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생산지

[이탈리아] 이탈리아 와인 산지 - 개괄 1/2

까브드맹 2017. 10. 4. 07:00

이탈라아의 행정구역 지도

1. 이탈리아 와인의 역사 

1) '외노트리아(Oenotria)'. 고대 그리스인이 이탈리아반도를 부르던 단어로 '와인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2) 포도를 키우기에 알맞은 곳이었기에 고대 그리스인은 이탈리아 남부에 식민 도시를 건립하고 포도를 재배했습니다. 그 포도로 당연히 와인을 만들어 마셨죠. 

3) 그리스인들이 남쪽에서 와인을 만들고 있을 때, 이탈리아 중부에서는 에트루리아(Etruria)인이 살면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어 마셨습니다.

4) 그리스와 에트루리아의 포도 재배법은 사뭇 달랐습니다. 그리스인은 포도나무를 ‘낮게’ 재배했지만, 에트루리아인은 올리브 나무나 미루나무 등을 자연적인 버팀목으로 사용해서 ‘높게’ 재배했습니다. 그리스인은 포도나무를 빽빽하게 심고 수확량을 제한해서 와인 품질을 높였지만, 에트루리아인은 성글게 심고 수확량을 늘렸으며 와인 품질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재배 방식의 차이는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남부와 북서부에서는 철사를 사용해서 포도나무의 높이를 제한하지만, 이탈리아 북동부에서는 격자 울타리(high-trellis)방식의 버팀목을 사용해서 포도나무가 높게 자라도록 합니다.

5)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한 로마인은 에트루리아와 그리스의 포도 재배법과 와인 양조법을 모두 흡수해서 발전시킵니다. 여기에 포에니 전쟁을 통해 점령한 카르타고의 와인 양조법까지 전해져 로마의 와인 산업은 더욱 발전했죠. 기원전 146년 카르타고가 멸망할 때 로마는 카르타고의 농업 저술가 마고(Mago)의 저작 26권을 약탈했고, 이를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번역해서 자국의 와인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사용했습니다. 

6) 고대 로마의 농업 학자인 콜루멜라(Columella)는 <농업론(De Re Rustica)>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썼습니다.

콜루멜라의 모습

•포도나무 사이의 알맞은 간격

와인의 종류에 따른 적합한 생산지들

버팀목 세우는 방법과 일꾼 한 명이 하루에 세울 수 있는 버팀목의 양

포도 농사에 필요한 일꾼의 수

노예의 식대

포도 품종에 따른 와인의 양과 질, 그리고 선택의 문제

7) 기원전 2세기경에 로마의 와인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영토의 확대나 인구의 증가도 와인 수요가 늘어난 이유 중 하나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식습관의 변화였습니다. 새로운 밀 품종과 제빵기술, 화덕이 보급되면서 로마인의 주식은 죽에서 빵으로 바뀝니다. 로마 최초의 빵집이 기원전 171년에서 기원전 168년 사이에 생겼고, 맛이나 편리성 등의 여러 이유로 로마인들은 빠르게 빵을 주식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팍팍한 빵과 함께 마실 음료수가 필요했고 가장 적합한 것은 바로 와인이었죠. 그래서 기원전 2세기 말엽부터 빵과 와인은 로마의 양대 음식으로 자리 잡습니다. 로마는 인근 지역에 대규모 포도 농장을 세우고 노예를 동원해서 로마 시민에게 공급할 와인을 생산했지만, 엄청난 소비량을 충당할 수 없어서 그리스와 지중해 동부의 여러 곳에서 많은 양의 와인을 수입했다고 합니다. 

8) 로마의 카토는 사슬에 묶인 노예라도 1년에 와인을 암포라(amphora) 열 개 분량은 마셔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정도면 매주 5ℓ 정도를 마셔야 할 만큼 많은 양이었죠. 노예에게도 와인을 준 것은 와인이 힘을 길러 준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지배층이 착하고 인정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니라 노동 생산성을 높이려고 와인을 줬다는 점은 씁쓸하지만, 그래도 노예들까지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사회이기는 했습니다. 물론 귀족이나 부유층이 마시는 와인과 서민이 마시는 와인, 노예가 마시는 와인엔 품질 차이가 컸습니다. 상류층은 유명 산지에서 생산한 달콤하고 진하며 맛과 향이 쉽게 변하지 않는 값비싼 와인을 즐겼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나 군인은 식초로 변하기 직전의 와인에 물을 많이 탄 포스카나, 와인을 마지막까지 짜내고 남은 포도 찌꺼기에 물을 넣고 한 번 더 발효시킨 저질 와인을 마셨죠.

고대의 와인 용기 암포라

9) 476년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혼란에 빠져있던 서로마 제국이 마침내 멸망합니다. 게르만인은 맥주를 즐겨 마셔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유럽의 와인 산업이 쇠퇴했을 것 같지만, 그렇진 않았습니다. 무역을 통해 게르만족의 지배층은 이미 와인의 맛과 향에 빠져있었죠. 짧은 혼란기가 지난 후 와인 생산량은 본래의 위치를 회복합니다. 새로운 야만족 지배자들은 와인 생산을 장려하고 포도밭을 보호했죠. 서고트족의 법전에 나오는 ‘포도밭을 훼손하면 중형에 처한다’라는 문구가 이를 입증하는 하나의 예입니다. 다만 고대 로마의 영역이 여러 개의 나라로 쪼개지면서 와인 무역은 한동안 침체에 빠집니다.

10) 중세의 와인 산업은 수도원과 영주의 장원 중심으로 운영되었고, 이탈리아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로마 문명의 유산이 남아있고, 가톨릭의 중심지인 교황령이 있는 이탈리아의 와인 산업은 다른 지역보다 앞서갈 수 있었죠. 이탈리아가 속한 지중해 유역의 와인은 대부분 지역 안에서 소비되었지만, 바다 건너 영국이나 강 너머의 폴란드, 동유럽, 발트해 연안으로 수출되기도 했습니다. 영국에서는 보르도 와인을 많이 마셨지만, 지중해 와인이 더 달콤하고 알코올이 많으며 무엇보다 프랑스 와인보다 오랫동안 맛이 변하지 않았으므로 프랑스 와인의 맛이 변하기 시작하는 여름철이 되면 지중해 와인의 소비가 늘어났죠. 당시 지중해 와인의 도매가격은 프랑스산 가스코뉴 와인의 두 배였습니다.

11) 이탈리아의 중부와 북부에 신흥 도시들이 발달하면서 와인 산업의 규모도 커졌습니다. 토스카나 와인은 12~14세기에 급격히 성장했는데, 14세기 초반의 피렌체에서는 매년 7,900,000갤런의 와인을 수입해서 1/3을 자체적으로 소비했고, 나머지 와인은 지역으로 유통했습니다.

12) 교황 권력이 세속 권력에 굴복한 '아비뇽의 유수'는 이탈리아의 발전된 와인 기술이 프랑스 남부에 전파된 사례입니다. 아비뇽의 교황을 따라온 사제단은 평소 즐겨 마셨던 부르고뉴 와인처럼 뛰어난 와인을 손쉽게 공급받길 원했고, 결국 교황은 아비뇽 인근에 포도밭을 가꾸고 와인을 만들게 합니다. 이곳의 와인이 훗날 남부 론을 대표하는 샤토네프 뒤 빠프(Chateauneuf du Pape)가 되죠.

반응형

13) 근대에 이탈리아 와인은 전국에서 생산되었고 모든 계층이 즐겼지만, 값싼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부유층은 보르도와 부르고뉴 등지에서 수입한 와인을 마셨고, 이탈리아의 일반 와인은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와인처럼 수출하지도 못했습니다. 유럽 무역의 중심지가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가면서 이탈리아가 변두리 국가의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죠. 게다가 1861년에 통일될 때까지 여러 왕국으로 쪼개진 이탈리아에서는 전국적인 규모의 와인 시장이 형성될 수 없었습니다. 

14) 19세기 후반에 유럽을 덮친 필록세라의 공격은 이탈리아라고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필록세라가 모래 섞인 토양을 싫어했으므로 이탈리아 남부의 포도밭은 살아남을 수 있었죠. 대신 전 유럽에 와인을 공급하는 와인 공장 역할을 합니다. 와인 생산량에 치중한 나머지 품질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군수품으로 와인을 생산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지죠. 결국, 이탈리아 와인은 저질 와인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집니다.

15) 1963년에 AOC 제도를 본떠서 이탈리아 와인 등급 체계인 DOC(Denominazione di Origine Controllata)를 만듭니다. 이를 기점으로 이탈리아 와인은 고품질 와인 생산국으로 다시 태어나죠. DOC가 만들어진 지 불과 50년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품질을 높이려는 이탈리아 와인 생산자들의 노력은 줄기차게 이어져서 끼안티(Chianti), 바롤로(Barolo), 바르바레스코(Barbaresco), 타우라시(Taurasi) 등의 토착 품종 와인을 발전시켰습니다. 또한, 까베르네 쇼비뇽 같은 국제 품종으로 슈퍼 투스칸처럼 뛰어난 와인을 탄생시킵니다.

2. 이탈리아의 토양과 기후

1) 이탈리아 국토는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습니다. 북쪽의 알프스부터 남쪽의 시칠리아섬까지 위도 차이가 무려 10도나 됩니다. 그래서 지역별로 기후 차이가 크죠. 하지만 산지가 많고 바다가 가까이 있어서 와인 생산지의 기후 차이는 심한 편이 아닙니다.

2) 북부는 길고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이 나타나는 대륙성 기후지대입니다. 하지만 알프스산맥이 차가운 북풍을 막아주고, 여름에는 더위를 식혀주는 바람을 보내줍니다. 가르다(Garda) 같은 큰 호수도 지역의 기온 차를 적당히 조절해줘서 온화한 날씨를 만들어주죠.

3) 남부는 건조한 여름과 따뜻하고 습한 겨울을 보여주는 지중해성 기후 지대입니다. 산이 많아서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포도는 고지대에서 재배합니다. 

4) 척박한 산과 언덕에 만들어진 포도밭은 배수가 잘됩니다. 상당한 면적이 화산성 토양이며, 석회석이나 석회질 해양점토암도 많습니다. 자갈 섞인 점토도 흔하죠. 하지만 워낙 다양해서 일반화하기는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