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오브 와인 31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게르만 왕조 지배하의 와인 산업

앞서 고트족이 포도밭을 보호했던 사례를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모습은 비단 고트족뿐만 아니라 다른 게르만 부족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잉글랜드를 점령한 색슨족은 와인을 ‘어른과 현명한 자를 위한 술’이라고 봤는데, 이는 그리스와 로마인이 와인을 바라보는 관점과 같습니다. 색슨족은 와인을 재료로 한 요리법을 선보였고, 와인을 넣고 끓인 닭 요리나 와인에 넣고 졸인 과일을 환자용 음식으로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색슨인들은 망자를 위해 차리는 식탁에도 와인을 올렸는데, 아마 와인에게서 우리나라 제사상의 제주(祭酒)와 같은 역할을 기대했나 봅니다. 해적으로 악명을 떨쳤던 노르만인도 프랑크 북부의 강가를 거주지로 삼은 후부턴 노략질 대신 프랑크 북부 지역의 와인 무역에 힘썼습니다. 그들은 영국 등지로 향하는 와..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서로마의 멸망, 중세의 시작

476년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혼란에 빠져있던 서로마 제국이 마침내 멸망합니다. 서로마 제국이 사라진 자리에 여러 게르만족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면서 중세의 문이 열리게 되죠. ‘중세’하면 ‘암흑시대’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일이 많습니다. 문화도 경제도 로마 시대보다 퇴보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죠. 하지만 많은 역사 연구를 통해서 중세시대 초기의 여러 문화나 제도는 이미 로마 시대 말에도 존재했던 것이며, 그 후에 더욱 발전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즉, 중세는 온전히 발전 단계에 있었던 역사이지 퇴보나 종교적 억압의 시대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이러한 점은 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게르만족의 산발적인 공격이 지속하였던 3~5세기에 유럽의 포도 재배는 트리어(Trier) 인근의 모젤(Mosel)강까지..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유럽 내륙으로 퍼져나간 로마의 와인 문화

로마 군단의 발자취를 따라 유럽의 와인 생산지는 1세기경에 남으로 크레타섬, 북으로 잉글랜드, 서로 포르투갈, 동으로 폴란드까지 넓혀졌습니다. 한국인에게 쌀과 된장이 주식이듯 로마인에겐 빵과 와인이 주식이었으므로 로마의 군인들이 현지 여성과 결혼해 정착한 곳을 중심으로 와인 문화가 퍼져나갔죠. 만약 포도를 재배하기 곤란한 곳이었으면 무역로를 따라 와인을 수입해서 마셨습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고, 380년 테오도시우스 1세가 칙령을 통해 사실상 기독교를 국교화하면서 와인은 주요 식품으로서 입지를 더욱 단단히 다집니다. 가톨릭과 정교회, 성공회의 7성사 중 하나인 성체성사에서 밀떡과 와인을 빼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물론 종교적인 이유만으로 와인 문화와 생산이 퍼..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제국의 로버트 파커,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

로마의 학자이며 작가였던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Gaius Plinius Secundus)는 현대의 로버트 파커(Robert M. Parker Jr)에 비견될 만한 당대의 와인 전문가였습니다. 같은 이름의 조카가 있어서 대(大) 플리니우스로 불리는 그는 란 책을 쓰면서 서기 1세기 무렵의 로마 제국과 이웃 국가에서 생산하던 와인에 관해 자세히 적어놓았죠. 에는 91종의 일반 와인, 50종의 고급 와인, 38종의 수입 와인 등 모두 합쳐 179종의 와인 목록이 나오며 플리니우스는 이 와인들을 원산지별로 평가하고 정리해서 등급을 매겼습니다. 예를 들어 카이쿠반 와인에는 XCVI등급을, 팔레르노 와인에는 XC등급을 매겼습니다. 또한, 특정 제품에 관한 평가도 기록해 놓았는데, 이런 모습은 원산지를 강조하..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 시대의 와인 평가

로마 시대에도 와인 전문가가 있었고, 그들은 로마 제국 각지에서 생산하는 와인을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와인은 하나같이 독하고 달콤한 것이었습니다. 현대의 와인 전문가들처럼 색이나 향에도 관심을 기울이긴 했지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당도와 알코올 도수였죠. 평가 항목에는 와인의 숙성도도 들어 있었습니다. 오늘날처럼 오래된 와인이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당시의 ‘오래된 와인’이란 전년도에 만든 와인을 뜻했다고 합니다. 대다수 와인들이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식초로 변하거나 상했다는 얘기죠. 아주 잘 익은 포도로 만들어서 당도와 알코올 도수가 높고, 산이나 탄닌이 많이 들어간 와인만 해를 넘겨 보관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이런 오래된 고급 와인들은 당연히 가격도 비쌌습니다. 301..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 와인의 스타일

로마 시대의 와인도 현대 와인처럼 맛과 향이 다양했습니다. 심지어 가격도 다양했죠. 서민들이 즐긴 와인은 오늘날의 저가 와인처럼 묽고 가벼운 스타일이었습니다. 몹시 가난한 사람들은 와인을 다 짜내고 남은 찌꺼기에 물을 부어서 만드는 음료인 ‘로라’를 즐겨 마셨습니다. 병사들은 취하면 안 되므로 와인 대신 식초로 변질되기 직전의 와인에 물에 타서 만든 포스카(Posca)를 마셨죠. 부유층은 좋은 와인을 마셨는데, 당도가 높을수록 고급 와인으로 쳐줬습니다. 그래서 와인 생산자들은 포도를 말려서 당도를 최대한 높인 상태에서 와인을 만들었고, 끓인 포도즙과 꿀을 넣어 단맛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오늘날엔 와인을 만들 때 포도 말고 다른 재료를 쓰는 일이 거의 없지만, 로마 시대에는 다양한 첨가물을 넣는 것이 전혀..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고대 지중해 세계의 와인 대중화 2/2

로마와 그리스에서 와인이 대중화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임산부가 술을 마셨을 때 알코올이 태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우려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일종의 권위 의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들은 와인을 비롯한 술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예로부터 여성이 술에 취하면 문란해진다는 남성적인 시각이 널리 퍼져 있었고, 이런 시각은 고대 그리스의 희극에서도 술에 취한 여성이 잘못을 저지르는 장면을 통해 드러나곤 합니다. 와인에 관대했던 로마에서도 여성의 음주는 부도덕한 것이었죠. 진작부터 와인 수요가 많았지만, 기원전 2세기경에 이르러 로마의 와인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영토의 확대나 인구 증가 등도..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고대 지중해 세계의 와인 대중화 1/2

처음 만들었을 땐 계층의 구분 없이 마시는 술이었을 와인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로 퍼지면서 왕족과 귀족의 술로 자리 잡았습니다. 학자들은 피와 같은 색을 지닌 와인에서 고대인들이 신성함을 느꼈고, 두 지역 모두 포도를 재배하기에 기후와 땅이 마땅하지 않아 생산량이 적었기 때문에 와인이 고위층을 위한 술로 자리 잡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왕족과 귀족이 와인을 독차지했지만 일반 서민들은 상대적으로 흔한 재료인 보리로 만든 맥주를 즐겨 마셨습니다. 당시 서민들에겐 맥주가 와인보다 더 인기 있었다고 하네요. 와인은 그리스와 로마로 전해지면서 점차 대중화됩니다. 두 지역 모두 포도 재배에 알맞고, 일찍이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이 들어선 지역이라 그랬을까요? 아무튼, 그리스-로마 문명이 전해진 곳에선 와인이 술의..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 시대의 와인 용기

고대 조지아인이 토기에서 포도가 발효한 와인을 발견한 이래로 와인 양조는 토기에서 이뤄졌습니다. 페니키아인이나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이나 모두 암포라라는 토기에 와인을 양조했고, 이웃 나라로 수출했죠. 하지만 암포라 외에 다른 용기를 쓰는 일도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때때로 염소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에 와인을 양조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한 번 와인을 양조할 때 사용한 주머니는 다시 쓸 때 조심해야 했죠. 와인이 발효할 때 나오는 탄산가스가 낡은 주머니의 약한 부분을 뚫고 나와 와인이 새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성경에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라.”라고 경고한 것은 이런 상황에 유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서기 1세기에 혁신적인 식품 용기가 발명되었고, 와인 생산에도 사용됩니다. 바로 오크통이죠. ..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시대의 와인 보관법

오늘날처럼 유리병이나 코르크 마개, 이산화황이 없었던 고대에는 와인을 오랫동안 보관하는 일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와인을 만들 때 으깨진 포도알을 발효조 안에 넣으면 포도 무게 때문에 저절로 흘러나오는 포도즙이 있습니다. 이 즙은 고급 와인을 만들 때 쓰는데, 옛날에도 고급 와인 양조에 사용했습니다. 이 즙으로 만든 와인은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보관만 잘하면 몇 년 동안 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양이 매우 적어서 포도를 압착해서 짜낸 즙을 함께 섞어서 와인을 만드는 일이 대부분이었죠. 두 즙을 섞어서 만든 와인을 상하지 않고 오랫동안 보관하기는 힘들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 가장 흔한 와인 보관법은 암포라에 와인을 담고 올리브 기름을 위에 부어 공기를 차단하거나, 포도의 당도를 높여 좀 더 독한 와..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군의 음료수, 포스카.

와인에 맛 들인 고대 로마인이 와인 사업의 수익성을 알게 되면서 자신들의 정복지에 포도밭을 가꾸게 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알프스산맥을 넘어 남부와 중부 유럽을 석권해 나가는 로마군의 군화 발자국을 따라 포도나무와 와인도 유럽 각지로 퍼져 나갔죠. 하지만 로마군이 정복지마다 포도나무를 심고 와인을 만든 것은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군인들의 건강이 더 큰 이유였죠. 요즘도 상수도 시설이 안 좋은 곳에서 물을 잘못 마시면 배탈이 날 수 있습니다. 로마군이 알프스 너머 유럽 대륙을 정복해 나갔던 옛날에는 이런 상황이 더욱 심했겠죠. 만약 병균이 우글거리는 물을 잘못 마셨다가 부대 안에 이질이 퍼지기라도 한다면 전투력을 몽땅 잃어버리는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러시아로 쳐..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인들, 와인 생산을 논하다.

대 정치가 카토도 농업론에서 와인에 관한 내용을 썼지만, 고대 로마인은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에 관한 체계적인 저술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들이 기록한 와인 양조법을 현대 와인 산업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흥미로운 것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예를 들어 고대 로마에서 와인과 관련된 가장 방대한 기록을 남긴 콜루멜라(Columella)는 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썼습니다. •포도나무 사이의 알맞은 간격 •와인 종류에 따른 적합한 생산지들 •버팀목 세우는 방법과 일꾼 한 명이 하루에 세울 수 있는 버팀목의 양 •포도 농사에 필요한 일꾼의 수 •노예의 식대 •포도 품종에 따른 와인의 양과 질, 그리고 선택의 문제 로마 문필가 사이에서 와인은 늘 화제의 대상이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의 와인 산업

전쟁을 통해 지중해를 앞마당 연못처럼 만들어버린 로마는 당대 지중해 세계의 거의 모든 와인 문화를 흡수, 통합하고 발전시켰습니다. 기원전 3~4세기 무렵에는 그리스인이 개간해 놓았던 이탈리아 남부의 포도밭을 접수해서 와인 산업의 토대를 단단히 굳혔죠. 기원전 2세기의 로마 정치가 카토(Cato)는 에서 “포도 재배는 이제 생계가 아니라 이윤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라고 적어놓았습니다. 그의 글을 통해 당시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가 가내 소비가 아닌 산업 형태를 갖췄음을 알 수 있죠.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하고 카르타고와 세 차례에 걸친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그리스와 발칸 반도 북쪽, 이집트, 프랑스, 스페인, 소아시아 반도까지 차례로 정복해서 지중해 세계의 중심 국가로 떠올랐습니다. 대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와인, 로마로 전파되다.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인은 고대 그리스 문명의 충실한 모범생이었습니다.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능력은 부족한 편이지만, 다른 지역의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데에는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죠. 그들이 그리스 문명에서 배운 문화 중에는 당연히 와인도 있었습니다. 일찍이 바다 건너 이탈리아 반도를 주목했던 고대 그리스인은 이탈리아 반도 남단에 여러 개의 식민도시를 세웠습니다. 도시 근처엔 당연히 포도밭을 조성해서 포도를 심고 와인을 만들었죠. 이탈리아의 토질이나 지형, 기후가 포도 재배에 적합했기에 그리스인은 이탈리아를 외노트리아(Oenotria), 즉 ‘와인의 땅’이라고 불렀습니다. 고대 그리스인의 와인 생산 기술은 교류를 통해 로마로 전파되었고 로마의 와인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죠. 로마의 와인 문화가 그리..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고대 그리스인이 믿었던 와인의 효험

"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나쁘지만 적당한 음주는 건강에 좋다." "와인은 폴리페놀 성분 때문에 건강에 좋다." 미디어에서 이런 이야기가 종종 나옵니다. 같은 양의 육류를 먹어도 와인을 즐겨 마시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심혈관 질환에 덜 걸린다는 프렌치 패러독스는 와인의 효능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죠. 그밖에 적당한 양의 와인이 장수에 도움을 주고, 성생활에도 효과적이라는 이야기는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봐도 수두룩하게 쏟아져 나옵니다. 고대 그리스인도 와인을 술인 동시에 몸에 좋은 약으로 생각했습니다. 와인은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이바지하는 음료로 인정받았고, 적당한 양의 와인을 마시는 것은 건전한 생활 습관으로 통했죠. 그리스의 비극 시인인 에우리피데스는 시를 지어 다음과 같이 와인의 효과를 칭송했..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음주에 관한 고대 그리스인의 생각

그리스인은 인간관계에서 와인이 가진 장단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비극작가인 아이스퀼로스(Aeschylos)는 다음과 같이 말했죠. "청동이 겉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와인은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다." 좌담회에서 그리스인은 본심을 감추지 않은 채 정직하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었는데, 와인은 이런 분위기를 유도하는 매개체로 작용했습니다. 또한, 대화를 부드럽게 해주는 선까지만 마시고, 취할 정도로 마시진 않는 자제력을 시험하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죠. 그리스인은 와인을 문명의 척도라고 생각했지만, 물로 희석해서 약간 기분 좋을 정도만 마시는 것을 문명인이 갖춰야 할 교양이라고 봤습니다. 와인에 물을 타지 않고 그냥 마시거나, 정신을 잃을 만큼 취하거나, 와인 대신 맥주를 마시는 것은 바르바로이, 즉 야만인..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고대 그리스인의 와인 평가

오늘날 품질에 따라 와인에 등급을 매기는 것처럼 고대 그리스인도 와인에 등급을 매겼습니다.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 최고의 와인은 키오스 와인이었고, 그 뒤를 이어 타소스 섬의 와인이 고급 와인으로 손꼽혔다고 합니다. 그리스산 와인은 아니지만, 이집트의 마레오틱 와인을 최상급으로 여기기도 했죠. 알렉산드리아 남서부에서 나오는 타이니오틱과 나일강 삼각주 한가운데에서 나오는 세베니스 와인 역시 그리스인이 높게 평가한 와인이었습니다. 그리스 와인 생산자들은 그리스산 와인의 명성과 품질을 유지하려고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예를 들어 타소스 와인은 다음과 같은 규정을 지키며 만들어야 했죠. •특정 크기의 용기에 담아서 물을 섞지 않은 채 판매할 것. 이것은 와인의 품질을 유지하려는 조치입니다. •타소스의 선박에 ..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고대 그리스의 좌담회 풍경

고대 그리스인이 어떻게 와인을 즐겼을까요? 고대 그리스 상류층 남성들이 저녁 만찬을 끝낸 후 벌인 좌담회를 통해서 그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좌담회를 뜻하는 심포지엄(symposium)이란 말은 그리스어인 심포시온(symposion)에서 나온 것이며, ‘함께 마신다’란 뜻입니다. 그러니 좌담회에 역시 ‘마시기 위한’ 와인이 빠질 수 없겠죠? 좌담회를 벌이는 장소에는 으레 와인과 물을 섞을 때 쓰는 ‘크라테르’라는 단지가 있었습니다. 좌담회 주최자는 이 단지에 물을 넣고 와인을 붓는데, 이때 와인에 섞는 물의 양을 정하는 것이 주최자의 역할이었습니다. 물과 와인의 비율은 보통 3대 1, 5대 3, 3대 2였는데, 섞는 비율이 중요하지 도수는 문제가 아니었죠. 그래서 고급 와인을 쓰면 도수가 올라가고, ..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와인 대중화를 이룬 그리스

기원전 1,000년까지만 해도 와인은 소수 계층을 위한 특별한 술이었습니다. 가격도 당시 서민들의 술이면서 와인의 최대 경쟁자였던 맥주와 비교해 훨씬 비쌌죠. 게다가 와인에 종교적, 문화적 의미가 결부되면서 와인은 지배층을 위한 특별한 술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늘날과 달리 고대에는 술이 일상적인 음료였습니다. 술은 칼로리와 영양소의 공급원일 뿐만 아니라, 알코올 때문에 다른 음료보다 상대적으로 오래 보관할 수 있었죠. 하지만 일반인들이 즐겨 마신 술은 ‘액체빵’이라는 별명을 가진 맥주였습니다. 왜 와인은 널리 보급되지 못했을까요? 종교, 문화,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중동과 지중해 동부, 이집트가 포도 재배의 한계선이었던 것이 주요한 이유로 작용했을 겁니다. 하지만 포도를 키우기에 딱 알..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고대 그리스 와인의 흔적, 암포라

요즘에도 와인 산업은 수익이 좋은 편이라는데, 고대 그리스 시절에도 상당히 수지 맞는 산업이었나 봅니다. 그리스인은 곳곳에 포도밭을 일구고 와인을 만들어 유럽 각지로 수출했는데, 오늘날 유럽 전역에서 발굴되는 수천 개의 암포라를 통해 그리스 와인이 뻗어 나간 지역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1세기에 오크통이 개발되기 전까지 와인 운반용으로 가장 널리 쓰인 용기는 ‘암포라(Amphora)’라는 토기였습니다. 모양과 크기가 다양한 암포라의 용량은 25~30ℓ 정도였고, 대체로 길쭉한 모양에 손잡이가 양쪽으로 달려있어 두 사람이 한쪽씩 잡고 나를 수 있었습니다. 바닥이 뾰족해서 똑바로 세우기 힘들었지만, 버팀대를 쓰거나, 나무 상자에 넣거나, 모래를 깔고 세워두기도 했죠. 암포라는 와인 뿐만 아니라 기름과 올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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