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에서 일하다가 우연히 양꼬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토실토실 살이 오르고 중간중간 기름기가 박힌 양고기를 꼬치에 꿰어서 숯불에 돌려가며 은근하게 구운 후 쯔란(孜然, 커민)과 고춧가루, 소금, 깨를 혼합해 만든 양념에 찍어 먹으면, 캬~ 그 맛이 일품이죠. 여기에 청도 맥주나 저렴한 백간(白干)을 하나 마시면 환상의 마리아쥬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맥주나 백간도 좋지만 저는 와인 애호가. 과연 양꼬치에 어울리는 와인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와인이 있습니다. 바로 칠레의 산타 헬레나에서 나오는 산타 헬레나 그랑 레세르바 까르메네르(Santa Helena Gran Reserva Carmenere)이죠.
이 와인은 블랙 체리 같은 검은 색 과일과 말린 과일 향이 나오며 볶은 헤이즐넛 같은 달고 고소한 향도 풍깁니다. 매끈하고 탄탄하며 무게감도 제법 있고요. 탄닌은 묵직하지만 부드럽습니다. 무엇보다 후추와 정향 같은 향신료 풍미가 솔솔 나와서 풍미 강한 양고기와 무척 잘 어울리죠.
참고로 까르메네르는 원래 보르도 6대 흑포도 중 하나로 한때 보르도 일대에서 널리 재배되었으나 19세기 말 필록세라 창궐 후에 자취를 감춘 품종입니다. 하지만 칠레에서 메를로로 잘못 알려진 채 재배되다가 1994년 몽펠리에 대학의 쟝-미셸 부르시코(Jean-Michel Boursiquot) 교수가 재발견했죠. 오늘날 칠레의 대표적인 특산 포도로 자리 잡았고, 칠레의 와인 생산자들은 이 포도로 끌로 아팔타 같은 걸작 와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2013년 5월 1일 작성되어 와인비전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