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시음기

[스페인] 메마르고 묵직하며 씁쓸한, 고목 같던 - Torres Nerola 2005

까브드맹 2010. 9. 28. 09:20

토레스 네롤라 2005

1. 토레스 네롤라

와인의 맛과 향에 관한 평가를 보면 '메마르다'란 표현이 나옵니다. 과일 향이 부족한 와인에 주로 쓰는 말인데, 그처럼 메마른 와인이 네롤라입니다. 스페인 까딸루냐(Catalunya) 지방의 시라(Syrah) 80%에 모나스트렐(Monastrell) 20%를 섞어서 만든 네롤라는 탁하진 않지만 진하고 검붉은 색이 매우 불투명합니다. 코르크를 따면 먼저 알코올 기운이 강하게 나옵니다. 이윽고 부드러운 나무 향이 나오지만, 충분히 열리지 않아서인지 양은 빈약합니다. 시간이 흘러도 과일 향은 물론이고 나무, 진흙, 나무줄기처럼 호감이 안 가는 향조차 잘 나오지 않습니다.

맛을 보면 탄닌의 수렴성 때문인지 짠맛이 느껴집니다. 탄닌은 조잡하지 않고 강하지만, 매우 메마르고 거칩니다. 부드럽지 않고 묵직하며 씁쓸한 탄닌은 시라와 함께 들어간 모나스트렐 때문인 것 같군요. 매우 진하고 강한 와인으로 검은 흙과 가죽 향이 슬슬 피어오르면서, 신맛과 쓴맛 사이에 단맛도 살짝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도 향이 도통 열릴 생각을 안 합니다. 달콤한 과일 향은 별로 없으며 흙과 가죽, 나무 냄새에 식물 줄기의 진액에서 나오는 비릿한 향 정도만 강하게 나옵니다. 수입사 자료에는 말린 자두나 무화과 같은 과일 향이 난다고 적혀있지만, 전혀 느낄 수 없군요. 다만 스파이시한 향은 나옵니다. 여운은 제법 길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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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야 과일 풍미가 살짝살짝 올라오는 것이 느껴집니다. 개봉 후 9시간이 지나도 강한 맛은 꺾이지 않으며, 탄닌은 여전히 뻑뻑하고 묵직합니다. 향은 가라앉아 나오지 않으며, 쓴맛은 사라지고 단맛만 남았을 뿐입니다. 강하고 뻑뻑한 탄닌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좋아할 만 하지만, 질감이 부드럽고 과일 향이 풍부한 와인은 절대 아닙니다. 함께 먹을 음식도 와인처럼 강한 풍미를 가진 것이어야 합니다. 석쇠에 구운 소고기와 양고기, 양 갈비, 생햄 등이 좋습니다.

네롤라의 생산자는 스페인의 와인 명가인 토레스(Torres)입니다. 그동안 토레스의 와인을 다양하게 많이 마셨는데, 이런 스타일의 와인이 나온 것이 이해가 안 갑니다. 보관 상태가 안 좋아서 산패한 것일까요? 하지만 물에 젖어 썩은 퀴퀴한 신문지 냄새도 나지 않고 시큼한 맛도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와인이 상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조금 끓어서 살짝 맛이 간 것 같긴 하지만요. 나중에 보관 상태가 좋은 네롤라를 마신다면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일단 느낀 대로 평가해봅니다. 와인 생산자인 토레스에 관한 내용은 아래의 글을 참조하세요.

 

[스페인] 스페인 와인의 대표 주자 - 보데가스 토레스(Bodegas Torres)

1. 보데가스 토레스 스페인 와인을 대표하는 '토레스 가문(Torres Family)'은 수 세대에 걸쳐서 스페인 와인에 관한 사랑과 와인 양조 비법을 계승해 왔습니다. 1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와인을 향한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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