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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엄 넘치는 알렉시스 리신의 모습. 이미지 출처 : http://static1.squarespace.com/static/533fb7cfe4b0e277ef5df6ab/56bba1ca62cd94130fc4455b/5acbaecbf950b742523a6ab8/1523298824900/OD-AE119_Wine6_G_20110210233210.jpg?format=1500w)

1. 생애

1913년에 태어나 1989년에 작고한 알렉시스 리신은 러시아 태생의 와인 작가이며 와인 사업가입니다. 아주 뛰어난 와인 판매상으로 보르도 메독 지방에 있는 샤토 프리외르-리신(Chateau Prieure-Lichine)의 소유주이면서 샤토 라스꽁브(Chateau Lascombes)의 공동 소유주였죠. 무엇보다 오늘날 신세계 와인의 레이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품종 표기 방식을 널리 퍼뜨린 사람입니다.

리신의 고향은 모스크바입니다. 1917년에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리신의 가족은 프랑스로 피신했고, 1919년에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그래서 러시아인이지만, 사실 미국인이나 마찬가지죠. 리신은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지만, 더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중퇴했습니다. 아마도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성격이었을까요? 1932년에 프랑스 파리로 다시 건너가서 뉴욕 헤럴드 트리뷴(The New York Herald Tribune)지의 파리 지사 판매부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듬해인 1933년에 알제리의 수도 알제(Algiers)로 가서 계속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의 판매부에서 일하다 1934년에 미국에서 금주법이 철폐되자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죠. 

미국으로 돌아온 리신은 와인 수입사를 설립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1935년에 코르크와 병을 판매하는 뉴욕의 소매점에서 일합니다. 그리고 이 해에 미국 시민권을 얻죠. 그 후 뉴욕의 와인 수입상인 사코네 & 스피드(Saccone & Speed)사에서 근무했고, 1938년에 와인 상인인 프랭크 스쿤메이커(Frank Schoonmaker)가 리신을 국제 판매 매니저로 고용합니다.

1939년에 세계 2차 대전이 터지자 프랑스에 있던 리신은 보르도에서 마지막으로 탈출한 원양 여객선인 S.S 맨하탄(S.S Manhattan)호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옵니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리신은 유럽과 북아프리카에 주둔한 미 육군 정보부에서 복무하며 많은 공훈을 세웠고 소령으로 진급합니다. 이때의 공로로 벨기에 정부는 리신에게 오더 오브 레오폴드(the Order of Leopold) 훈장을, 프랑스 정부는 레지옹 도뇌르(Legion of Honour) 훈장을 수여하죠. 전쟁이 끝난 후 리신은 뉴 저지의 포트 딕스(Fort Dix) 기지에서 1946년 4월 18일에 제대합니다. 

제대 후에 리신은 회사에 동등한 동업 관계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스쿤메이커가 거절하자 리신은 회사를 떠납니다. 리신은 1946년부터 유나이티드 디스틸러 오브 아메리카( United Distillers of America)사의 와인 수입부에서 일합니다. 1947년 리신은 생 크로(St. Croix) 잭스 베이(Jacks Bay)에 있는 목화 농장을 구매하고, 1949년에는 샤토 뒤 테르뜨르(Chateau du Tertre)에서 일하던 삐에르 드 윌드(Pierre de Wilde) 를 와인 구매 보조인으로 고용하죠. 1950년에는 샤토 오-브리옹(Chateau Haut-Brion)의 수출 담당자가 됩니다.

1951년 리신은 샤토 프리외르-리신을 사들였고 1952년에 샤토 라스꽁브의 공동 소유주이면서 관리인이 됩니다. 같은 해에 리신은 샤토 프리외르의 와인 테이스팅 룸을 대중에게 공개하고 광고합니다. 이것은 일반인을 위한 최초의 전문 와인 테이스팅 룸이었죠. 1953년에는 샹베르땅(Chambertin)의 그랑 크뤼 포도밭인 라트리시에르-샹베르땅(Latricieres-Chambertin)의 일부와 샹볼-뮈지니(Chambolle-Musigny) 마을의 그랑 크뤼 포도밭인 본 마르(Bonnes Mares)의 일부를 사들여서 고급 부르고뉴 와인에도 손을 뻗치죠.

1955년에 리신은 뉴욕주의 롱 아일랜드시(Long Island City)에서 알렉시스 리신 네고시앙을 설립했고, 이를 위한 운송회사인 리신 & 시에(Lichine & Cie)를 만들려고 마고(Margaux)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1등급 와인의 선도적인 수출업자가 되죠. 

1959년 리신은 "1855년 공식 보르도 와인 등급제(Bordeaux Wine Official Classification of 1855)"를 바꾸려는 위원회의 위원으로 참여합니다. 이 위원회의 계획은 그랑 크뤼 샤토들의 반대로 실패하지만, 리신은 단념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평가하고 분류한 "보르도 그랑 크뤼 레드 와인 등급 분류(Classification des Grands Crus Rouges de Bordeaux)"를 1962년에 출간하죠. 또한, 자신이 작성한 등급제에 속한 와인의 품질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이를 반영하며 몇 차례 개정합니다. 비록 비공식적이지만, 이러한 리신의 노력은 그를 보르도 와인 등급 분류에 있어서 최고의 편찬자로 평가받도록 해줬습니다.

그 후 리신은 1973년에 미국과 프랑스의 화이트 와인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이스팅 평가를 했던 뉴욕 와인 테이스팅에 전문 테이스터로 참여했고, 1987년에는 영국의 와인 잡지인 디캔터(Decanter) 지로부터 "올해의 인물"로 뽑히기도 했죠.

1989년 6월 1일 리신은 샤토 프리외르 리신에서 암으로 죽었습니다. 그가 죽은 후인 2008년에 뉴욕의 "와인 미디어 협회"에서는 "와인 작가들의 명예의 전당(the Wine Writer's Hall of Fame)"에 리신을 추서했습니다.

와인업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리신의 별명은 "와인의 교황(Pope of Wine)"이었습니다. 와인업계에서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는 별명이죠. 저작으로는 1951년에 출간하고 1955년에 다시 개정판을 낸 <프랑스 와인(Wines of France)>과 <프랑스 와인과 포도원 가이드(Guide to Wines and Vineyards of France)>, 1967년에 출간한 <알렉시스 리신의 와인과 증류주 백과사전(Alexis Lichine’s Encyclopedia of Wines and Spirits)>이 있습니다.

2. 품종별 표시 와인

1940년경에 리신과 스쿤메이커는 캘리포니아 와인 생산자들에게 와인 레이블에 포도 품종을 표시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홍보했습니다. 신세계 와인 생산지의 와인 레이블 표기 방식에 관한 당시의 표준적인 관행은 "세미-제네릭(semi-generic)" 표시를 적는 것이었죠. 세미-제네릭은 미연방 주류연초세무무역국(United States Alcohol and Tobacco Tax and Trade Bureau)이 규정한 법적 용어로 와인 생산지의 명칭을 딴 특별한 모습의 와인을 일컫는 말입니다. 즉, 유명 와인 생산지의 와인을 본뜬 와인을 만들고 그 지역의 이름을 붙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벼운 레드 와인은 부르고뉴의 영어식 표현인 "버건디(Burgundy)"라 이름 붙이고, 가벼운 화이트 와인에는 "샤블리(Chablis)"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죠. 한마디로 저질 사이비 와인인 겁니다. 

그런데 1935년에 캘리포니아의 웬테 와이너리(Wente Vineyards)가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와인에 당시의 관행인 "그라브(Graves)"라는 표시를 안 하고 "소비뇽 블랑"이라는 품종 명칭을 적어서 판매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리신과 스쿤메이커는 웬테의 소비뇽 블랑 와인 판매량이 몇 배로 늘어난 걸 알아챘죠. 더욱 중요한 점은 당시 주요 와인 시장인 미국 동해안 일대에서 인기를 끌던 구세계 와인처럼 팔 수 있었다는 겁니다. 리신과 스쿤메이커은 이 방식을 적극적으로 홍보했고 로버트 몬다비 같은 와인 생산자들도 곧 이 방식을 자사의 와인에 적용합니다. 그 후 레이블에 품종을 적는 방식은 신세계 와인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고, 요즘은 전통적으로 품종명을 적지 않았던 일부 구세계 와인도 이 방식을 사용합니다.

<참고 자료>

1. 영문 위키피디아 알렉시스 리신 항목

2.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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