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막걸리] 일본에 수출되는 월매 막걸리의 맛은 어떨까?

까브드맹 2011. 4. 8. 08:58

얼마 전에 아버지께서 모임에 나가셨다가 막걸리 하나를 가져오셨습니다. 가져온 막걸리를 보니 어라? 그동안 많이 봤던 익숙한 디자인이더군요. 네, 막걸리 좋아하는 분은 사진을 보고 금방 알아차릴 겁니다. '서울장수(주)'에서 만드는 살균 탁주인 '월매(月梅)'의 일본 수출판이었습니다.

한잔하자는 아버지 말씀에 잔을 두 개 준비해서 아버지 한 잔 따라드리고 저도 한 잔 마셨습니다. 그런데 다릅니다. 확실히 뭔가 다릅니다. 익숙한 맛이 아니더군요. 아니, 익숙한 맛과 비슷한데 월매나 '서울장수 생막걸리'의 맛이 아니라 예전에 즐겨 마셨던 무엇과 맛이 비슷했습니다. 그 맛은 아주 예전에 막걸리에 익숙해지기 전에 종종 만들어 마셨던 '막사(막걸리+사이다)'를 떠올리게 했죠. 뭔가 다르다는 걸 느끼고 부랴부랴 슈퍼에서 월매를 한 통 사와서 간단히 비교 시음을 해보았습니다.

시음기를 올리기 전에 우선 두 막걸리의 디자인부터 비교해보죠. 한자로 月梅라고 적힌 것은 한국에서 판매하는 월매, 가타가나로 적힌 것은 일본으로 수출하는 월매입니다.

전면 사진 비교입니다. 디자인이 전체적으로 비슷하지만, 다른 부분이 눈에 띄는군요. 그래도 '서울장수'라는 로고와 황금빛 벼 이삭 디자인을 통해서 월매라는 걸 금방 알아볼 수 있습니다.

좌측 사진 비교입니다. 일본 수출용은 탄산이 들어있다는 표시가 유독 크게 붙어있습니다.

후면 사진 비교입니다. 국내 판매용은 전면과 후면의 디자인이 같습니다. 반면 일본 수출용은 후면에 '막걸리 따라 마시는 법'을 알려주는 그림이 큼지막하게 붙어있습니다. 일본에서 막걸리의 인기가 좋지만 아직은 익숙하지 않을 테니 이렇게 마시는 방법을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은 좋은 생각입니다. 안 그러면 바닥에 가라앉은 앙금을 이상하게 생각할 거고, 막걸리를 따다가 탄산이 흘러넘쳐서 낭패를 볼 수도 있을 테니까요.

우측 사진 비교입니다. 국내 판매용에는 술을 적당히 마시라는 경고 문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 수출용에는 희한한 문구가 붙어있네요. 

'Pro', 'for Professional', '業務用專用(업무용전용)'

일본에는 막걸리 마시는 사람도 아마추어와 프로가 따로 있는 건가요? 이 단어들에 대해 아래쪽에 작게 설명이 적힌 것 같은데, 제가 일어를 해석할 능력이 안 되어서 당최 모르겠군요. 혹시 일어에 능통한 분이 계시면 댓글로 해석을 달아주면 감사하겠습니다. "업무용"은 우리나라의 "업소용"과 비슷한 뜻으로 호텔이나 외식산업 외에 거리의 음식점 등에 납품하는 술을 뜻하는 것 같군요.

이렇게 전체적인 이미지는 비슷하면서도 세부적으론 다른 구석이 많은 디자인을 가진 두 막걸리였습니다. 이어서 두 막걸리를 비교 시음한 결과입니다. 

1. 탄산의 양

한국판 월매도 살균 탁주 주제(?)에 탄산이 많지만, 일본판 월매가 탄산량이 좀 더 많습니다. 거의 사이다 수준이더군요.

2. 단맛

일본판 월매가 단맛이 더 강합니다. 질릴 정도의 단맛은 아니지만, 두 막걸리를 교대로 마셔보면 일본판 월매의 단맛이 더 강한 걸 금방 느낄 수 있습니다.

3. 신맛

일본판 월매는 신맛이 유독 강합니다. 다만 날카로운 신맛이 아니라 부드러운 신맛이라서 마실 때 느낌이 좋습니다.

4. 앙금

일본판 월매의 앙금이 더 적어서 한국판 월매보다 약간 묽습니다. 

5. 총평

한국판 월매는 같은 회사에서 나오는 서울장수 생막걸리와 맛이 비슷합니다. 반면 일본판 월매는 막걸리에 사이다를 탄 막사와 비슷한 맛에 산미가 좀 더 강합니다. 아마 일본인의 입맛을 고려해서 그렇게 만든 것 같습니다. 한국판 월매에도 맛을 달게 하려고 아스파탐을, 신맛을 나게 하려고 구연산을 넣지만, 일본판 월매는 그 양을 더 늘린 것 같습니다. 앙금의 양은 줄이고요.

수출하는 가공식품이나 술의 맛을 국내용과 다르게 만드는 건 업계에서는 종종 있는 일입니다. 신라면도 내수용과 수출용의 맛이 조금 다르고 수출하는 국가에 따라 맛이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일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많이 하는 일이고요. 일례로 칠레 와인인 '코노 수르(Cono Sur)'는 국내로 들어오는 것과 일본으로 수출하는 제품의 맛이 다르다고 합니다. 국내로 들어오는 제품은 칠레에서 판매하는 것과 맛과 향이 같지만, 일본으로 수출하는 것은 일본인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양조해서 풍미가 확연히 다르다는군요. 일본으로 수출하는 와인의 양이 상당히 많아서 와이너리에서는 별도 생산한다고 해도 그로 인한 비용을 충분히 보전할 수 있고 오히려 수출량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겠죠. 그런 면에서 서울장수 막걸리에서 일본 수출용 월매를 일본인의 입맛에 맞춰서 만드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며 현지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올바른 선택일 수 있습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국내에서 판매하는 월매 그대로 일본으로 수출해서 일본인들에게 인기를 얻는 것이겠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낯선 음식에 쉽게 적응하지 못합니다. 일본인에게 술은 맥주, 청주, 위스키처럼 맑고 투명한 것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앙금이 가라앉은 막걸리 같은 탁주는 많은 일본인에게 아직도 낯선 모습의 술일 수밖에 없죠. 물론 일본에도 '니고리자케'라는 탁주가 있지만, 우리가 마시는 막걸리와 맛이 좀 다릅니다. 그나마도 사케에 밀려서 거의 사라졌다가 오히려 막걸리 붐에 힘입어 다시 살아나는 형편이라 일본에서도 많이 알려진 술은 아니죠. 이렇게 술의 형태가 낯선 데다가 맛조차 익숙하지 않으면 아무리 막걸리가 유행이라고 해도 계속된 구매로 이어지기 어려울 겁니다. 그러니 일단은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서 일본인이 막걸리라는 형태의 술에 익숙하게 만들고, 이후 제대로 된(?) 막걸리를 찾는 일본인이 늘어나면 그때 가서 한국에서 판매하는 것과 똑같은 막걸리를 수출하는 것이 마케팅적으로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우리나라 우유 회사에서 요플레라는 떠먹는 요구르트를 만들어서 판매했는데, 처음엔 거의 팔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요구르트 본연의 시큼털털한 맛이 우리나라 사람에게 익숙하지 않았거든요. 아무리 건강에 좋아도 입맛에 맞지 않으니 사람들이 한 번 먹어보곤 더는 구매하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과일과 감미료를 넣고 우리나라 사람의 입맛에 맞춰서 제품을 고친 다음 팔았더니 그때에서야 잘 팔리기 시작했다는군요. 요즘은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플레인 요구르트를 찾는 분도 꽤 많지만, 그런 분들이 생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어찌 보면 정통에서 벗어난 과일을 넣은 달콤한 요구르트의 역할이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막걸리의 수출 역시 이런 점을 고려해서 진행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언젠가 일본인들도 막걸리 맛에 익숙해져서 우리나라 사람과 일본인이 같은 맛과 향의 막걸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