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92

[술 연대기] (기원전 5000년 ~ 기원전 1800년)

1. 기원전 5000년~기원전 4000년 1) 기원전 5000년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덕분에 땅이 비옥했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기원전 5000년 경이되자 농경이 크게 발달했습니다. 보리(Barley) : 스페인에 보리가 전파되었습니다. 이집트로 퍼졌습니다. 카사바(Cassava) : 카사바의 원산지는 남미로 기원전 5000년경에 브라질에서 재배되었습니다. 옥수수(Corn) : 멕시코 원주민이 땅을 경작하고 주변의 옥수수와 식물을 채취했는데 그 식물이 데킬라 이야기의 심장인 마게이(maguey, 용설란)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고학 유적지에서 발견된 옥수숫대 찌꺼기(식물 섬유를 잘게 잘라 씹은 다음 뱉어 낸 잔여물)는 고대인들이 달콤한 맛 때문에 옥수수를 소중하게 생각했음을 시사합니다. 옛날 사람들..

술 연대기 2019.04.10

술 연대기 (기원전 5000만 년 ~ 기원전 6000년)

1. 기원전 5000만 년 전~ 기원전 10,000년 전 1) 기원전 5000만 년 전 포도(Grape) : 포도는 화석을 통해 추정해 보면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에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2) 기원전 250만 년 전 포도 : 마지막 빙하기 홍적세 때 거대한 얼음층이 포도 분포지 대부분을 덮어버리는 바람에 포도는 멸종의 위기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3) 기원전 70만 년 전 구석기시대 : 사냥과 채집을 통한 이동 생활. 국내 유적지로는 공주 석장리, 연천 전곡리, 상원 검은모루 동굴, 유물로는 찍개, 긁개, 주먹도끼, 슴베찌르개가 있습니다. 4) 기원전 17000년(~15000년) 보리(Barley) : 보리 재배에 관한 최초의 흔적은 이집트 아스완 부근에 위치한 유적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구석기시대 후..

술 연대기 2019.04.08

[역사] AOC 제도의 역사

1. AOC? 프랑스 와인 법규인 지역 명칭 통제법은 "아펠라씨옹 도리진 꽁트롤레(Appellation d'Origine Controlee)", 약자로 AOC라고 합니다. AOC는 글자 그대로 "지역(Origine)"의 "명칭(Appellation)"으로 (와인의 품질과 등급을) "통제(Controlee)" 혹은 "관리"하는 법입니다. 즉, 특정 지역에서 수확한 포도로 규정에 맞춰 만든 와인의 레이블에 해당 지역의 지명을 표시해서 소비자가 레이블에 적힌 와인 산지를 보고 품질을 가늠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AOC에 따라 결정되는 프랑스 와인의 최고 등급이 AOC 등급입니다. AOC 등급은 특정산지의 포도로 만들었다고 해서 무조건 부여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메독(Medoc) 지역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

[역사] 마리 루이즈 파리소(Marie Louise Parisot)

와인 레이블에 그려진 말을 탄 여성은 평생을 와인 사업에 바친 마리 루이즈 파리소입니다. 엄청나게 보수적이었던 20세기 초반의 부르고뉴에서 오로지 와인을 위해 살았던 마리 루이즈의 생애에 대해 아래와 같은 얘기가 전해집니다. "딸의 탄생 소식을 들었을 때 미스터 파리소는 미칠 듯이 기뻐했습니다. 마리 루이즈는 자라면서 활발한 성격을 가졌고 그녀의 푸른 눈은 총명한 기운으로 반짝였죠. 변덕스럽기도 했지만, 그녀는 천성적으로 다정했고 주도적이었습니다. 그녀는 와인 창고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와인 생산자와 창고지기, 오크통 제작자와 친분을 쌓았죠. 16살에 그녀는 와인 창고를 담당했고 와인에 관한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줬습니다. 30대가 되었을 때 그녀는 전문적인 와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소수의 여성 중 ..

[역사] 최초의 프리스티지 뀌베 샴페인(Prestige Cuvée Champagne), 돔 페리뇽(Dom Pérignon)

모에 샹동(Moët & Chandon) 샴페인 하우스가 만드는 돔 페리뇽은 하우스의 고급 샴페인으로 판매하는 빈티지 샴페인(Vintage Champagne) 브랜드입니다. "Dom Pérignon"이란 이름은 베네딕트 수도회의 수사였던 돔 페리뇽(1638~1715)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으로 그는 샹파뉴 와인의 품질을 끌어올린 중요한 개척자였죠. 하지만 인기 있는 전설과 달리 그가 스파클링 와인 제조법을 발견한 것은 아닙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의 글을 참조하세요. [역사] 스파클링 와인의 기원 오랫동안 세계 최초의 스파클링 와인은 프랑스 샹파뉴(Champagne) 지역에서 만들었다고 알려졌습니다. 옛날에 출판했던 많은 와인 책자와 인터넷의 몇몇 자료를 살펴보면 17세기 후반에 프랑스 샹 a..

[역사] 오스트리아의 부동액 와인 사건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스트리아는 중부 유럽의 와인 강국입니다. 약 4천 년 전부터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었던 고고학적 증거가 발굴되었을 만큼 와인 역사가 오래되었죠. 중세에는 교회가 오스트리아의 와인 산업을 이끌었고, 16세기에는 와인 산업이 번창했습니다. 1780년에는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a)와 조세프 2세(Joseph II)가 오스트리아의 와인 산업을 진흥하려고 복잡한 주세를 하나로 통일했죠. 19세기에 유럽의 포도밭을 덮쳤던 악몽 같은 신대륙의 침입자인 가루곰팡이(Powdery Mildew=Uncinula necator)와 노균병(Downy Mildew=Peronospora), 필록세라(Phylloxera) 삼총사(?)는 오스트리아라고 예외를 두지 않았습니다...

[역사] 스파클링 와인의 기원

오랫동안 세계 최초의 스파클링 와인은 프랑스 샹파뉴(Champagne) 지역에서 만들었다고 알려졌습니다. 옛날에 출판했던 많은 와인 책자와 인터넷의 몇몇 자료를 살펴보면 17세기 후반에 프랑스 샹파뉴의 오빌레(Hautvillers) 대수도원에서 와인 창고 책임자로 일했던 돔 페리뇽(Dom Perignon)이 처음으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었다고 나오죠. 하지만 스파클링 와인의 역사는 돔 페리뇽 이전으로 한참 거슬러 올라갑니다. 1. 와인에서 올라오는 탄산 가스의 발견 인류가 와인을 만들어 마시기 시작한 후로 많은 사람이 와인에서 탄산 가스가 발생하는 현상을 관찰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도 이런 현상에 관해 기록을 남겼지만, 와인에 거품이 생기는 알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을 밝혀내진 못했죠. ..

[역사] 칠레에서 부활한 보르도 포도, 까르메네르

까르메네르(Carmenere)는 까베르네(Cabernet) 계열의 포도 중 하나로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메를로(Merlot), 말벡(Malbec), 쁘띠 베르도(Petit verdo)와 함께 프랑스 보르도가 원산지인 6개의 적포도 중 하나입니다. 보르도에서 까르메네르는 색이 짙은 와인을 만들 때 사용했으며, 때때로 쁘띠 베르도처럼 이국적인 향신료 향과 색, 탄닌을 보강하려고 다른 품종과 혼합하곤 했죠. 1. 까르메네르라는 이름의 유래 까르메네르라는 이름은 진홍색(Crimson)을 뜻하는 프랑스 단어 "카민(Carmin)"에서 유래했으며 가을에 잎이 지기 전의 까르메네르 잎 색깔이 밝은 진홍색을 띠어서 붙은 것이랍니다. 이 포도는..

[이탈리아] 시칠리아(Sicilia) 역사편

이탈리아 남부의 시칠리아섬은 지중해 한복판이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졌습니다. 일찍이 그리스인이 시라쿠사(Siracusa)를 중심으로 식민지를 건설했고, 카르타고와 대립하다가 포에니 전쟁 후에 로마의 일부가 되었죠.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엔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세력과 이탈리아반도의 기독교 세력이 충돌하는 지점이 되어 수시로 지배층이 바뀌는 혼란스러운 역사를 겪기도 했습니다. 11세기 후에는 유럽 열강들이 이합집산하면서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에 차례로 속하는 등 많은 정치적 격변이 있었고, 지중해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펼치려는 영국과 노르웨이도 가장 먼저 눈독을 들이는 곳이었죠. 마침내 2차 세계 대전 때에는 미국인까지 시칠리아에 상륙합니다. 이러한 정치적 혼란 속에서 시칠리..

[이탈리아] 이탈리아 와인 산지 - 개괄 1/2

1. 이탈리아 와인의 역사 1) '외노트리아(Oenotria)'. 고대 그리스인이 이탈리아반도를 부르던 단어로 '와인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2) 포도를 키우기에 알맞은 곳이었기에 고대 그리스인은 이탈리아 남부에 식민 도시를 건립하고 포도를 재배했습니다. 그 포도로 당연히 와인을 만들어 마셨죠. 3) 그리스인들이 남쪽에서 와인을 만들고 있을 때, 이탈리아 중부에서는 에트루리아(Etruria)인이 살면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어 마셨습니다. 4) 그리스와 에트루리아의 포도 재배법은 사뭇 달랐습니다. 그리스인은 포도나무를 ‘낮게’ 재배했지만, 에트루리아인은 올리브 나무나 미루나무 등을 자연적인 버팀목으로 사용해서 ‘높게’ 재배했습니다. 그리스인은 포도나무를 빽빽하게 심고 수확량을 제한해서 와인 품질을 ..

[프랑스] 프랑스 와인 산지 - 개괄 1/2

1. 프랑스 와인의 역사 1) 서유럽의 중앙에 있는 프랑스는 고대에 갈리아인이 살았습니다. 그들은 맥주를 주로 만들어 마셨지만, 귀족들은 무역을 통해 와인도 수입해서 마셨습니다. 카이사르가 갈리아인을 정복하면서 로마인들은 프랑스 땅 곳곳에 포도나무를 심고 와인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로마인들에게 와인을 탄 물은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료수였죠. 2) 로마가 무너진 후에도 프랑스의 와인 산업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교역을 통해 프랑스 와인은 유럽 각국으로 수출되었죠. 프랑스 남부에 있었던 아키텐(Aquitaine) 공국의 엘레오노르 여공작이 프랑스의 루이 7세와 이혼하고 헨리 2세와 결혼하면서 보르도 와인의 영국 수출량은 급증했습니다. 지금도 영국인들의 보르도 와인 사랑은 대단합니다. 3) 프랑스 동쪽에..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게르만 왕조 지배하의 와인 산업

앞서 고트족이 포도밭을 보호했던 사례를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모습은 비단 고트족뿐만 아니라 다른 게르만 부족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잉글랜드를 점령한 색슨족은 와인을 ‘어른과 현명한 자를 위한 술’이라고 봤는데, 이는 그리스와 로마인이 와인을 바라보는 관점과 같습니다. 색슨족은 와인을 재료로 한 요리법을 선보였고, 와인을 넣고 끓인 닭 요리나 와인에 넣고 졸인 과일을 환자용 음식으로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색슨인들은 망자를 위해 차리는 식탁에도 와인을 올렸는데, 아마 와인에게서 우리나라 제사상의 제주(祭酒)와 같은 역할을 기대했나 봅니다. 해적으로 악명을 떨쳤던 노르만인도 프랑크 북부의 강가를 거주지로 삼은 후부턴 노략질 대신 프랑크 북부 지역의 와인 무역에 힘썼습니다. 그들은 영국 등지로 향하는 와..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서로마의 멸망, 중세의 시작

476년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혼란에 빠져있던 서로마 제국이 마침내 멸망합니다. 서로마 제국이 사라진 자리에 여러 게르만족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면서 중세의 문이 열리게 되죠. ‘중세’하면 ‘암흑시대’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일이 많습니다. 문화도 경제도 로마 시대보다 퇴보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죠. 하지만 많은 역사 연구를 통해서 중세시대 초기의 여러 문화나 제도는 이미 로마 시대 말에도 존재했던 것이며, 그 후에 더욱 발전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즉, 중세는 온전히 발전 단계에 있었던 역사이지 퇴보나 종교적 억압의 시대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이러한 점은 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게르만족의 산발적인 공격이 지속하였던 3~5세기에 유럽의 포도 재배는 트리어(Trier) 인근의 모젤(Mosel)강까지..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유럽 내륙으로 퍼져나간 로마의 와인 문화

로마 군단의 발자취를 따라 유럽의 와인 생산지는 1세기경에 남으로 크레타섬, 북으로 잉글랜드, 서로 포르투갈, 동으로 폴란드까지 넓혀졌습니다. 한국인에게 쌀과 된장이 주식이듯 로마인에겐 빵과 와인이 주식이었으므로 로마의 군인들이 현지 여성과 결혼해 정착한 곳을 중심으로 와인 문화가 퍼져나갔죠. 만약 포도를 재배하기 곤란한 곳이었으면 무역로를 따라 와인을 수입해서 마셨습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고, 380년 테오도시우스 1세가 칙령을 통해 사실상 기독교를 국교화하면서 와인은 주요 식품으로서 입지를 더욱 단단히 다집니다. 가톨릭과 정교회, 성공회의 7성사 중 하나인 성체성사에서 밀떡과 와인을 빼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물론 종교적인 이유만으로 와인 문화와 생산이 퍼..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제국의 로버트 파커,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

로마의 학자이며 작가였던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두스(Gaius Plinius Secundus)는 현대의 로버트 파커(Robert M. Parker Jr)에 비견될 만한 당대의 와인 전문가였습니다. 같은 이름의 조카가 있어서 대(大) 플리니우스로 불리는 그는 란 책을 쓰면서 서기 1세기 무렵의 로마 제국과 이웃 국가에서 생산하던 와인에 관해 자세히 적어놓았죠. 에는 91종의 일반 와인, 50종의 고급 와인, 38종의 수입 와인 등 모두 합쳐 179종의 와인 목록이 나오며 플리니우스는 이 와인들을 원산지별로 평가하고 정리해서 등급을 매겼습니다. 예를 들어 카이쿠반 와인에는 XCVI등급을, 팔레르노 와인에는 XC등급을 매겼습니다. 또한, 특정 제품에 관한 평가도 기록해 놓았는데, 이런 모습은 원산지를 강조하..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 시대의 와인 평가

로마 시대에도 와인 전문가가 있었고, 그들은 로마 제국 각지에서 생산하는 와인을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와인은 하나같이 독하고 달콤한 것이었습니다. 현대의 와인 전문가들처럼 색이나 향에도 관심을 기울이긴 했지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당도와 알코올 도수였죠. 평가 항목에는 와인의 숙성도도 들어 있었습니다. 오늘날처럼 오래된 와인이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당시의 ‘오래된 와인’이란 전년도에 만든 와인을 뜻했다고 합니다. 대다수 와인들이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식초로 변하거나 상했다는 얘기죠. 아주 잘 익은 포도로 만들어서 당도와 알코올 도수가 높고, 산이나 탄닌이 많이 들어간 와인만 해를 넘겨 보관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이런 오래된 고급 와인들은 당연히 가격도 비쌌습니다. 301..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 와인의 스타일

로마 시대의 와인도 현대 와인처럼 맛과 향이 다양했습니다. 심지어 가격도 다양했죠. 서민들이 즐긴 와인은 오늘날의 저가 와인처럼 묽고 가벼운 스타일이었습니다. 몹시 가난한 사람들은 와인을 다 짜내고 남은 찌꺼기에 물을 부어서 만드는 음료인 ‘로라’를 즐겨 마셨습니다. 병사들은 취하면 안 되므로 와인 대신 식초로 변질되기 직전의 와인에 물에 타서 만든 포스카(Posca)를 마셨죠. 부유층은 좋은 와인을 마셨는데, 당도가 높을수록 고급 와인으로 쳐줬습니다. 그래서 와인 생산자들은 포도를 말려서 당도를 최대한 높인 상태에서 와인을 만들었고, 끓인 포도즙과 꿀을 넣어 단맛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오늘날엔 와인을 만들 때 포도 말고 다른 재료를 쓰는 일이 거의 없지만, 로마 시대에는 다양한 첨가물을 넣는 것이 전혀..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고대 지중해 세계의 와인 대중화 2/2

로마와 그리스에서 와인이 대중화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임산부가 술을 마셨을 때 알코올이 태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우려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일종의 권위 의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들은 와인을 비롯한 술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예로부터 여성이 술에 취하면 문란해진다는 남성적인 시각이 널리 퍼져 있었고, 이런 시각은 고대 그리스의 희극에서도 술에 취한 여성이 잘못을 저지르는 장면을 통해 드러나곤 합니다. 와인에 관대했던 로마에서도 여성의 음주는 부도덕한 것이었죠. 진작부터 와인 수요가 많았지만, 기원전 2세기경에 이르러 로마의 와인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영토의 확대나 인구 증가 등도..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고대 지중해 세계의 와인 대중화 1/2

처음 만들었을 땐 계층의 구분 없이 마시는 술이었을 와인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로 퍼지면서 왕족과 귀족의 술로 자리 잡았습니다. 학자들은 피와 같은 색을 지닌 와인에서 고대인들이 신성함을 느꼈고, 두 지역 모두 포도를 재배하기에 기후와 땅이 마땅하지 않아 생산량이 적었기 때문에 와인이 고위층을 위한 술로 자리 잡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왕족과 귀족이 와인을 독차지했지만 일반 서민들은 상대적으로 흔한 재료인 보리로 만든 맥주를 즐겨 마셨습니다. 당시 서민들에겐 맥주가 와인보다 더 인기 있었다고 하네요. 와인은 그리스와 로마로 전해지면서 점차 대중화됩니다. 두 지역 모두 포도 재배에 알맞고, 일찍이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이 들어선 지역이라 그랬을까요? 아무튼, 그리스-로마 문명이 전해진 곳에선 와인이 술의..

[역사] 히스토리 오브 와인 - 로마 시대의 와인 용기

고대 조지아인이 토기에서 포도가 발효한 와인을 발견한 이래로 와인 양조는 토기에서 이뤄졌습니다. 페니키아인이나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이나 모두 암포라라는 토기에 와인을 양조했고, 이웃 나라로 수출했죠. 하지만 암포라 외에 다른 용기를 쓰는 일도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때때로 염소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에 와인을 양조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한 번 와인을 양조할 때 사용한 주머니는 다시 쓸 때 조심해야 했죠. 와인이 발효할 때 나오는 탄산가스가 낡은 주머니의 약한 부분을 뚫고 나와 와인이 새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성경에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라.”라고 경고한 것은 이런 상황에 유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서기 1세기에 혁신적인 식품 용기가 발명되었고, 와인 생산에도 사용됩니다. 바로 오크통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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