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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와인 빈티지(Wine Vintage)

까브드맹 2019. 1. 31. 08:00

빈티지가 찍힌 코르크 마개들
(이미지 출처 : https://images.fineartamerica.com/images/artworkimages/mediumlarge/1/vintage-wine-corks-frank-tschakert.jpg)

1. 빈티지를 표시하는 이유

와인의 맛과 향은 재료인 포도의 품질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포도가 잘 익었으면 좋은 와인이 나올 가능성이 커지고, 포도가 안 좋으면 와인 품질도 떨어질 수 있죠. 따라서 포도 작황을 보면 그 해의 와인 품질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경험 많고 숙련된 와인 생산자는 매년 와인의 맛과 향을 일정하게 하려고 양조 과정에서 큰 노력을 기울이지만, 재료의 상태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죠. 따라서 와인 레이블에 포도를 수확한 연도를 뜻하는 빈티지를 표시해서 소비자가 와인 품질을 고려할 수 있도록 합니다.

빈티지 표시는 포도 농사가 안 좋은 해에는 소비자가 바가지(?)를 쓰지 않도록 해주며, 포도 농사가 좋은 해에는 농부와 와인 생산자가 제값을 받고 와인을 판매할 수 있게 해주죠. 만일 기후 변화가 크지 않은 곳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든 와인이라면 빈티지에 따른 품질 차이가 심하지 않을 겁니다. 포도 품질이 매년 거의 일정할 테니까요. 반면에 기후 변화가 심한 곳이라면 수확기에 포도의 성숙도가 매년 다르기에 빈티지에 따른 품질 차이가 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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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럽과 신세계의 빈티지 차이

유럽과 신세계의 와인 생산지를 비교하면, 신세계 쪽의 기후가 좀 더 안정되었습니다. 특히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일조량이 풍부하며 필요한 물은 관개시설로 공급하므로 매년 포도 품질이 비슷합니다. 따라서 이런 나라의 와인은 빈티지에 따른 품질 차이가 크지 않죠. 같은 제품이지만 빈티지가 다른 두 와인의 맛이 다르다면 그것은 와인이 병에서 숙성하면서 맛과 향이 변했거나, 와이너리에 새로운 와인 양조자가 들어왔거나, 양조 방법을 바꿨거나, 시설을 개선했기 때문일 겁니다.

반면에 일기 변화가 상대적으로 심하고, 스페인의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 포도를 재배할 때 관개시설로 물을 공급하는 걸 금지하는 유럽에선 빈티지에 따라 와인의 맛과 향이 다릅니다. 따라서 와인을 구매할 때 빈티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고급 와인일수록 더욱 필요합니다. 만약 평소에 20만 원 정도에 판매하던 와인이 25~30만 원 정도의 가격으로 나왔다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빈티지가 좋은 해의 와인일 가능성이 큽니다. 다른 이유라면 와인 스펙테이터 같은 와인 잡지에서 100대 와인에 선정되었거나 국제회의 등에서 만찬주로 선정되어 매스컴에 오르내리거나 했을 때겠죠.

 

 

3. 안 좋은 빈티지의 와인을 피해야 할까?

작황이 안 좋았던 빈티지의 와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꺼릴 필요는 없습니다. 포도가 안 좋은 만큼 와인 생산자는 더욱 심혈을 기울여 와인을 만들기 때문이죠. 재료가 되는 포도를 더욱 엄선해서 고른다던가, 알코올 발효와 껍질에서 색소와 탄닌을 추출하는 기간을 세심하게 조절한다든가, 숙성 기간을 늘리고 새 오크통의 사용 비율을 바꾸든가 해서 떨어지는 포도 품질을 다른 방법으로 메꾸려고 노력하죠. 따라서 구매한 다음 적당한 시기에 좋은 환경에서 마신다면 훨씬 경제적인 가격으로 유명한 와인을 마실 수 있습니다. 다만 빈티지가 안 좋은 해의 와인은 보통 구조가 약해서 장기 보관이 어려운 것이 많습니다. 따라서 빈티지가 좋은 해의 와인보다 빨리 마셔줘야 합니다.

4. 빈티지가 중요한 보르도 와인

멕시코만에서 시작해서 대서양을 가로질러 유럽까지 흐르는 걸프 스트림 난류
(멕시코만에서 시작해서 대서양을 가로질러 유럽까지 흐르는 걸프 스트림입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scijinks.gov/review/gulf-stream/gulf-stream1.jpg)

보르도는 프랑스 와인 생산지 중에서 기후 변화가 가장 심한 곳 중 하나입니다. 보르도 앞바다를 흐르는 걸프 스트림(Gulf Stream)이 난류이므로 여기에 영향을 받는 보르도는 같은 위도의 다른 지역보다 온난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수확기에 비를 동반한 폭풍이 불기도 하고, 늦가을부터 이른 봄 사이에는 대륙성 기후의 영향으로 서리가 내리기도 하죠. 그래서 일기가 불순하면 이른 봄에 서리 피해를 보거나 수확기의 포도알에 수분이 가득한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보르도 와인은 다른 어떤 곳보다 빈티지가 와인 품질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죠.

보르도 와인 생산자들은 이런 변덕스러운 기후를 극복하고 가능한 한 안정된 품질의 와인을 만들려고 많은 궁리를 해왔습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수확 시기가 다른 여러 종류의 포도를 재배하는 방법이죠. 보르도 레드 와인을 만들 때 사용하는 3대 포도는 메를로(Merlot),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으로 수확 시기가 각기 다릅니다. 메를로를 제일 먼저 수확하고, 까베르네 소비뇽을 제일 나중에 수확하죠. 까베르네 프랑은 익은 상태에 따라 메를로와 비슷한 시기에 수확하기도 하고, 까베르네 소비뇽과 비슷한 시기에 수확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1997년과 2001년의 수확 시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1997년

- 메를로 : 9월 2일 ~23일

- 까베르네 프랑 : 9월 중순 ~ 10월 초

- 까베르네 소비뇽 : 9월 중순 ~ 10월 중순

● 2001년

- 메를로 : 9월 말 ~ 10월 첫째 주 

- 까베르네 프랑 : 10월 1일 ~10일

- 까베르네 소비뇽 : 10월 7일 ~ 10월 중순

이렇게 수확 시기에 차이를 둬서 설령 큰비가 며칠 동안 오더라도 포도 수확을 모두 망치는 일이 없도록 한 겁니다. 보르도 와인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면 해마다 와인에 사용한 포도들의 비율이 달라지는 걸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매년 포도 품질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죠.

빈티지에 따라 달라지는 보르도 와인의 품질에 관한 정보는 빈티지 차트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 폰 앱으로 찾아볼 수 있고, 와인 샵에 비치한 빈티지 표로도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