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규정

[프랑스] 프랑스 와인의 등급 - AOC 4단계 등급 (재업)

까브드맹 2023. 11. 18. 16:12

1. 현대 와인 산업의 산실 프랑스

프랑스는 현대 와인 산업의 기본 체계를 갖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 와인에 국가가 공인한 등급제를 부여하여 차별적인 요소를 갖추는 동시에 본격적인 품질 관리를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와인은 단순한 술에서 국가가 인증한 '상품'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 세계적인 품종을 만들어 냈습니다. 국제적으로 고급 와인 양조에 널리 사용되는 까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피노 누아, 시라/쉬라즈,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 등등의 유명 품종이 모두 프랑스에서 탄생했습니다.

• 철저한 관리를 통해 품질을 신뢰할 수 있는 와인이 되었습니다. 프랑스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와인은 철저하지 못한 관리 때문에 프랑스 와인에 뒤처지게 되었죠.

이렇게 현대 와인의 길을 개척한 프랑스 와인이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난감한 느낌의 연속입니다. 일단 이름 자체가 한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라서 쉽게 익숙해지기 어렵고, 복잡하면서 지역마다 다른 등급 체계 때문에 와인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질려버리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왜 복잡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와인이 처음부터 공장에서 규격에 맞춰 생산되던 상품이 아니라 일상에서 마셔오던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제멋대로 만들던 음식을 어느 정도 규격에 맞추려다 보니 복잡해질 수 밖에 없죠.

예를 들어 김치를 생각해 보죠. 흔히 김치라고 하면 배추김치, 무 김치 정도만 떠올리지만, 김치 종류가 그것뿐인가요? 깍두기, 동치미, 겉절이, 물김치, 갓김치 등도 모두 김치의 일종입니다. 우리야 당연히 이런 것을 김치라고 생각하지만, 처음 김치를 먹어보는 서양인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것도 저것도 모두 김치라고 하는 바람에 머리를 싸맬지도 모르죠. 이런 점들 때문에 프랑스 와인을 알아가는 것은 매우 골치 아픈 일이지만, 흥미를 갖고 배워간다면 프랑스 와인이나 구대륙 와인의 무궁무진한 세계에 끝없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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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AOC 등급

프랑스 와인의 등급에 대한 가장 간략한 구분부터 알아보겠습니다. 1935년 프랑스는 AOC(Appellation d'Origine Controlee, 원산지 명칭(에 따른) 통제)라는 등급제를 개발했습니다. 이 등급제는 프랑스 와인을 크게 4개의 등급으로 구분하는 것으로 다른 유럽 국가도 이 체계를 본받아 자국 사정에 맞춘 등급 체계를 만들어서 사용 중입니다.

AOC 시스템은 와인 생산지에 따라 엄격한 와인 생산 조건을 규정하고, 이를 충족해야만 라벨에 AOC 등급을 표시할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생산 조건은 프랑스의 전국 원산지 명칭협회(INAO)가 정하고 농림부가 이를 공인하죠.

1) 뱅 드 따블(Vin de table)

뱅 드 따블 와인인 바론 뒤 발

AOC 등급 체계 중 가장 낮은 등급으로 테이블 와인이라는 뜻입니다. 어느 곳이든지 한 국가에서 재배된 포도를 섞어서 만들거나, 양조한 와인을 혼합해서 생산한 와인에 붙는 등급입니다. 품종과 지역 같은 걸 따지지 않고 만드는 와인이죠. 병에 'Vin de table'이라는 표시가 붙고 양조에 사용한 포도가 재배된 나라 이름이 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France'라고 적혀있으면 프랑스에서 수확된 포도로 만들었다는 얘기입니다. 값도 싸고 품질도 낮은 편이죠.

2) 뱅 드 뻬이(Vin de pays)

뱅 드 빼이 와인인 바로나르케 1999

다음 등급은 뱅 드 뻬이로 'Pay'라는 말은 지역, 지방이라는 뜻입니다. 라벨에 'Vin de pays'라고 표시되며 사용한 포도의 품종명을 표시할 수 있습니다.

뱅 드 뻬이 등급 와인은 한 지역에서 수확한 포도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미'라고 적힌 쌀에 경기도의 쌀만 들어가야지, 충청도 쌀이 들어가면 안 되듯이 지정된 하나의 지역에서 수확한 포도만 사용해야 합니다. 프랑스 정부에서 AOC 지역에 따라 지정한 포도 품종을 사용하지 않고 만든 와인도 전부 뱅 드 빼이 등급으로 들어갑니다.

뱅 드 빼이 등급으로 유명한 와인 생산지로는 프랑스 서남부의 랑그독-루씨옹(Languedoc-Roussillon)이 있습니다. 이곳은 정부의 규정과 다른 포도일지라도 그게 와인에 더 낫다고 생각되면 마음대로 심어서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우 우수한 와인을 만드는데도 낮은 등급을 받고 있죠. 진취적이고 규정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와인 생산자들도 자신이 원하는 와인을 만들 수 있기에 이 등급을 선호합니다.

3) 뱅 델리미테 드 쿠알리테 슈페리에(Vin Delimites de Qualite Superieure)

세 번째 등급으로 전체 프랑스 와인의 1%가 여기에 속합니다. 최고 등급인 AOC보다 덜 엄격하지만, 생산 지역과 포도 품종, 수확량, 알코올 함유량, 양조법 등에서 정부가 지정한 기준을 통과해야 붙일 수 있는 등급입니다.

4) 아오쎄(AOC : Appellation d'Origine Controlee, 아펠라시옹 도리진 꽁트롤레)

AOC 와인인 바론 드 돈작

최고 등급으로 AOC로 지정된 지역에서 지정된 포도를 사용하여 생산 규정에 따라 만들었을 경우에만 붙습니다. 와인 생산자는 이나오(INAO)가 각 지역에 따라 지정한 특정한 포도만 재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르도에서는 까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로 와인을 만들어야지 피노 누아를 재배해서 와인을 만들면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AOC 등급을 못 받습니다. 단위 면적당 생산량도 규제받기 때문에 맘대로 와인을 대량 생산할 수 없습니다. 이는 와인 품질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조치이죠.

AOC 와인은 지역마다 그랑 크뤼(Grand Cru), 프르미에 크뤼(Premier Cru), 크뤼 부르조아(Cru Bourgeois) 등등 조금씩 다른 여러 개의 등급으로 나뉩니다. 이 내용은 나중에 다른 포스트로 올리겠습니다.

 

 

 

3. AOC 등급 표시

AOC 등급 표시는 중간에 Origine에 해당하는 지역의 이름을 적습니다.

• Appellation Bordeaux Controlee : 보르도 지방의 AOC 와인

• Appellation Medoc Controlee : 보르도 메독 지역의 AOC 와인

중간에 들어가는 지역명이 세부 지역일수록 떼루아의 특성이 뚜렷해지기 때문에 더 고급 와인일 수 있습니다. 와인에 들어간 포도 품종은 대개 적지 않습니다. 지역마다 재배할 수 있는 포도가 지정되어 있어서 지역을 알면 당연히 사용한 포도를 알 수 있기 때문이죠. 최근에는 뒷면의 라벨에 친절하게 포도 품종 이름과 블렌딩 비율을 표시하는 샤토도 있지만, 값비싼 고급 와인일수록 포도 품종을 안 적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 와인 정도라면 어떤 품종을 사용했는지는 알고 마셔라."라는 뜻일까요?

4. AOC에서 AOP로 변경

2008년 8월 1일 EU가 EU 국가에서 생산하는 와인에 대한 지리적 표시를 보호하고, 와인 라벨 표시를 새롭게 규정하려는 법령을 제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기존의 AOC 제도를 조금 수정해서 새롭게 AOP(Appelation d'Origine Protégée)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2008년 이후에 생산된 프랑스 와인 중에는 AOC 대신 AOP 표시를 달고 있는 것도 있죠.

그러나 프랑스 정부가 갑작스러운 제도 변경에 따른 소비자의 혼란을 막기 위해 AOC와 AOP 제도를 당분간 함께 사용하기로 해서 여전히 AOC로 표시된 라벨을 붙인 와인들이 있습니다. 또한 AOC 보다 AOP 규정이 조금 더 까다롭기 때문에 그대로 AOC 와인으로 생산하는 와이너리들도 있습니다.

AOP에 대한 내용은 다른 포스트에서 다루겠습니다.

<참고 자료>

1. 크리스토퍼 필덴, 와인과 스피리츠 세계의 탐구(Exploring the World of Wines and Spirits), 서울 : WSET 코리아, 2005

2. 방문송 외 6인 공저, 와인미학, 서울 : 와인비전, 2013

3. 김의겸 , 소믈리에 실무, 서울 : 백산출판사, 2007

4.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