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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와인매장에서 와인 고르기 - 매장 직원에게 와인을 찾아달래는 법

까브드맹 2011. 1. 30. 09:26
와인 샵의 다양한 와인들

와인(Wine)은 이제 더는 낯선 술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종종 마실 수 있는 술이 되었죠. 지금도 맘만 먹으면 당장 마트나 편의점에 가서 진열된 와인 중 하나를 사서 마실 수 있습니다. 그만큼 와인은 지난 십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대중화되었죠.

그렇지만 와인이 원하는 맛을 쉽게 골라 마실 수 있는 술이 된 건 아닙니다. 판매처가 늘고 가격도 다양해져서 부담되지 않는 가격에 골라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한 와인이 많이 나왔지만, 와인 매장에 가면 엄청난 종류의 와인을 바라보며 어떤 것을 사야 할 지 막막할 때가 많습니다. 어느 날 입에 맞는 와인을 알게 되어서 마트에서 사려고 해도 진열대에 없을 때도 많고요. 국내에 수입되는 와인 종류가 수 천 가지가 넘다 보니 매장마다 모든 와인을 갖춰놓기 힘들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와인을 사러 가서 맘에 드는 걸 못 찾아 발길을 돌리거나, 원하는 와인을 사려고 이 매장 저 매장 돌아다니는 일도 많습니다. 그 고생을 하고서 원하는 와인을 찾으면 다행인데, 결국엔 사지 못하고 돌아서는 일도 종종 있을 겁니다.

내가 원하는 맛과 향을 가진 와인을 좀 더 쉽게 구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와인 매장에는 대부분 담당 직원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의 업무는 매장 청소와 와인 입고, 와인 진열 같은 관리 부분도 있지만, 고객이 원하는 와인을 찾아주거나 추천해주는 일 또한 주요 업무입니다. 직원들은 대부분 매장에서 판매하는 와인의 특징과 스타일을 잘 파악하고 있으며 와인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일 경우 와인과 관련된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어서 와인에 대한 다양한 조언을 구할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찾는 와인에 대해 제대로 요청하기만 하면 원하는 와인을 잘 골라줄 수 있는 도우미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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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와인을 살 때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정작 고객이 와인에 대해 잘 모르면 매장 직원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래처럼 뻔한 몇 가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1. 뭐가 맛있어요? 

사람마다 입맛이 다른데 점원의 입맛에 맞아도 내 입맛에 맞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더구나 나는 단 와인을 좋아하는데 직원은 달지 않은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혹은 그 반대라면 비싼 와인 사서 한 모금만 마시고 나머지는 요리 만들 때 써야 하는 비극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2. 뭐가 제일 좋아요?

뭐가 제일 좋은 와인이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매장에서 제일 품질 좋은 와인을 골라줄 것이고, 이런 와인들은 대부분 비쌉니다. 백화점에 가서 제일 좋은 와인을 달라고 했더니 점원이 180만 원짜리 샤토 마고를 내놓더라…. 난감해진다능....

3. 제일 잘 팔리는 와인이 뭐에요?

"대세를 따르면 손해는 없다."라고 생각하는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요청이죠. 하지만 제일 잘 팔리는 와인은 품질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보통 가격이 저렴하거나, 판촉이 걸리거나, 재고를 처리하려고 매장 직원이 정책적으로 판매하는 와인이 많습니다. 이런 와인들이 과연 내 입맛에 100% 맞을 수 있을까요? 비싼 돈 주고 입에도 맞지 않는 엉뚱한 와인을 구매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4. 지금 세일 중인 와인이 뭐에요?

"어쨌든 정가보다 싸게 사면 손해는 안 보겠지."라는 생각이죠. "와인의 맛과 향이 내 입맛에 맞든 안 맞든 싸게만 산다면 O.K!"란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입에 맞지도 않는 술을 사려고 돈을 쓴다는 것 자체가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입맛에도 맞지 않는 7만 원짜리 와인을 5만 원에 사느니 내 입맛에 맞는 3만 원짜리 와인을 마시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요? 또 할인판매에 나오는 모든 와인이 그런 건 아니지만, 안 팔리는 와인을 처리하려고 하는 할인판매도 종종 있습니다. 팔리지 않는 것은 그만큼 맛과 향이 우리 입맛에 맞지 않는 와인일 가능성이 크죠. 물론 괜찮은 와인이지만, 마케팅에 실패해서 안 팔리는 와인도 있기는 합니다.

 

 

이렇게 위의 네 가지 질문이 모두 올바르지 못하지만, 와인을 고르는 요령을 모르면 결국 위의 질문을 앵무새처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모르는 식당에 가게 되면 "이 집에서 뭐가 제일 맛있어요?"라고 묻듯 말이죠. 식당의 답변은 똑같죠? "다 맛있습니다."

하지만 와인을 고르는 몇 가지 기준을 세우면 내 입맛에 맞는 와인을 찾는 일이 훨씬 수월해진답니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기준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으며 단순하고 쉽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간단해서 의외로 이 부분을 생각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설령 머릿속에 갖고 있어도 입으로 나오지 않아 매장 직원에게 두리뭉실하게 묻거나 위의 4가지 얘기만 하는 경우도 많고요.

질문이나 요청이 모호하면 답변이나 반응도 모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하는 와인의 스타일을 명확하게 얘기하면 매장 직원들도 원하는 맛과 향의 와인을 정확히 골라줄 수 있겠지만, 고객 자신도 찾는 게 뭔지 모르면 매장 직원들이 설령 관심법을 익힌다 해도 그걸 찾아줄 수 없는 일이겠죠. 결국, 직원은 자기가 맛있게 먹었던 거나, 비싸거나, 가격이 저렴하거나, 이익이 많이 남거나, 판촉이 걸리거나,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거나, 재고가 많이 쌓여 있거나 등등…. 한 와인을 골라서 적당한 말을 붙여 판매하고, 고객은 본인이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기에 그냥 빈손으로 돌아오거나 직원의 설득에 넘어가 직원 추천 와인을 사 들고 오게 되는 거죠. 그러므로 제일 중요한 건 내가 찾는 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명확히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와인이 내가 찾는 와인인가? 내가 찾는 와인의 스타일을 명확히 알려고 할 때 아래와 같은 기준이 도움이 됩니다.

1. 단가 안 단가?

달착지근한 술이 좋은 분도 있고, 단 술을 싫어하는 분도 있죠? 와인은 단 것도 있고 안 단 것도 있으니 단맛을 찾는지 안 단맛을 찾는지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와인을 많이 드셔보지 않은 분은 단 와인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아서 매장 직원들은 처음 보거나 와인 앞에서 망설이는 분들에게 기본적으로 단 와인을 권해줍니다.

2. 레드 와인인가 화이트 와인인가?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죠. 본인의 입맛이라든가, 함께 먹을 음식의 종류라든가, 계절적 요인이라든가 등등… 어쨌든 레드인지 화이트인지 명확하게 얘기해주지 않으면 매장 직원은 일단 레드 와인을 꺼내서 보여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화이트 와인보다는 레드 와인이 훨씬 인기가 좋거든요.

2-1. 레드 와인이라면 탄닌이 많은 걸 찾는지 적은 걸 찾는지?

레드 와인도 여러 스타일이 있지만, 크게 나누어 탄닌 성분이 많아 떫은맛이 강한 것과 탄닌이 적거나 부드러워 떫은맛이 약한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 본인이 좋아하는 맛에 따라 이 부분을 명확하게 얘기해줘야 합니다. 드라이하면 떫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던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드라이한 맛과 떫은맛은 다른 개념입니다. 일례로 부르고뉴 피노 누아 와인은 달지 않지만 떫지도 않습니다.

2-2. 화이트 와인이라면 탄산이 있는지 없는지?

샴페인 같은 스파클링 와인은 화이트 와인과 다른 와인으로 분류되지만, 일반적으로 화이트 와인에 탄산이 들어간 거로 생각해서 고르셔도 괜찮습니다. 탄산이 들어가서 청량한 느낌이 좋으면 탄산이 있는 쪽으로, 반대로 탄산이 들어가면 사이다 같아서 싫으면 탄산이 안 든 쪽으로.

3. 신맛이 나는지 안 나는지?

와인은 기본적으로 신맛이 있는 술인데 산도가 강한 것이 있고 약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에 신맛이 나는 걸 싫어하는 분들이 많은 편이니 산미도 생각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이탈리아 와인 같은 경우 맛있는 와인이지만 특유의 강한 산미 때문에 싫어하시는 분들도 많더군요.

4. 가격은 얼마인지?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와인은 국내의 어떤 술보다 가격의 차이가 심하므로 가격에 관한 얘기를 해주지 않으면 매장 직원은 어떤 것을 골라줄지 난감해지고 결국 자기가 맛있게 먹었던 거나, 비싸거나,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거나, 재고가 많이 쌓여 있거나… 쪽으로 갑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격에 관해 얘기하는 걸 굉장히 민감하게 생각하는데, 싼 와인을 산다고 품격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비싼 와인을 산다고 품격이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본인이 원하는 와인을 정확히 짚어서 구매하는 사람이 현명한 것이고, 무조건 비싼 와인을 사는 분들은 직원으로서는 '봉'일 뿐이죠.

 

 

자, 일단 여기까지 생각해보면 원하는 와인의 윤곽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직원에게 말할 수 있는 요청문을 완성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이 요청을 하면 이에 따른 결과가 나올 겁니다.

"단맛이 나는 레드 와인으로 탄닌이 적고 신맛이 안 나는 것으로 1만 원 정도에서 골라주세요."

→ 미국의 콩코드(Concord) 와인이나 신대륙 스위트(Sweet) 레드 와인으로 골라줄 겁니다.

"달지 않은 레드 와인으로 탄닌과 신맛이 많고 3만 원 정도에서 골라주세요."

→ 이탈리아 끼안티(Chianti) 와인이나 프랑스 보르도(Bordeaux) 와인 중에서 적당한 것으로 골라줄 겁니다.

"달지 않는 레드 와인으로 탄닌이 적고 신맛이 많은 것으로 4만 원 정도에서 골라주세요."

→ 프랑스 부르고뉴 피노 누아(Bourgogne Pinot Noir) 와인으로 골라줄 겁니다.

"달지 않은 레드 와인으로 탄닌이 많고 신맛이 적은 것으로 5만 원 선에서 골라주세요."

→ 미국이나 칠레, 호주의 레드 와인을 골라줄 겁니다.

 

 

"단맛이 나는 화이트 와인으로 탄산이 있고 신맛이 적은 것으로 2만 원 정도에서 골라주세요."

→ 이탈리아의 달착지근한 모스까토 다스티(Moscato d'Asti)나 아스티 스푸만떼(Asti Spumante) 와인, 또는 스페인의 까바(Cava) 중에서 단맛이 나는 것으로 골라줄 겁니다.

"단맛이 나는 화이트 와인으로 탄산이 없고 신맛이 많은 것으로 2만 원 정도에서 골라주세요."

→ 독일산 리슬링(Riesling) 와인을 골라줄 겁니다.

"달지 않은 화이트 와인으로 탄산이 없고 신맛이 적은 것으로 3만 원 정도에서 골라주세요."

→ 프랑스, 미국, 칠레의 샤르도네(Chardonnay) 와인을 골라줄 겁니다.

"달지 않은 화이트 와인으로 탄산이 없고 신맛이 많은 것으로 2만 원 정도에서 골라주세요."

→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이나 호주산 리슬링(Riesling) 와인을 골라줄 겁니다.

참 쉽죠? 여기에 추가해서 원하는 품종이나 국가까지 얘기해준다면 더욱 좋은데, 그건 다양한 와인을 마셔가면서 차근차근 생각하셔도 되는 일입니다. 오늘 오후에 마트에 가서 원하는 와인을 사다가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지내보시는 건 어떨까요?

※ 그리고 와인 바나 레스토랑에서 맘에 드는 와인을 발견했을 땐 꼭 사진을 찍어두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와인 매장에서 사진을 보여주며 직원에게 문의하면 꼭 그 와인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스타일의 와인을 찾아줄 겁니다. 그런 것 없이 "음~ 어제 마신 와인이 참 맘에 들었는데, 샤토 뭐라더라~ 메독이라고 하는 것 같았는데" 하는 고객처럼 직원을 난감하게 하는 고객도 없습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와인이 최소 1백 가지가 넘거든요 ^^. 이런 얘기는 빵 가게에 가서 "음~ 어제 먹은 빵이 참 맘에 들었는데, 빠리바게뜨 거라던데~"하는 것과 비슷한 겁니다. 물론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라 잘 몰라서 그런 것이지만, 이렇게 되면 직원은 결국 자기가 맛있게 먹었던 거나, 비싸거나, 가격이 저렴하거나, 이익이 많이 남거나, 판촉이 걸리거나,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거나, 재고가 많이 쌓여 있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