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일반

[수다] 소비뇽 블랑 와인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까브드맹 2018. 6. 7. 08:00

1. 국제 품종 7종

지구상에는 수천 종이 넘는 포도가 있습니다. 와인 양조용 포도인 비티스 비니페라(Vitis Vinifera)종 포도도 2천 종 이상 되죠. 2천 종이 넘는 비티스 비니페라 중에서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처럼 우수하고 잘 알려진 포도는 여러 국가에서 재배하지만, 카살(Casal) 같이 잘 알려지지 않은 포도는 포르투갈의 미뇨강(Minho river) 부근에서만 재배하니 모든 비티스 비니페라 포도가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죠. 수많은 비티스 비니페라 중에서 아주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는 포도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글로벌 품종이라고 부르는 포도들이죠. 와인 전문가에 따라 목록이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적포도(혹은 흑포도) 4종과 청포도 3종을 꼽습니다. 적포도 4종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날씨가 아주 서늘한 곳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재배하며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품종이죠.

2) 메를로(Merlot)

까베르네 소비뇽과 마찬가지로 서늘한 곳을 제외한 전 세계 포도 산지에서 재배하며, 까베르네 소비뇽이 자라는 곳이라면 대부분 함께 심어서 블렌딩 와인을 만들기도 합니다.

3) 피노 누아(Pinot Noir)

까베르네 소비뇽이나 메를로와 달리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며 더운 곳에서 재배하면 너무 농익어버려서 고유의 풍미가 나오지 않습니다.

4) 시라/쉬라즈(Syrah/Shiraz)

무더운 날씨를 좋아하는 포도로 프랑스 론(Rhone) 지역과 호주에서 많이 재배하지만, 은근히 세계 곳곳 여기저기에서 많이 재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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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도 3종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리슬링(Riesling)

서늘한 기후를 좋아해서 가을 날씨가 쌀쌀한 독일에서 많이 재배합니다. 다른 와인 생산국도 고산 지대처럼 기온이 서늘한 곳에 많이 심습니다.

2) 샤르도네(Chardonnay)

프랑스 샹파뉴(Champagne) 지방처럼 서늘한 곳이든 캘리포니아처럼 무더운 곳이든 가리지 않고 잘 자라는 포도로 양조용 청포도 중에선 가장 널리 재배합니다.

3)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샤르도네만큼 많이 재배하진 않지만, 역시 전 세계 곳곳에서 화이트 와인을 만들 때 사용합니다.

 

 

2. 청포도 품종에 대하여

청포도 3종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죠. 리슬링은 우리나라에선 조금 단 맛이 나는 독일산 리슬링 와인이 잘 알려져서 드라이한 와인을 좋아하는 와인 애호가들은 별로 찾지 않는 품종입니다. 물론 알자스(Alsace)와 호주 에덴 밸리(Eden Valley)의 리슬링을 마셔보면 생각이 바뀌겠지만, 애석하게도 이 지역 와인은 수입이 별로 안 되더군요. 우리나라에선 아직 낯선 지역의 와인이라 그런 걸까요?

반면에 샤르도네는 와인 애호가뿐만 아니라 화이트 와인을 조금 마셔본 분도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죠. 샤르도네 와인은 기본적으로 맛이 드라이하면서 묵직하고 강해서 우리나라 사람이 좋아할 만 하며, 스타일과 품질, 가격이 천차만별이어서 주머니 사정 따라 입맛 따라 골라 마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이트 와인 중에선 최고의 판매량을 자랑하죠. 하지만 묵직하고 진해서 생선회나 익히지 않은 해산물과 잘 안 맞고 매운 향신료를 많이 쓰는 동양 요리도 어울리지 않아서 개인적으론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크림소스를 얹은 농어 스테이크를 먹을 기회가 생긴다면 고려하겠지만요. 그리고 부르고뉴 샤르도네는 예외입니다.

3. 소비뇽 블랑

소비뇽 블랑은 신선한 산미에 싱그러운 과일과 초록빛 풀잎의 향기, 청량하게 느껴지는 질감을 가진 와인을 만들 수 있어서 은근히 찾는 사람이 많은 품종입니다. 소비뇽 블랑 와인은 크게 네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프랑스 보르도에서 만드는 소비뇽 블랑 와인입니다.

프랑스 와인답게 오크 숙성을 하지만, 별로 무겁지 않고 가볍고 산뜻한 것이 많죠. 하지만 쎄미용(Sémillon)을 섞은 와인은 제법 묵직하고 진한 것이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시트러스 계열의 신선한 향이 나오지만, 견과류와 오크 향도 맡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프랑스 루아르 밸리(Loire Valley)의 소비뇽 블랑 와인입니다.

소비뇽 블랑만 사용해서 만들며 시트러스와 사과의 신선한 향과 쐐기풀 향, 부싯돌 냄새, 미네랄 풍미를 느낄 수 있죠. 때때로 미네랄 풍미가 너무 진해서 바닷물처럼 짭짤할 와인도 있습니다. 생선회와 함께 먹으면 바다 향기가 입안 가득 느껴지죠.

세 번째는 뉴질랜드의 소비뇽 블랑 와인입니다.

1980년대에 세계 와인 시장에 혜성처럼 등장해서 전 세계 와인 애호가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지금은 전 세계에서 벤치마킹 대상 1호로 손꼽을 만큼 품질이 뛰어나죠. 감귤류의 과일 향이 진하며 깎은 잔디와 구스베리(Gooseberry), 엘더 플라워(Elder Flower) 향이 더해지면서 부드러운 오크 향도 살짝 나옵니다. 때로는 패션프루트(Passion Fruit)와 미네랄 풍미가 나타날 때도 있습니다.

구스베리 열매
(이게 구스베리로 영국에서 주로 자랍니다. 이미지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Stachelbeeren.jpg)

고급 와인은 더 높고 우아한 산도와 깊고 농축된 과일 향이 나오는데, 병 속에서 숙성하면서 신선한 채소 향, 특히 아스파라거스 향이 나타나기도 하죠. 워낙 향이 다양하고 강렬해서 영국의 와인 평론가 젠시스 로빈슨은 뉴질랜드 말보로(Marlborough)의 소비뇽 블랑 와인을 '향기의 판도라 상자'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서 상당히 비싼 가격에 팔리죠. 제 주변에도 화이트 와인은 시큰둥하게 여기다가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 와인을 마시고 나서 화이트 와인에 관한 생각을 바꾼 지인이 몇몇 있습니다.

마지막은 호주, 미국, 칠레 같은 신세계 국가에서 생산하는 소비뇽 블랑 와인입니다.

이 나라들의 소비뇽 블랑 와인은 위의 세 종류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더 가볍고 향도 맛도 단순합니다. 차이가 있지만, 산도는 대체로 높고, 향은 시트러스를 중심으로 사과와 풀 향 정도가 나며, 맛은 드라이하고 단순하지만 청량하죠. 고급 와인은 좀 더 복합적인 향을 풍기면서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 와인을 많이 따라갔지만, 수입된 와인은 대부분 그 정도까진 아닙니다.

저는 네 번째 소비뇽 블랑 와인들, 특히 칠레산 소비뇽 블랑 와인을 좋아합니다. 물론 품질은 네 종류 중에서 제일 낮지만, 제가 좋아하고 즐겨 찾는 이유는 칠레산 소비뇽 블랑 와인이 매우 편하고 마시기 쉬워서 그렇습니다. 언제 어디서 마시더라도 전혀 부담이 없거든요. 값도 다른 나라의 소비뇽 블랑 와인보다 저렴해서 보통 2만 원 정도면 품질이 꽤 좋은 것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창한 낮에 가볍게 한잔할 수 있는 상쾌한 와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와인이 칠레산 소비뇽 블랑 와인입니다.

물론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 다른 곳의 화이트 와인 중에서도 편하게 마실 수 있는 것이 있지만, 가격이 칠레 소비뇽 블랑만큼 싸지 않고 시중에서 구하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또 가격이 같으면 맛과 향이 칠레산 소비뇽 블랑 와인에 못 미치는 것도 많고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칠레 소비뇽 블랑으로 손과 마음이 가기 마련이죠. 더구나 칠레 소비뇽 블랑 와인은 생선회와 초밥처럼 해산물이 중심인 음식과 잘 맞고, 깐풍새우와 라조기, 청증농어 같은 중국요리에도 잘 어울립니다. 그래서 친구랑 만났을 때 칠레산 소비뇽 블랑을 한 병 사고 중국요리 하나 시켜서 먹으면 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죠.

소비뇽 블랑 와인과 잘 어울리는 흰살 생선회
(서로 잘 어울린단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