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음회&강좌

그리스 와인 시음회 후기

까브드맹 2015. 12. 6. 16:47

유럽 와인의 고향이랄 수 있는 그리스이지만, 정작 이름난 와인은 없습니다. 국내엔 송진향 나는 전통 와인인 렛시나_restina 와인 정도나 알려져 있을까요? 현대 와인 산업계에서 그리스 와인의 영향은 매우 미미한 것이 사실이죠.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와인이 별 볼일 없는(?) 것은 오랫동안 이슬람 문화권인 터키의 지배를 받아와서 와인 산업이 발달하지 못했다는 것이 큰 이유일 것입니다. 터키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불안정한 정치와 독재 때문에 와인이 발전하지 못했고, 오늘날엔 EU로의 편입에 따른 경제적 문제가 계속되고 있는 것 등등이 또 다른 이유겠죠. 하지만 그리스 와인의 세계는 생각보다 심오하고 넓더군요. 지난 금요일에 그리스 와인 센터에서 열린 그리스 와인 시음회는 그리스 와인의 세계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는 기회였습니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과 안국역 사이에 위치한 막걸리 학교가 자리잡은 건물 옥상층에 있는(복잡하네요)… 그리스 와인 센터는 건물 옥상층에 자리잡은 가정집을 개조한 곳이었습니다.

내부에는 그리스 와인과 관련된 문서를 보관하는 책장이 있었습니다.

창밖으로 바라본 풍경입니다. 오른편 어두운 곳은 경복궁입니다.

진열된 그리스 와인들. 예전의 모임에서 감탄하며 마셨던 히어로도 있네요.

와인과 함께 할 음식은 기본적으로 가정식이었고, 주문한 중국요리가 조금 추가되었습니다.

요리의 이름은 기억 안나는데, 그리스식 생선회입니다. 후추와 향신료를 얹고 올리브 기름을 듬뿍 듬뿍~~ 맛있었습니다.

함께 마신 첫번째 와인은 아게안 돌핀_Aegean Dolphin 2013. 크레타 PGI 와인으로 그리스 토착 품종을 블렌딩해서 만들었습니다. 붉은 체리나 앵두 같은 벼운 붉은 과일향이 납니다. 탄닌이 거의 느껴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허술하진 않네요. 바디도 제법 탄탄하고요. 부담없이 마실 수 있고 다양한 음식과 잘 어울리는 맛입니다. 그리스식으로 요리한 광어회와도 잘 맞는 맛! 레드 와인으로 이런 와인은 드물죠.

두번째 와인은 캄바스 까베르네 쇼비뇽_Cambas Cabernet Sauvignon 2013. 향에서 까베르네 쇼비뇽 특유의 블랙커런트 향이 조금 나지만, 탄닌은 까베르네 쇼비뇽 같지 않네요. 부드럽고 풀어졌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밸런스는 나쁘지 않습니다. 독특한 까베르네 쇼비뇽 와인이네요.

세번째 와인는 캄바스 메를로_Cambas Merlot 2013. 저가 메를로 와인의 특징이 잘 살아있습니다. 붉은, 후루티한 과일향에 라이트 바디의 느낌을 갖춘 와인입니다. 모르고 마시면 저가 피노 누아라고 착각할 만한 가벼운 스타일. 팔보채&난자완스하고 함께 마셨는데 잘 어울리네요. 양념치킨과 먹어도 좋을 듯 합니다. ^^

네번째 와인은 비교를 위한 까스띠요 데 몰리나 메를로 레세르바_Castillo de Molina Merlot 2013. 산 페드로의 와인으로 치렐 메를로 와인의 익숙한 향, 익숙한 맛을 지녔습니다. 메를로임에도 불구하고 람니스타를 제외하고 이날 마신 와인 중 최강의 탄닌감을 보여줬죠.


다섯번째 와인은 캄바스 시라_Cambas Syrah 2013. 시라의 특징이 그다지 살아있진 않습니다. 후추향도 느껴지지 않고요... 다만 저가 시라 와인에서 맛볼 수 있는, 스파이시한 식물성 풍미는 살아있네요. 캄바스의 세 와인 중에서 제일 거친 느낌이랄까요? 그래도 탄닌은 부드럽습니다. 곱창처럼 풍미 강한 고기요리와 먹으면 좋을 듯 합니다. 수블라끼 같은 그리스 꼬치 요리에도 잘 어울릴 듯 하네요.

여섯번째 와인은 프랑스의 서민들이 즐기는 와인입니다. 뱅 드 프랑스_Vin de France 등급의 뀌베 노블리제_Cuvee Noblesse. 최종 생산만 프랑스에서 한 것이고, 사용한 포도는 EU 각지에서 수확한 것이죠. 심지어 빈티지조차 없는 와인입니다. 맛은...? 안 단 포도쥬스라고나 할까요 ^^. 달달한 향에 드라이하고 가벼운 스타일입니다.
이런 스타일의 와인은 와인 자체의 향과 맛은 별볼일 없지만 어지간한 음식엔 다 어울린다는 장점을 갖고 있죠. 이 와인 역시 그런 특징을 보여줬습니다. 함께 나온 그리스식 라자냐인 무사까 뿐만 아니라 팔보채와 난자완스 하고도 무난하게 맞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일곱번째 와인은 칠레 와인인 발포 안티구오_Valpo Antiguo 2014. 100% 까쇼에 손수확한 와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가볍고 탄닌이 거의 없는 스타일에 약간의 군내가 나는...별다른 개성 없는 대중적인 스타일의 칠레 와인이더군요.

여덟번째 와인은 프랑스 뻬이 데로_Pays d'Herault 지역의 와인인 빌라 생 그리_Villa Saint-Gris 2014. 뻬이 데로는 프랑스 남부 랑그독 지역의 뱅 드 빼이급 와인이죠. 위치는 아래의 지도와 같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fr.wikipedia.org/wiki/Hérault_(département)

품종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가볍고 후루티한 스타일의 와인입니다. 편합니다. ^^

마지막 와인은 "끝판왕이 나타났다!"라고 할 만한 끼르 이야니의 람니스타_Ramnista 2011. 그리스 토착 품종인 시노마브로 100%로 만든 와인으로 우아하고 진한 붉은 과일향애 라즈베리와 붉은 체리, 그윽하고 부드러운 나무향, 향긋한 과일향이 나는 와인입니다. 부드러운 첫맛과 탄닌이 느껴지는 꺼끌꺼끌한 끝맛, 우아하고 섬세한 느낌에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적절한 산미가 매우 고급스러운 와인이네요. 나무와 과일 풍미가 적절히 섞여있어 좋고, 섬세하나 강건한 바디가 까베르네 쇼비뇽보다는 피노 누아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피노 누아하고는 또 다른 무엇이랄 수 있죠. 강한 탄닌으로 인해 피노 누아보다는 네비올로와 좀 더 가까운 느낌입니다. 시노마브로 100%의 맛이 이런 거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는 와인입니다.

시간이 지나 탄닌이 부드러워지면 더욱 우아하고 섬세한 모습을 보여줄 것 같은데, 마실 당시엔 너무 강해서 그런 변화를 느끼기엔 힘들었습니다. 갈수록 탄닌이 강해지며 뻑뻑해지는데, 바디는 무겁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와인이네요. 향후 10년간은 지켜봐야 하는 와인으로 제공자의 이야기론 20년 이상 숙성 가능하다고 하는군요. 소비자가 8~9만원 정도. 가격 대비 퀄리티 훌륭합니다. 개인점수로는 A.

이 와이너리의 와인은 예전에 히어로를 마셔본 적이 있었습니다. 시노마브로 40%에 메를로 60%로 알고 있는데, 이 와인 역시 훌륭했죠. 앞으로 주목해야할 와이너리라고 생각합니다.

긴 시간 시음을 마치고 저녁 10시 조금 넘어서 그리스 와인 센터를 나섰습니다. 옥상 담장 너머 동십자각이 보이더군요.

오늘 시음한 와인들은 대중적인 것들이어서 마지막에 나온 람니스타를 제외하곤 감동을 느끼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음식과 마실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와인들이었죠. 특히 처음에 마신 아게안 돌핀은 생선회와 마실 수 있는 몇 안되는 독특한 레드 와인이었습니다. 가격만 맞는다면 와인 애호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와인이라고 봅니다.

다양한 그리스 와인을 시음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신 그리스 와인 센터 관계자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다양한 품질의 맛있는 그리스 와인이 국내에 보급되어 와인 애호가들의 입맛을 즐겁게 해줬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