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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프랑스산 갑옷을 입은 이탈리아 기사 - Agricola Querciabella Mongrana Maremma Toscana Rosso 2011

까브드맹 2020. 4. 11. 10:00

Agricola Querciabella Mongrana Maremma Toscana Rosso 2011

아그리콜라 쿠에르챠벨라(Agricola Querciabella)의 몬그라나 마렘마 토스카나 로쏘(Mongrana Maremma Toscana Rosso) 2011은 이탈리아 중부의 토스카나주에 있는 마렘마(Maremma) 지역에서 재배한 산지오베제(Sangiovese)와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메를로(Merlot)로 만든 IGT 등급의 레드 와인입니다.

1. 보르도 와인의 매력

개인적으로 프랑스 와인, 특히 보르도 와인의 매력으로 꼽는 것이 코르크를 딴 후 시시각각 변화하는 맛과 향입니다. 첫 잔은 향이 조화롭지 못하고 산미는 시큼털털하며 맛은 조금 간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보잘것없죠. 하지만 1시간, 2시간 지날 때마다 다채롭고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향과 우아하고 강렬하게 변하는 산미, 여운까지 길게 이어지는 복합적인 풍미는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들죠. 연신 감탄하며 황홀경에 빠져 마시다 보면 어느새 바닥을 보이는 와인 병에 안타까워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뛰어난 와인이 나오지만, 이렇게 맛과 향이 시시각각 매력적으로 발전하는 와인은 단연코 프랑스 와인, 특히 보르도 와인을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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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와인 양조

이번에 맛본 아그리콜라 쿠에르챠벨라의 몬그라나 마렘마 토스카나 로쏘 2011은 비록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만들어졌지만, 이러한 프랑스 와인의 매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와인입니다. 그래서 이 와인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프랑스산 갑옷을 입은 이탈리아 기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몬그라나 마렘마 토스카나 로쏘 2011은 토스카나의 마렘마 지역에서 재배하는 산지오베제 50%에 프랑스 품종인 까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를 각각 25%씩 섞어서 만들었습니다. 슈퍼 투스칸(Super Tuscan) 와인의 일종이죠. "Mongrana"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시인인 루도비코 아리오스토(Ludovico Ariosto)가 집필한 "광란의 오를란도(Orlando Furioso)"라는 작품에서 나오는 귀족 기사단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광란의 오를란도(Orlando Furioso)
(이미지 출처 : https://images-na.ssl-images-amazon.com/images/I/71wKD46XqjL.jpg)

와인 생산자인 아그리콜라 쿠에르챠벨라는 지난 30년 동안 엄격한 유기농법으로 포도를 길러서 와인을 만들어왔습니다. 와인과 자연의 조화에 집중하는 최고급 와인 생산자 중에서도 대표적인 프리미엄 와인 생산자로 인정받는 곳이죠. 포도 성장과 와인 양조 과정에서 생선 부레나 달걀흰자 같은 동물성 부산물을 완전히 배제하는 100% 식물 기반의 와인 생산 공정을 구현하려고 노력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3. 와인의 맛과 향

Agricola Querciabella Mongrana Maremma Toscana Rosso 2011의 색

몬그라나 마렘마 토스카나 로쏘 2011은 중간 농도의 아름다운 루비색을 띱니다.

향과 맛은 처음 15분과 40분 이후가 아주 다릅니다. 처음엔 산딸기와 레드 커런트 같은 붉은 과일 향이 잠깐 나온 후 가죽과 오크, 블랙베리 같은 검은 과일과 기름진 흙 등의 향이 나옵니다. 향이 강하게 나올 뿐이지 특별하지 않고 평범하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과일 향은 검붉은 체리와 관능적인 산딸기, 레드 베리로 바뀌고, 그윽한 향나무 향이 올라옵니다. 여기에 초콜릿과 박하, 부엽토, 신선한 쇠고기, 가죽, 다크 초콜릿 같은 다양한 향이 함께 퍼져 나오죠. 시간이 더 지나면 홍옥 사과의 껍질 같은 새콤달콤한 향과 살짝 매콤한 향신료, 향긋한 시가와 백합 향도 나오고, 잔향에선 그릴에 구운 소고기 같은 냄새도 맡을 수 있습니다.

처음엔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탄닌이 입안을 강하게 조여주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구조는 치밀하고 허술하진 않지만, 다소 거칠죠. 그러나 1시간 정도 지나면 마치 실크처럼 매끄럽고 탄력적인 구조를 맛볼 수 있습니다. 아주 훌륭합니다.

 

 

처음엔 굉장히 드라이하며 검붉은 과일의 산미가 강하게 나옵니다. 검은 과일의 단 풍미도 있으나 태운 나무의 진하고 씁쓸한 맛이 주로 나오죠. 흙과 타임(thyme) 풍미도 있습니다. 강하게 올라오는 알코올의 기운 덕분에 힘은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맛이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죠.

하지만 30분 정도 지나면 맛이 확 바뀝니다. 블랙베리와 블랙체리 같은 검은 과일의 달콤한 풍미가 점점 늘어나고 산미는 더욱 맛있어지죠. 탄닌은 더욱 볼륨 있게 커지고, 조금 거칠었던 느낌은 매끈하게 바뀝니다. 1시간 정도 지나면 검붉은 과일 풍미가 입안 가득 퍼지고, 대패로 깎은 매끈한 나무 같은 탄닌 느낌을 남기면서 넘어갑니다. 과일과 나무 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아주 매력적인 맛과 향을 보여주죠. 이후에도 맛과 향이 계속 바뀌는데, 손이 가는 대로 계속 마시다 보면 어느새 와인 병이 비워진 걸 발견하게 될 겁니다.

여운은 길고 시간에 따라 입에 남는 느낌이 달라집니다. 처음엔 흑연과 검은 과일, 마른나무, 나중엔 붉은 과일과 가죽 등의 풍미가 남죠. 강건하면서 점점 부드러워지는 탄닌과 검붉은 과일의 맛있는 산미, 마시는 동안 계속 힘찬 기운을 보여주는 14%의 알코올이 처음엔 삐걱거리는 듯하다가 점점 짜 맞춰지면서 훌륭하게 균형을 이룹니다.

 

 

이탈리아 와인이지만, 프랑스 보르도 와인 같은 느낌을 주는 와인으로 두 사람이 두 병을 따서 천천히 변하는 맛과 향을 오랫동안 즐기는 걸 추천합니다. 처음부터 맛있게 드시려면 디캔팅, 혹은 30분~1시간 정도 병 브리딩은 필수입니다.

소고기와 양고기 스테이크, 삼겹살과 돼지 목살, 각종 고기구이, 미트 소스 파스타와 피자, 라자냐, 숙성 치즈 등과 잘 어울리는 맛입니다.

몬그라나는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가 2010 빈티지를 세계 100대 와인(Top 100 Wines of the World) 중 하나로 선정할 만큼 뛰어난 와입니다.

2019년에도 와인 스펙테이터에서 1993년부터 시니어 에디터로 일하며 부르고뉴, 피에몬테, 토스카나 지역의 평점을 매겨온 브루스 샌더슨(Bruce Sanderson)이 "세계 100대 가치 와인(Top 100 Value Wines)"과 "90+ 포인트에서 8개의 이탈리아 레드" 중 하나로 몬그라나를 다시 선정했을 만큼 품질 관리도 뛰어나죠.

제임스 서클링(James Suckling)은 2011 빈티지에 90점을 줬습니다. 개인적인 평가는 B+로 맛과 향이 훌륭하고 매력적인 와인입니다. 2020년 4월 10일 시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