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리츠

[보드카] 추위를 쫓아주는 동토의 생명수 - 보드카의 스타일과 유명 브랜드

까브드맹 2012. 8. 15. 07:00

우리 중에 스파이가 있는 것 같아. 이미지 출처 : http://charlieswineandspirits.com/spirits/complete-list-of-vodka/

아주 높은 도수로 증류되어 무색, 무미, 무취가 특징인 보드카는 다른 증류주에 비해 지역별, 제품별로 성격 차이가 미미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보드카가 완전히 중성적인 술이라는 것은 잘못된 견해입니다. 완성된 보드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적지만, 알코올과 물 이외에 보드카를 구성하는 요소, 즉 베이스 물질의 성분에 따라 보드카의 향은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또한 질감과 품질 역시 달라지죠. 따라서 어떤 보드카는 부드럽지만, 어떠 보드카는 자극적인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보드카의 브랜드는 수백 가지가 넘지만, 스타일에 따라 대략 세 가지로 나뉩니다.

동부 유럽 스타일

베이스 물질의 특성이 두드러지는 스타일로, 감자로 만든 것은 아주 크리미하고 부드러우며, 풍부한 구조감을 지닌 반면에 호밀(rye)로 만든 것은 섬세하고 스파이시한 향이 두드러진다고 합니다. 러시아나 폴란드 같은 동부 유럽에서 생산하는 보드카들이 대부분 이에 속합니다. 대표적인 보드카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스톨리치나야(Stolichinaya)

 러시아의 대표적인 보드카로 '수도(Capital)'라는 뜻입니다. 모스크바에 있는 크리스털 보드카 공장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죠. 재료는 밀(wheat)과 호밀, 사마라(Samar)와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 지역의 지하수로 60시간 동안 발효한 다음, 4차례에 걸쳐 증류하여 96.4%의 증류주를 뽑아냅니다. 그 다음에 물을 섞어 38%까지 도수를 낮춘 후 수정, 모래, 숯의 순서에 따라 여과하고, 마지막에 특수천으로 여과한 후 병입합니다. 

이미지 출처 : http://whisky.com.tw/products/index.php?mode=data&id=1182&top=0

1997년에 모스크바 창건 850주년을 맞아 '유리 돌고루키(Yuri Dolgoruky)'라는 보드카를 생산했는데, 이 보드카는 러시아 최고의 보드카로 손꼽힌다고 합니다. 이 보드카의 이름은 1147년에 목재로 된 크렘린궁을 지어 오늘날의 모스크바를 세운 유리 돌고루키 대공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는군요.

2. 앱솔루트(Absolut)

1879년에 스웨덴에서 만들어졌으며 이름의 뜻은 '절대적으로 순수한 보드카(Absolutely Pure Vodka)'라고 합니다. 재료로 밀을 쓰는 이 보드카는 바카디(Bacardi)와 스미르노프(Smirnoff)가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증류주 브랜드였으며, 현재에도 전 세계 126개국에서 팔리고 있습니다. 생산량도 어마어마해서 2008년에는 9,660만 리터의 보드카를 만들었는데, 이를 위해 8만톤 가량의 밀이 사용되었다는군요. 제품의 종류도 무척 다양해서 마트에 가보면 그냥 보드카 외에도 바닐라, 시트론, 만드린 등등 여러 가지 향을 넣은 앱솔루트 보드카를 볼 수 있죠.

여러 종류의 앱솔루트 보드카 만으로도 진열장을 하나 가득 채울 수 있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AbsolutVodka.jpg

앱솔루트에서는 매년 한정판을 생산하기도 하고, 시티 시리즈처럼 기존 상품에 도시 이름을 붙이고 새롭게 디자인한 제품을 내놓기도 하는 등, 앱솔루트 애호가들을 위한 마케팅을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앱솔루트 로스 앤젤레스의 모습. 이미지 출처 : http://www.notcot.com/archives/2008/07/absolut-los-ang.php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흔히 볼 수 있고, 잘 알려진 보드카 브랜드이죠.

3. 핀란디아(Finlandia)

1888년에 핀란드에서 만들어진 보드카입니다. 유럽에서는 양조할 때 두줄 보리를 많이 쓰는데, 핀란디아는 여섯줄 보리로 만든 것이 특이합니다. 원래는 퓨어 보드카 한 종류였는데, 1994년에 크랜베리 보드카를 내놓는 것을 시작으로 현재 9종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 제품 중 핀란디아 클래식 보드카는 2011년에 열린 얼티메이트 스피리츠 챌린지(Ultimate Spirits Challenge)의 무착향 보드카 부문에서 당당히 1위에 랭크되었죠.

핀란디아의 상표.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Finlandia_Vodka_logo.png

핀란디아 보드카는 백야의 붉은 태양 아래 뛰노는 세 마리의 사슴을 그린 상표와 핀란드의 유명한 디자이너인 ‘티피오 위어카라(Tipio WirHfala)’가 디자인한 얼음이 녹은 듯한 병 모양으로 유명합니다.

핀란디아 보드카의 병 모습

4. 단즈카(Danzka)

덴마크산 밀로 만든 덴마크 보드카로 1989년에 첫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유리병에 든 다른 보드카와 달리 알루미늄 병에 들어 있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알코올이 40% 들어간 오리지날과 50% 들어간 피프티(Fifty) 외에 커런트, 시트러스, 그레이프 후르츠, 크랜베리 향이 들어간 4종의 제품이 있습니다.

단즈카의 제품들. 앙증맞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www.danzka.com


서부 유럽 스타일

서부 유럽 스타일의 보드카는 부드러운 구조감과 중성적인 특징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자극성이 없고 다른 물질과 잘 섞이며, 칵테일 베이스로 사용하기에 좋죠. 미국과 서부 유럽에서 만든 보드카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대표적인 보드카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스미르노프(Smirnoff)

스미르노프는 미국을 대표하는 보드카로 세계 최대의 판매량을 자랑합니다. 원래는 1818년에 러시아에서 피요트르 아르센니에비치 스미르노프(Pyotr Arsenievich Smirnov)가 만들기 시작한 보드카로 1886년에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3세가 황실 단독납품 보드카로 지정할 정도로 품질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1917년에 러시아 혁명이 터지자 피요트르의 아들인 블라디미르 스미르노프(Vladimir Smirnov)는 러시아를 탈출해서 이스탄불을 거쳐 폴란드로 가게 되죠. 블라디미르는 폴란드에서 다시 보드카를 팔기 시작했는데, 이때 상품의 철자를 프랑스식으로 'Smirnoff'로 바꿉니다.

스미르노프의 로고.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Smirnoff.svg

한편 미국에서 금주령이 폐지된 이듬해인 1934년에 루돌프 쿠네트(Rudolph Kunett)가 처음으로 미국인들에게 스미르노프 보드카를 판매했습니다. 쿠네트는 1920년에 미국으로 이주한 러시아인으로 원래 그의 집안은 모스크바에서 스미르노프사에 주정을 공급했었다고 합니다. 쿠네트는 1930년대에 블라디미르를 다시 만났고, 그로부터 스미르노프 보드카 제조법과 미국 시장에서의 상표 사용권을 샀죠. 그리고 코네티컷주의 베텔(Bethel)에서 ‘소시에테 피에르 스미르노프 에 피스(Societe Pierre(Peter) Smirmof et Fils)’라는 스미르노프의 미국 지점을 개설하여 보드카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판매가 신통치 않아 쿠네트는 상표 사용권을 유지하기에 필요한 돈을 벌지 못했습니다. 결국 쿠네트는 코네티컷주의 주도인 하트포트(Hartfort)에서 규모는 작지만 꽤 이름있는 증류소를 운영하고 있던 영국 출신의 존 G 마틴(John G. Martin)에게 스미르노프 보드카 제조법과 상표 사용권을 넘겼고, 마틴은 자신이 운영하던 휴블레인(Heublein) 회사를 통해 1939년부터 본격적으로 스미르노프 보드카를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엔 마틴 역시 판매량이 매우 지지부진해서 고생했지만, "맛도 없고 냄새도 없는 하얀 위스키(white whiskey, no taste, no smell)"라는 컨셉으로 마케팅을 하자 매출이 급속도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현재 스미르노프 보드카는 세계적인 주류 회사인 디아지오(Diageo)가 상표권을 갖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4.8% 정도의 알코올이 들어간 스미르노프 아이스와 스미르노프 뮬을 통해 잘 알려졌지만, 스미르노프사는 다양한 향과 알코올 도수를 지닌 수십 종류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제품들은 레이블에 적힌 숫자와 색깔에 따라 구분할 수 있죠. 예를 들어 레드 레이블 21번은 가장 기본적인 제품으로 40%의 알코올이 들어간 순수 보드카인 반면, 블루 레이블 57번은 45~50%의 알코올이 들어간 것이지요. 스미르노프는 다양한 곡물을 사용하여 만듭니다.

2. 그레이 구스(Grey Goose)

파리 북쪽에 있는 피카르디(Picardy) 지역에서 수확한 밀과 꼬냑 지방에서 샘솟는 지하수로 만드는 프랑스산 보드카입니다. 하지만 이 제품을 기획한 사람은 미국인 시드니 프랭크(Sidney Frank)이며, 주요 타켓 시장도 미국입니다. 1996년에 폴란드의 최고급 보드카인 벨베데르(Belvedere)가 미국에 들어오면서 프리미엄 보드카 시장이 형성되었고, 시드니 프랭크는 미국인을 위한 최고급 품질의 보드카를 만들면 성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술에 대한 타고난 감각을 갖고 각종 술을 생산하고 있는 프랑스를 떠올렸으며, 유럽에 팀을 급파하여 그레이 구스를 만들게 됩니다. 그의 생각은 적중하여 바카디사가 그레이 구스를 사들였는데, 그 규모는 단일 주류 브랜드로는 사상 최대 금액인 20억 달러였으며, 수표도 아닌 전액 현찰이었다고 합니다. 이 거래를 통해 시드니가 벌어들인 수익은 약 16억 달러였다고 하는군요. 그레이 구스는 패리스 힐튼의 애주로도 유명하며, 국내에서도 구입 가능합니다.

이미지 출처 : http://www.greygoose.com/our-vodkas/original-vodka#gallery=vodkas


착향 보드카(Flavored Vodka)

보드카에 각종 향을 첨가한 보드카로 사용된 향을 표시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보드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보드카를 기주(Base)로한 혼성주라고 봐야 하죠. 오렌지나 바닐라, 크랜베리 같은 향을 첨가해서 만들기도 하고, 바닐라와 비슷한 향을 지닌 바이슨 그라스(Bison Grass)나 체리, 자두, 꿀 같은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위에 나온 보드카 브랜드에서도 순수한 플레인 보드카 외에 착향 보드카를 많이 생산하고 있죠.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착향 보드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리모나야(Limmonnaya)

레몬 껍질(Lemon Peel)을 사용한 보드카로 레몬향이 짙습니다. 알코올 도수는 40%입니다.

2. 오코트니치야(Okhotnichya)

짙은 밀짚 색깔을 띠며 향초의 냄새가 나고, 알코올 도수는 45%입니다. 보드카에 생강, 클로버, 적후추와 흑후추, 두송(Juniper), 커피, 아니스(Anise), 양지꽃(Tormentil), 물푸레나무의 뿌리(Ash Wood roots), 오렌지와 레몬 껍질, 화이트 포트 와인(White Port Wine), 설탕 등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침출시킨 것으로 벌꿀과 같은 단맛이 약간 난다고 합니다. 식후주로도 애용되며, 러시아 황제가 사냥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 자축하며 마셨다고 해서 ‘사냥꾼의 보드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는군요. 

3. 페르트소브카(Pertsovka)

고추를 넣고 그 성분을 침출시킨 보드카로 알코올 도수는 약 35%입니다. 보드카와 고추를 여러 달 동안 나무통에서 숙성한 후 정제해서 만드는데, 갈색의 색깔과 매운 맛이 특징입니다. 

4. 스타르카(Starka)

브랜디, 바닐라, 꿀, 포트 와인 및 크리미아 지방의 사과 잎, 배 잎 등을 넣어 10년 이상 숙성시킨 보드카입니다. 호박색이 나며 알코올 도수는 43%입니다.

5. 쥬브로우카(Zubrowka)

슬라브인들이 쥬브로우카(Zubrowka)라고 부르는 바이슨 그라스를 사용해서 만든 보드카로 노란색이 도는 녹색이며, 알코올 도수가 40%~50%에 이릅니다. 처음에는 쥬브로우카 잎을 한 개씩 병 안에 넣어 판매했으나, 이 잎에 들어있는 쿠마린(Coumarin)이라는 성분이 간을 상하게 만든다고 해서 금지되었고, 현재는 잎을 넣지 않은 상태로 만들어 다시 판매되고 있답니다.

쥬브로우카의 모습입니다. 이미지 출처 : http://www.zubrowka.com/index2.php

참고로 마트나 편의점에 가면 볼 수 있는 KGB라는 주류는 보드카를 희석한 후 맛과 향을 첨가한 것으로 러시아가 아니라 뉴질랜드에서 만든 것입니다. 알코올 도수는 약 5% 정도지요.


한국의 보드카

국내에서도 보드카를 생산한 적이 있었습니다. 진로의 로진스키(Rodzinsky), 롯데의 하야비치(Hayabich), 백화양조의 알렉산더(Alexander) 등의 상품이 있었는데, 그다지 인기를 끌었던 것 같진 않았고 언제부터인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고 말았더군요.

그런데 영문 위키피디아에는 국내에서 만들어졌다는 '한 아시안 보드카(Han Asian Vodka)'의 얘기가 나옵니다. 이 보드카는 국내에서 만든 보드카답게(?) 재료로 보리와 쌀이 쓰였는데, 보리로 만든 발효주를 4차례 증류한 다음에 쌀로 만든 것과 섞었다고 합니다. 이 보드카의 생산 회사가 어디인지는 어떤 매체에서도 밝혀진게 없으며, 한 아시안 보드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제품에 대한 설명과 수입사, 공급사에 대한 정보만 나와있을 뿐입니다.

일단 디자인은 괜찮은 편입니다. 이지미 출처 : http://www.hanasianvodka.com

홈페이지에는 'Light Vodka (Soju) & Spirits'라고 하여 두 종류의 상품 이름이 나와있는데, 위키에 나온 내용을 보면 소주는 알코올 48%, 보드카를 뜻하는 스피리츠는 알코올 80%라고 합니다. 소비자들의 리뷰에 의하면 한 아시안 보드카는 맛이 부드러우며, 알코올이 강화된 사케 같은 맛이 난다고 합니다. 구글로 검색해보면 한 아시안 보드카를 언급한 제법 많은 글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과연 이 보드카가 어떤 맛인지? 국내에서도 구입할 수 있는지? 참 궁금합니다.

<참고 자료>

1. 크리스토퍼 필덴, 와인과 스피리츠 세계의 탐구(Exploring the World of Wines and Spirits), 서울 : WSET 코리아, 2005

2. 김의겸 저, 소믈리에 실무, 서울 : 백산출판사, 2007

3. 영문 위키피디아 보드카 리스트 항목

4. 영문 위키피디아 스톨리치나야 보드카 항목

5. 영문 위키피디아 앱솔루트 보드카 항목

6. 영문 위키피디아 핀란디아 보드카 항목

7. 영문 위키피디아 단즈카 항목

8. 영문 위키피디아 스미르노프 항목

9. 영문 위키피디아 그레이 구스 항목

10. 영문 위키피디아 한 보드카 항목

11. 한 아시안 보드카 사이트

12.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