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음회&강좌

조지아 두글라제 와인_Georgia Dugladze Wine 시음회

까브드맹 2017. 7. 28. 11:05

지난 2017년 7월 26일에 서대문구 연희동 맛집인 수다캠프에서 <조지아 두글라제 와인 시음회>가 열렸습니다. 전문주류잡지인 DNC디엔씨의 고일영 대표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저도 이 시음회에 참석했습니다.

※ 맛집인 수다캠프에 대해선 아래의 홈페이지 링크를 눌러주세요.

http://www.sudacamp.co.kr

조지아는 세계 최초로 와인을 만든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대 조지아인들이 가을에 수확한 포도를 겨울 동안 보관하기 위해 땅에 묻은 항아리에 보관했는데, 포도 껍질에 묻은 효모와 땅의 지열에 의해 저절로 발효되었고, 이걸 맛본 조지아인들이 본격적으로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죠. 오늘날에도 조지아에서는 크베브리_Kvevri라는 큰 항아리를 땅에 묻고 밟아 뭉갠 포도와 껍질, 줄기 등을 넣어서 와인을 만듭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양조법은 품질 관리라는 측면에서는 약점이지만, 조지아 와인만의 개성이기도 합니다.

크베브리의 사진. 이미지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Kvevri#/media/File:Georgian_Kvevri.jpg

와인 양조의 역사가 오래된 나라답게 조지아에는 적어도 500종 이상의 포도가 있습니다. 이 중에 조지아 정부가 공식적으로 지정한 양조용 포도는 38종입니다. 수많은 품종 중에 가장 대표적인 포도는 적포도인 사페라비_Saperavi,

이미지 출처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7/78/Saperavibunch.jpg

청포도인 르카치텔리_rkatsiteli와 무츠반_Mtsvane을 들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en.vinoge.com/files/image/rkatsiteli.jpg

이미지 출처 : http://ge.grapedb.org/accession/bunch/17/medium/GEO015_19A_Meskhuri_Mtsvane_bunch.jpg

제정 러시아 때부터 소비에트 연방을 거쳐 오늘날의 러시아 공화국에 이르기까지 모스크바 시민들에게 최고의 와인은 프랑스나 이탈리아 와인이 아니라 조지아 와인이었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푸시킨은 부르고뉴 와인보다 조지아 와인을 더 선호했고, 철의 장막 안에서 온갖 호사를 누렸을 스탈린도 조지아 와인을 즐겼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SBS 드라마 온에어에서 이범수와 김하늘이 '오카디 레드 드라이 2005’라는 조지아 와인을 마시는 장면이 나오면서 조지아 와인이 잠깐 인기를 끈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 들어온 조지아 와인들은 대부분 단맛이 나는 것들이어서 와인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진 못했습니다.

레드 와인이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가 종종 언론에 나옵니다만, 조지아의 사페라비 와인만큼 건강에 좋다는 증거가 많은 와인은 없을 겁니다. 영국의 저명한 와인 평론가 젠시스 로빈슨_Jancis Robinson은 그의 저서 와인 아틀라스_Wine Atlas에서 

“조지아인들의 와인 사랑은 유별나며 주량은 차라리 겁이 날 정도이다. 그럼에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장수국가인데, 아마도 사페라비 포도와 무언가 영양학적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휴 존슨, 서울 : 세종서적(주), 2009, 280p)

라고 적고 있습니다. 

또한, 20세기 최장수 여인으로 지난 1975년에 140세로 영면하신 조지아의 장드브나 할머니에게 장수 비결을 물었더니 "40세부터 100년간 손수 만든 와인을 매일 5잔씩 마셨는데 이것이 장수의 비결"이라며 기자들에게도 "당신도 매일 와인 한 병을 마시면 나보다 더 장수할 수 있다."라고 권했답니다. 정말 와인 때문에 오래 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조지아 와인을 많이 마신 것만큼은 사실이겠죠.

조지아 와인의 이름은 품종보다 생산지에 따라 정해집니다. 보르도 와인처럼 지역에 따라 정해진 포도를 사용해야 하며, 여기에 맞춰 이름이 붙는 것이죠. 


그럼 시음했던 와인들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두글라제 사페라비_Dugladze Saperavi 2008

“사페라비”는 카케티_Kakheti 지역에서 사페라비 포도로 만드는 와인입니다. 포도 추출물이 많이 들어가서 탄닌이 강하고, 개성적인 향과 조화로운 맛을 지녔습니다. 

진한 루비 또는 적자주색입니다. 진한 체리와 블랙베리 향이 풍기며, 허브와 새순을 뜯을 때 나는 풋풋한 내음이 납니다. 드라이하지만 살짝 단 과즙과 식물성의 씁쓸한 맛이 느껴집니다. 풍부한 탄닌은 처음엔 부드럽다가 점차 탄닌의 떫은맛이 두드러집니다. 세련되지만, 속으로 야생적인 느낌도 함께 느껴지는 와인입니다.

2. 두글라제 무크자니_Dugladze Mukuzani 2015

“무크자니”는 카케티의 무크자니 지역에서 나오는 사페라비 포도로 만드는 드라이 레드 와인입니다. 무크자니는 조지아에서 지역 이름으로 통제_AOC 되는 지역이죠. 선택된 효모를 넣고 온도 조절이 되는 발효조에서 만들기에 품질이 매우 뛰어나죠. 사페라비로 만드는 최고의 와인으로 평가받으며, 해외의 대회에서도 많은 수상을 했습니다.

진한 루비 또는 적자주색입니다. 붉은 과일과 검붉은 과일의 중간 정도의 향이 나고 허브 향이 약하게 나타납니다. 흙내음과 버섯 향도 느껴지네요. 부드럽고 진하면서 탄탄한 탄닌에 오크와 기분 좋은 나뭇진 풍미가 섞여 있습니다. 말린 자두 풍미에 블랙커런트 풍미가 살짝 녹아 있고, 잘 익은 검은 체리 느낌도 납니다. 앞서 마신 사페라비보다 좀 더 진하고 무거운 느낌입니다. 여운도 길며, 산미와 탄닌, 당도가 균형을 잘 이루고 있습니다.

3. 두글라제 르카치텔리_Dugladze Rkatsiteli 2013

청포도인 르카치텔리로 만든 와인입니다.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는 거의 물처럼 보일 정도로 아주 연한 밀짚 색입니다. 미네랄과 풋풋한 식물성 향이 나고, 레몬과 사과, 서양배 같은 과일 향이 납니다. 마셔보면 부드럽고 진한 산미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느끼하지 않고 깔끔하면서 미네랄 풍미가 잘 느껴집니다. 그래서 기름진 느낌이 아니라 부드러운 시럽 같은 느낌이 납니다. 시간이 지나면 살짝 단맛이 나타나면서 복숭아 풍미가 도드라집니다. 여운은 강렬하진 않지만, 입안에 좋은 느낌을 남겨줍니다.

4. 두글라제 치난달리_Dugladze Tsinandali 2014

“치난달리”는 카케티의 소지역인 텔라비_Telavi와 크바렐리_Kvareli에서 수확한 르카치텔리와 무츠반 포도를 섞어서 만드는 드라이 화이트 와인입니다. 무크자니와 마찬가지로 지역 이름으로 통제_AOC 되죠. 

연한 금색, 또는 중간 농도의 밀짚 색입니다. 앞서 마신 르카치텔리보다 진한데, 아마 무츠반_Mtsvane을 함께 넣어 만들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조금 묵직한 무게감에 미네랄 풍미가 있어 약간 날카로운 느낌입니다. 배와 덜 익은 흰 복숭아, 살짝 석유(Petrol) 향도 납니다. 살짝 짜릿하고 부드러운 산미와 진한 질감을 맛볼 수 있고, 흰 채소와 달지 않은 멜론의 풍미가 납니다. 여운의 느낌이 좋고, 흰 채소와 달지 않은 핵과_核果류 과일의 느낌이 이어집니다. 르카치텔리처럼 시간이 지나면 살짝 단맛이 나타납니다. 부드러운 시럽 같고, 살짝 시원하고 고소한 느낌도 있습니다.

5. 두글라제 알라자니 밸리_Dugladze Alazany Valley 2013

알라자니 밸리 지역에서 재배한 르카치텔리 포도로 만드는 세미 스위트 와인입니다. 알라자니 밸리는 지역 명칭 통제 지역은 아닙니다.

중간 농도의 밀짚 색으로 복숭아와 구수하고 들큼한 건초 향이 납니다. 세미 스위트 와인으로 제법 달고, 복숭아와 살구가 떠오르는 산미가 있습니다. 마른 사과와 복숭아, 견과류 풍미를 맛볼 수 있으며, 여운은 제법 긴 편이나 느낌은 단순합니다.

6. 두글라제 알라베르디_Dugladze Alaverdi 2008

알라베르디 지역에서 재배한 사페라비 포도로 만들었습니다. 알라베르디에서는 화이트 와인도 나옵니다.

진한 루비 또는 적자주색입니다. 서양 자두와 블랙베리 같은 과일 향과 신선한 허브 향이 납니다. 비단처럼 부드러운 탄닌과 산뜻하고 깨끗한 산미를 지녔고, 굳건한 구조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서양 자두와 체리 같은 과일 풍미에 기분 좋은 흙의 풍미가 있습니다. 여운은 상대적으로 짧은 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농익은 과일 느낌이 두드러집니다.

모두 6종의 와인을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구워서 함께 마셨습니다. 예전에 마셨던 사페라비 와인이 과일과 나무, 그을린 향이 섞인 매우 강한 스타일이었다고 한다면, 이번에 마신 와인들은 여기에 우아함과 복합적인 풍미를 더 했다고 봅니다. 나름 개성을 갖고 있으며 품질면에서도 다른 나라의 고급 와인과 비교해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국내 와인 시장에서 조지아 와인의 더 큰 성장을 기대해 봅니다.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고일영 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