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독일 와인에 대한 편견
와인의 맛과 가격은 비례하는 경향이 있지만, 반드시 정비례하지는 않습니다. 때때로 형편없는 와인이 비싼 가격으로 팔릴 때도 있고, 상당히 뛰어난 와인이 마케팅 실패로 인한 사람들의 외면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풀리는 일도 있죠.
몇 년 전에 칠레 까사 도노소(Casa Donoso) 와이너리의 와인들을 시음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매우 뛰어난 와인들이었지만, 국내에선 마케팅 실패로 오랫동안 알려지지 못했고, 제대로 된 평가나 가격도 받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결국, 국내 시장에 안착하진 못한 것 같네요.
독일 와인도 국내에서 비슷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우선 일반인들이 독일 와인에 관해 잘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단맛 때문에 드라이한 맛을 좋아하는 와인 애호가들에게서 외면받는 실정입니다. 그러다 보니 뛰어난 와인이 들어와도 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일이 많고,
독일 레드 와인은 더욱 심한 편입니다. 저도 슈패트부르군더로 만들어진 독일 와인들을 시음하기 전까지는 독일 레드 와인에 깊은 편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독일 레드 와인은 별다른 감흥이 없고 그저 마시기 편한 그럭저럭 한 테이블 와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편견이죠. 이런 편견을 갖게 된 이유는 우선 독일에는 리슬링 같은 고급 화이트 와인은 많을지 몰라도, 레드 와인용 포도가 자라기엔 너무 추워서 포도 품질이 좋을 수 없고, 그러다 보니 좋은 와인을 만들기 힘들 것이라는 잘못된 상식이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그동안 국내에서 구매한 독일 레드 와인이 블랙 타워처럼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저렴한 테이블 와인이 대부분이다 보니 독일의 고급 레드 와인을 마셔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상식을 갖고 저가 독일 레드 와인만 접하다 보니 그릇된 생각이 강화된 것이죠.
하지만 독일의 우수한 슈패트부르군더 와인들을 마셔보자 '별 볼 일 없는 독일 레드 와인'이란 생각은 정말로 '별 볼 일 없는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최고의 부르고뉴 피노 누아 와인과 비교하면 떨어지는 점이 많겠지만, 독일 슈패트부르군더 와인의 길지 않은 역사를 생각해 보면 앞으로 더욱더 발전할 여지가 많습니다. 특히 부르고뉴 와인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점이 시장에서 어필된다면 부르고뉴 피노 누아 와인의 강력한 적수로 떠오를지도 모르겠네요.
2. 와인 시음기
독일 모젤(Mosel)강 유역에서 재배한 슈패트부르군더(Spätburgunder) 100%로 만드는 QbA(Qualitatswein bestimmter Anbaugebiete : 콸리타츠바인 베슈팀터 안바우게비테) 등급 와인인 마르쿠스 몰리터 브라우네베르거 클로스터가르텐에서는 특이하게도 첫 향으로 석유나 살충제 같은 휘발성 향이 났습니다. 그 후 체리 같은 붉은 과일 향과 초콜릿, 담배, 허브 향 등이 조금씩 올라오는데, 시간을 갖고 마신다면 더욱 다양한 향을 보여줄 것 같더군요. 입안에서는 달지 않은 맛과 산미가 적절히 균형을 잡고, 탄닌은 부드러우면서도 매우 탄탄한 느낌을 줬습니다. 여운 또한 상당히 길었고요. 뒷부분에서 약간 떫은맛이 있지만 2003 빈티지이니 몇 년 더 숙성시켰다가 오픈하면 더욱 좋을 겁니다. 앞으로 더욱 발전할 가능성이 엿보이는 와인입니다.
레어나 미디엄 레어로 잘 구운 소고기 스테이크, 비프 부르기뇽, 상큼한 소스를 얹은 닭요리 등과 함께 마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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