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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와이너리

[이탈리아] 프린치페 코르시니(Principe Cors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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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https://pbs.twimg.com/profile_images/707503806137950209/qQILPUOq_400x400.jpg)

1. 가문의 역사

"내일을 믿고 열심히 일하고, 시장이 기업을 요구할 때 위험을 감수하십시오."

코르시니 가문(Corsini Family)의 역사는 1100년대 말엽에 토스카나의 포지본시(Poggibonsi)에서 시작합니다. 그들은 처음엔 상인으로, 다음엔 성직자와 금융업자로 활동했고, 나중엔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이었죠.

1373년에 피에솔레(Fiesole)의 주교가 된 안드레아 코르시니(1302~1374)는 사후 3세기 동안 교회의 존경을 받았고, 1624년에 산탄드레아(Sant’Andrea)라는 이름으로 성인에 추증되었습니다. 반면 피에트로 코르시니(Pietro Corsini)는 아비뇽 유수 때 우르바노 5세(Urbano V) 추기경을 따르며 로마 교황의 복귀를 지지했죠.

(산탄드레아입니다. 이미지 출처 : http://www.principecorsini.com/en/content/our-history)

1400년대 초반에 금융업에 종사하던 마테오 코르시니(Matteo Corsini)는 영국 왕 에드워드 3세(Edward III)의 지급불능 선언으로 은행이 위기에 빠지자 영국에서 누리던 지위를 포기하고 토스카나로 돌아와 토지에 투자했습니다.

필립포(Filippo)와 바르톨로메오 코르시니(Bartolomeo Corsini)는 1500년대에 가문의 부를 굳건하게 쌓아올립니다. 그들은 런던에 은행을 열었고, 개인 우편 서비스를 만들었죠. 그들이 만든 우편 서비스는 런던에서 피렌체까지 3일 안에 편지를 전할 만큼 빨랐습니다. 그들은 막대한 부동산 자산을 축적하는 일을 맡았고, 상속 과정을 쉽게 하려고 복잡한 법률로 보호받았습니다. 아마 영국에서 보낸 시간은 그들에게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신탁을 사용하는 방법을 깨닫게 했을 겁니다.

영국에서 돈을 번 바르톨로메오(1622-1685)는 피렌체의 아르노(Arno)강을 따라 코르시니 궁전(the Palazzo Corsini )을 건축했고, 오늘날 그 건물은 비아 델 프라토(Via del Prato)에 있는 것과 함께 피렌체 바로크양식으로 불립니다. 두 채의 피렌체 궁전은 예술계에서 코르시니 가문의 참여가 늘어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카마인 성당(Church of Carmine)을 지어서 선조인 산탄드레아 코르시니에게 헌정했고, 코르시니 궁전에는 젠틸리찌아 갤러리(Gentilizia Gallery)를 세워서 많은 미술 작품이 소장했습니다.

(클레멘테 12세입니다. 이미지 출처 : http://www.principecorsini.com/en/content/our-history)

가문의 영향력은 1730년에 로렌조 코르시니(Lorenzo Corsini, 1652-1740)가 4개월 간의 추기경 회의(Conclave) 끝에 78세의 나이로 교황 클레멘테 12세(Clemente XII)로 선출되면서 정점에 도달했습니다. 클레멘테 12세는 10년 동안 교황으로 있으면서 예술가와 지식인의 후원자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카피톨리니 박물관(Capitolini Museums)의 설립자이며 로마 트레비 분수, 라테라노(Laterano)와 산 마리오 마죠레(San Mario Maggiore)의 산 조반니 교회의 새로운 외관, 로마의 팔라쪼 델라 콘술타(Palazzo della Consulta) 건축, 안지오(Anzio)와 라벤나(Ravenna), 안코나(Ancona) 항구의 후원자로 기억되죠. 교황이 가장 사랑했던 조카인 바르톨로메오(Bartolomeo)는 로마 기병대 사령관, 시칠리아 총독 (Viceroy of Sicily), 스페인의 대공(Grandee of Spain)이었습니다. 

1800년대에는 토마조 코르시니(Tommaso Corsini) 시대를 전후해서 더 많은 코르시니 가문 사람들이 정치 분야에서 활동했습니다. 토마조 코르시니는 1865년부터 1882년까지 이탈리아 왕국의 대리인이었고, 종신 상원의원, 보험 대리점인 폰디아리아 아씨쿠라지오니(Fondiaria Assicurazioni)의 설립자, 피렌체 저축은행(Cassa di Risparmio di Firenze)의 회장 자리를 역임했습니다. 심지어 전기와 철도 사업에도 참여했죠.

(코르시니 비골입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dotprincipecorsininewsdotcom.files.wordpress.com/2016/08/fibula-corsini.jpg)

토마조는 자기 자산에 대한 고고학자이기도 해서 현재 피렌체 고고학 박물관이 보관하는 에트루리아 민족의 유명한 유물인 코르시니 비골(Corsini fibula)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토마조는 로마의 팔라쪼 델라 룽가라(Palazzo della Lungara)에 있는 이탈리아 정부에 그림과 인쇄물, 서적 소장품을 기증했고, 팔라쪼 코르시니에 아카데미아 데이 린체이(Accademia dei Lincei)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토마조의 조카이며 시스마노 성의 왕자(VIII Prince of Sismano)인 토마조(1903-1980)는 이탈리아 공화국의 헌법 제헌 의회 대리인으로 이탈리아 정치에 참여했습니다. 농업과 가축 사육 분야의 전문가이기도 해서 토스카나와 움브리아(Umbria) 지역의 현대화에도 이바지했죠. 부인인 도나 엘레나 (Donna Elena)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코르시니 갤러리와 수많은 예술 작품을 폭격과 전투로부터 구해냈습니다.

현재의 시스마노 성의 왕자는 토마조 왕자의 아들인 필리포로 발덴고(Valdengo)와 콜로비아노(Collobiano)의 조르지아나 아보가드로(Giorgiana Avogadro)와 결혼했습니다. 필리포는 빌라 르 코르띠의 주인인 두치오(Duccio)의 아버지이죠.

2. 빌라 르 코르띠(Villa le Corti)

(이미지 출처 : http://www.principecorsini.com/sites/default/files/styles/gallery_grande/public/Le%20Tenute%20-%20Villa%20Le%20Corti_0.jpg?itok=y9dy5T3m)

빌라 르 코르띠(Villa le Corti)는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 숲,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끼안티 끌라시코(Chianti Classico)에 있습니다. 코르시니(Corsini) 가문의 역사적 유산으로 포도원과 올리브 나무로 이루어진 토스카나 언덕의 풍경이 이탈리아 주요 귀족 가문 중 하나인 코르시니의 천 년 역사와 융합하는 곳이죠.

피렌체(Firenze)와 시에나(Siena) 사이의 토스카나(Toscana)에서 두치오 코르시니(Duccio Corsini)와 그의 가족은 유기농법으로 끼안티 끌라시코 와인과 최고급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만들죠.

포도원의 면적은 250헥타르이며, 49%가 포도밭입니다. 포도밭에선 끼안티 끌라시코 와인인 돈 토마조(Don Tommaso), 꼬르테베키아(Cortevecchia), 르 코르띠(Le Corti)와 IGT 등급 와인인 작(Zac)을 만들기 위한 산지오베제(Sangiovese)를 재배합니다. 또 다른 73헥타르의 숲에선 끼안티 끌라시코 DOP 엑스트라 버진(Chianti Classico DOP extra virgin) 올리브유 생산용의 올리브 나무를 키우죠.

피렌체 부근의 끼안티에 있는 프린치페 코르시니(Principe Corsini)는 직사각형 형태의 별장입니다. 내부에 아치(arch)형의 회랑(loggia)이 있는 넓은 안뜰은 1층의 객실인 살라 델레 돈느(Sala delle Donne, 여자방), 살라 데이 티톨리(Sala dei Titoli, 타이틀 룸), 살라 끌레멘테(Sala Clemente) XII, 살로네 아 트라몬타나(Salone a Tramontana)를 향해 열려있습니다.

빌라 르 코르띠 포도원의 독창성과 매력은 웅장한 별장뿐만 아니라 주변을 둘러싼 넓은 정원입니다. 1층과 별장을 둘러싼 녹지 공간은 기하학적인 이탈리아식 정원과 수백 년 된 측백나무(cypress trees)로 이뤄졌고, 널찍한 정원은 축제(galas)와 야외 행사, 의식, 회의, 패션쇼, 영화 촬영에 안성맞춤인 장소이죠.

유서 깊은 와인 셀러는 독특한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1600년에 지어졌고, 별장과 정원의 아래를 파서 만든 지하 공간과 배선로에 바람이 통하도록 3개 층으로 이뤄졌죠. 이곳에서 프린치페 코르시니의 훌륭한 끼안티 끌라시코 와인이 탄생됩니다.

빌라 르 코르띠는 일 년 내내 예약과 안내원을 동반한 방문이 가능합니다. 16세기의 저택과 유서 깊은 포도주 저장고, 올리브 가공소, 올리브유 저장 단지가 있는 역사적인 저장고(orciaia)를 관광할 수 있죠. 방문은 프린치페 코르시니의 제품의 시음과 시식으로 마무리되며, 매장에서 직접 구매할 수도 있습니다.

3. 테누타 마르실리아나(Tenuta Marsiliana)

(이미지 출처 : http://www.principecorsini.com/sites/default/files/styles/gallery_grande/public/Tenuta%20Marsiliana_vista%20Castello_0.jpg?itok=aKpw3ixd)

테누타 마르실리아나는 코르시니 가문이 마렘마(Maremma)에 보유한 포도원입니다. 토스카나 마렘마의 중심지에 있으며 거의 3,000헥타르에 달하는 밭과 숲, 샘, 포도밭, 올리브 나무숲을 가진 곳이죠. 

포도원의 이름은 터키 해적인 바르바로사(Barbarossa)에게 잡혔다가 콘스탄티노플의 술탄에게 선물로 바쳐진 소녀인 벨라 마르실리아(Bella Marsilia)에서 따온 것입니다. 그 이름은 숨 쉴 수 있는 공기와 같은 바다와 코르시니 가문 덕에 때 묻지 않은 아름다움이 남아있는 지중해의 시골 풍경을 표현한 것이죠.

마르실리아나 포도원은 다른 곳과 달리 토스카나의 영원한 초상과 함께 나무, 마을, 포도원, 하얀 길이 있는 풍경을 가로질러서 도달하게 됩니다. 이 독특한 환경은 수세대 동안 코르시니 가문이 아름답게 유지해왔고, 너그러운 땅의 열매인 와인과 올리브유와 함께 앞으로도 이어질 겁니다.

이 포도원에 대한 사랑은 토마조 코르시니(Tommaso Corsini)가 1800년대 말에 에트루리아 문화의 몇몇 주요한 고분을 찾아내고 신원을 확인하도록 고무시켰죠. 오늘날 중세풍의 마을이 함께 하는 포도원은 이 지역의 역사적인 유산을 대표합니다.

마렘마를 이루는 마지막 조각에서 인간의 발자취는 준비된 자연과 공기와 공간과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이 땅의 유산은 우연히 생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거의 3세기에 걸친 코르시니 가문 사람들의 영지 관리에 의존한 부분이 큽니다.

4. 와인

코르시니 가문에서는 화이트 와인과 강화 와인을 뺀 다양한 와인을 생산합니다.

1) 비노 스푸만테 로사토(Vino Spumante Rosato) NV : 산지오베제를 샤르마 방식(Charmat) 방식으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입니다.

2) 르 코르띠 끼안티 끌라시코(Le Corti Chianti Classico) DOCG

3) 꼬르테베키아 끼안티 끌라시코 리세르바(Cortevecchia Chianti Classico Riserva) DOCG

4) 돈 토마조 끼안티 끌라시코 그란 셀레찌오네(Don Tommaso Chianti Classico Gran Selezione) DOCG

5) 산탄드레아 코르시니 빈 산도 델 끼안티 끌라시코(Sant'Andrea Corsini Vin Santo del Chianti Classico) DOC

6) 작 토스카나 산지오베제(Zac Toscana Sangiovese) IGT

7) 피코 토스카나 산지오베제(Fico Toscana Sangiovese) IGT

8) 비릴로 코스타 토스카나(Birillo Costa Toscana) IGT

9) 마르실리아나(Marsiliana Toscana) IGT

<참고 자료>

1. 프린치페 코르시니 홈페이지

2.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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