걸리인지 더더구나 가늠할 수 없고요. 그래서 소비자들에게 전통주에 대한 통일된 정보를 주지 못하고 오히려 혼란만 주는 것 같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한 생산자가 만들고 판매할 수 있는 술의 양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술을 담는 용기의 수량도 한정될 수밖에 없고, 이는 용기의 생산 단가가 올라가는 요인이 됩니다. 그리고 용기 가격이 올라가면 결국 소비자가의 상승과 생산자의 수익 감소로 이어지지요. 이처럼 통일되지 못한 술병 디자인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중소업체가 대다수인 전통주 생산자들로서는 술병을 통일시키려 해도 비용이 없기 때문에 여러모로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얘기를 알고 싶으신 분은 허시명 선생님의 글을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참고글 : [허시명의 우리 술 이야기](46) 술병이 없다!

 

 

4) 안동소주

안동소주

 안동의 명물 안동소주입니다. 소주고리를 사용하여 전통 방식으로 증류하는 소주이죠. 일반 소주에 비해 풍미가 상당히 무겁고, 화끈한 맛을 지녔지만 뒤끝은 오히려 깨끗합니다.

5) 화요 소주

경기도 이천에서 만들고 있는 (주)화요의 화요 소주. 증류식 소주로 안동소주에 비해 풍미가 조금 가볍고 부드러운 편입니다. 아마 소주고리가 아니라 금속으로 만든 단식 증류기나 연속식 증류기를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아니면 똑같이 소주고리를 사용하여 증류하지만 밑술을 빚을 때 차이가 있거나 , 물이 다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지역적인 기후 특성 때문에 맛이 다른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위의 안동소주와 화요를 함께 마셔보면 두 술의 차이점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6) 막걸리 이야氣

막걸리 이야氣

막걸리 이야氣. 디자인이 재미있어서 찍었습니다만, 시음하진 않았습니다. 매년 주류박람회에 가보면 국산주류를 전시한 부스에 꼭 들르는데, 처음엔 '잡다'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갈수록 '세련'되어 간다는 느낌이 듭니다. 술도 그렇고 전시와 기획도 그렇고요.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바탕으로 날로 성장해 간다는 느낌이랄까요? 외국에서 열리는 국제주류박람회에 우리 전통주가 와인과 함께 많은 외국인들의 호응을 얻을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2. 아직 반응은 약하지만 여전히 훌륭한 품질을 보여주는 중국 고량주

중국에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훌륭한 술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1980년까지만 해도 중국 내부에서 소비될 뿐 외국으로 수출하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또한 공산주의 국가이다 보니 우리나라와 교류도 거의 없어 중국의 멋진 술들이 우리에게 알려질 기회도 많지 않았고요. 1992년에 우리나라와 중국이 정식으로 국교를 맺은 후부터 중국술들이 많이 들어왔지만, 맥주, 소주, 막걸리에 길들여진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 중국의 도수 높은 술들은 잘 맞지 않았죠.

또 같은 고도주이지만 보리와 기타 곡류로 만드는 위스키는 역시 보리와 기타 곡류로 만드는 맥주와 궁합이 잘 맞아 폭탄주를 만드는 용도로 많이 팔렸지만, 수수를 주로 써서 만드는 고량주는 맥주와 궁합이 안 맞아 폭탄주 용으로도 별로 팔리지 않았고요. 이런 상황이다 보니 고량주는 중국요릿집에서나 가끔 팔려나갈 뿐 일반 상점에서는 매출이 신통치 않은 주류였습니다.

하지만 매출이 신통치 않다고 술조차 형편없는 것은 아니죠. 고량주는 맛과 향에서 매우 뛰어난 술임에 틀림없습니다. 양장피나 팔보채 같은 중국요리를 먹을 때나 양꼬치를 먹을 때 소주를 마시는 것도 좋지만 고량주를 한 번 접해보는 것은 훌륭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 생산하는 대중적인 고량주인 노룡구(盧龍口)나 신룡구(新龍口)는 뛰어난 품질에도 불구하고 양꼬치 집에서 7,000~8,000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팔리고 있으니 부담도 적고요. 그러므로 소주를 3병 마시느니 같은 값으로 고량주 한 병 마시는 게 훨씬 낫다고 봅니다.

1) 죽엽청주(竹葉靑酒)

죽엽청주(竹葉靑酒)

청요리집(?)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죽엽청주. 오랫동안 어르신들의 사랑을 받아온 명주이죠. 대잎의 내음과 함께 입안에서 향긋한 느낌을 받게 되는 술입니다. 이거하고 오향장육이나 양장피를 함께 먹으면... 후후 죽음이죠.

 

 

2) 금문고량주(金門高粱酒) 38도

금문고량주(金門高粱酒) 38도

고량주를 좋아해서 이것저것 알음알음 조금조금씩 마셔왔는데, 연태(烟台) 고량주와 함께 최고의 고량주로 꼽힐만한 품질을 지녔습니다. 코에 향기롭고 입안에서 짜릿하며 목구멍에서 후끈한 맛! 여운은 길면서 깔끔하더군요.

3) 금문고량주(金門高粱酒) 58도

금문고량주(金門高粱酒) 58도

38도는 향이 풍부한 반면 58도 쪽은 좀 더 깔끔한 맛과 향을 지녔습니다.

4) 국수주(國粹酒)

국수주(國粹酒)

이건 어떤 맛일까요? 디자인이 재미있어서 찍어봤습니다.

중국 고량주는 전년의 박람회와 규모나 종류면에서 비슷했다는 느낌입니다.

 

 

3. 작년만 못한 분위기, 일본 사케

3월 초에 일어난 일본대지진은 일본 사케업계에도 큰 피해를 줬습니다. 일단 후쿠시마현 일대의 사케 주조소는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고, 다른 지역의 사케도 이미지의 추락을 겪었을 겁니다. 실제로 일본에서 만든 사케에서 미량이나마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었다는 뉴스도 나오고, 사케 수입업자들은 매출의 하락을 걱정하고 있다는군요. 지금 국내에 수입되어 있는 사케는 대지진 이전에 들어온 것이라 별 문제가 없지만, 앞으로 들여올 물량은 이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해 당분간 국내의 사케 시장은 침체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군요.

이런 이유에서 일까요? 이번 주류박람회에서 일본 사케는 부스도 적고 찾아오는 방문객 숫자도 작년만 못했습니다.

1) 하쿠쯔루(白鶴)

하쿠쯔루(白鶴)

이름처럼 맑고 깨끗하지만 무게감이 좀 느껴지는 사케였습니다.

2) 준주(樽酒)

준주(樽酒)

시음해 보긴 했는데, 거의 막판에 마신 것이라 기억이 안 나는군요. 사진까지 찍은 것으로 봐서 괜찮은 맛이었나 봅니다.

3) 아키타 코마치(あきたこまち)

아키타 코마치(あきた こまち)

본양조(本釀造, 혼죠조)는 정미율 70% 이하의 백미와 쌀누룩에 물과 양조 알코올을 넣어 만든 청주를 말합니다. 사용하는 백미 1톤에 120리터(중량비로 1/10) 이하의 양조알코올 첨가가 가능합니다. 양조 후 그냥 병입 하면 알코올 도수가 높기 때문에 물로 희석하여 도수를 낮추므로 묘미나 감미가 부족하지만 일반적으로 맛이 가벼워져 상쾌한 스타일의 술이 됩니다. 특별본양조(特別本釀造, 도꾸베츠 혼죠조)의 경우는 정미율 60% 이하입니다.

 

 

4) 향로(香露)

향로(香露)

5) 설도(雪渡)

설도(雪渡)

발효가 끝난 상태에서 사케를 뽑아내기 직전의 탁주인 니고리자케(にごりざけ)입니다. 우리의 막걸리와 비슷하지만 부드러운 맛이 좀 더 강하고, 탄산은 없으며, 알코올 도수가 높은 편이죠. 일본 소비자들이 사케만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보기 힘들게 되었는데, 막걸리 붐에 힘입어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6) 백악(白岳)

백악(白岳)

일본에서 만드는 일본식 소주입니다. 몽고를 통해 전해진 알코올 증류 기술을 사용해서 오래전부터 소주를 만들어왔던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에서는 소주를 거의 생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선과 교류가 있었던 규슈(九州)의 일부 지역에서는 쌀이나 고구마 등을 이용해서 소주를 만들어 왔다고 하는군요.

구마(球磨)는 그러한 소주 생산지 중의 하나로 명확하지는 않지만 전국시대부터 소주를 만들었다고 하는군요.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다카하시주조주식회사의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이슬 같은 희석식 소주하고도 맛이 다르고, 안동소주 같은 전통 소주하고도 맛이 다른 묘한 개성을 지녔는데, 꽤 맛이 좋았습니다. 위의 레이블은 회사 설립 초기부터 사용한 레이블을 붙인 타입이고, 똑같은 제품에 요즘 사용하는 레이블을 붙인 타입이 따로 있더군요.

 

 

이렇게 해서 와인을 제외한 한, 중, 일 3개국의 술들을 살펴봤습니다. 와인도 좋지만 이쪽 술들도 꽤 재미있답니다. 다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할만한 뛰어난 술들을 만들지만 주류에 대한 법규가 미흡하고, 정부의 지원도 부족해서 와인이나 위스키 같은 서양주류에 많이 밀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3개국 중에서도 밀리는 편이고요.

프랑스 같은 경우 소펙사(SOPEXA)와 프랑스 대사관에서 외국을 상대로 경쟁적인 와인 홍보를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정부기관에서는 과연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곳이 있기나 한지? 한다고 해도 얼마나 하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대사관 쪽은 아예 기대도 안 하고요.

프랑스 와인이 전 세계적으로 명품 취급을 받는 것은 생산자들의 노력이 제일 크겠지만, 뛰어난 와인을 만들 수 있도록 법규를 정비하고, 해외로 판매할 수 있게 도와주는 프랑스 정부 기관의 노력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앞으로 우리 술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국내의 소규모 생산업자들에게 정부의 많은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제9회 서울국제주류박람회에 다녀왔던 소감을 3회에 걸쳐 포스팅했습니다. 서울국제주류박람회는 매년 갈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올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변하고 발전해 가겠지요. 술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내내 눈과 코와 입이 즐거웠던 시간이었는데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서 주류박람회에 한 번도 안 가본 분이 계시다면 내년 5월에는 꼭 한 번 참석해 보시길 바랍니다. 백 번 글을 읽어보는 것보다 한 번 참석해서 직접 코로 향을 맡고 혀로 맛을 보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