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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와인의 알코올 도수는 왜 점점 높아지고 있는가?

까브드맹 2023. 1. 28. 11:11

까스티용 꼬뜨 드 보르도 와인의 알코올 도수
(까스티용 꼬뜨 드 보르도 와인의 알코올 도수)

와인의 알코올 도수가 점점 높아지는 이유에 대한 마주앙 공장장 출신 김준철 소믈리에님의 와인 이야기를 정리해 봤습니다.

1. 와인의 알코올 도수 상승

적어도 10년 이상 와인을 즐겨 마신 분이라면 느끼시겠지만, 와인의 알코올 도수는 최근 20년 동안 점점 올라가고 있습니다. 

 

김준철 소믈리에님은 1996년 “제이시 와인셀러”를 운영하면서 와인을 가르쳤을 당시에 “알코올 도수 낮은 고급 와인은 대체로 알코올 10도 내외였고 알코올 도수가 높은 것은 13도 내외.”이었지만, “약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고급 와인 중에서 알코올 도수 낮은 와인으로 10도인 와인은 거의 없고 알코올 11짜리도 찾아보기 어렵다. 알코올 12도가 가장 낮은 도수이다. 알코올 도수 높은 것은 13도가 아니라 지금은 14.5도 혹은 15도 와인도 있다. 어떤 와인은 알코올 도수가 16도도 있다.”라는 경험담을 글에 적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2001년에 처음 와인을 접했을 때 보르도 와인의 알코올 도수는 보통 12.5도였고 보르도 쉬뻬리에르는 13~13.5도였지만, 최근 보르도 와인의 도수는 13~13.5도를 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얼마 전 1월 22일 시음한 샤토 라리보(Chateau Larrivaux) 2009도 14도나 되네요. 10여 년 전이라면 생각지도 못했을 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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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와인의 알코올 도수가 자꾸 올라가는 이유

와인의 알코올 도수가 올라가는 이유를 김준철 소믈리에님은 크게 네 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첫째, 지구 온난화 현상

먼저 기후 변화가 중요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지구 온난화 현상에 따라 포도 재배지의 기온이 높아지면서 과거보다 당도가 높은 포도가 생산되고, 이에 따라 효모가 당분을 먹고 배출하는 알코올 도수도 자연히 올라가고 있습니다. 지역별로는 엘니뇨 현상 등으로 늘어나는 가뭄도 포도의 당도가 올라가는 원인이 됩니다.

 

둘째, 포도 재배 기술의 발전

예전엔 기후나 병충해 등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라 포도 품질과 생산량이 좌우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엔 과학의 발전으로 병충해 방제를 더 잘하게 되어 포도 생산량뿐만 아니라 품질도 많이 향상되었습니다. 일기 예보도 훨씬 더 정확해져서 대처 방안을 미리 강구할 수 있게 되었죠.

 

포도 재배자도 재배 기술을 학교에서 배운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특히 와인 회사에 소속되어 포도밭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모두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이죠. 더 발전한 재배 기술로 과학적인 포도 재배를 하기 때문에 당도를 비롯한 포도 품질이 향상되었고, 이에 따라 와인의 알코올 도수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셋째, 시장에서 요구하는 와인 스타일의 변화

과거의 와인 소비자는 주로 유럽인이었고, 유럽에선 대부분 각 나라와 지역별로 서로 다른 포도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었습니다. 지역별로 와인 스타일이 다른 걸 인정하고, 맛과 향의 차이점과 빈티지에 따라 달라지는 와인 맛을 즐겼죠. 나라별 지역별 와인의 우열을 구분하지 않고 개성을 인정하는 문화였습니다.

 

그런데 신세계 와인은 유럽처럼 나라와 지역별로 각기 다른 품종을 재배하지 않고, 유럽 품종 중에서 유명한 몇몇 품종만 가져와서 재배했으며 양조할 때에도 단일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와인은 같은 품종끼리 쉽게 비교가 됩니다.

 

와인 맛을 잘 모르는 사람도 알코올 도수가 높은 와인과 낮은 와인의 맛은 잘 구별합니다. 단지 알코올 도수의 차이만이 아니라 잘 익은 포도와 덜 익은 포도에서 나오는 색상과 향, 맛의 차이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품종으로 만든 두 종류의 와인을 마실 때 서로 다른 날짜에 마시면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두 와인을 동시에 마셔보면 알코올 도수가 낮은 와인과 알코올 도수가 높은 와인이 다르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죠. 알코올 도수가 낮은 와인은 뭔가 가볍고 약하게 느껴지는 편입니다.

 

인간의 입맛은 가볍고 약한 것보다 강하고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기에 미국을 비롯한 신세계 와인 소비자도 맛이 강한 와인을 선호하게 되고, 와인 회사들은 시장의 요구에 따라 당연히 알코올 도수가 높은 와인을 생산하게 됩니다. 유럽의 와이너리들도 신세계 와인 시장의 변화에 따라 알코올 도수를 올릴 수밖에 없게 되었죠. 프랑스, 이탈리아 할 것 없이 유럽 와인의 알코올 도수는 과거보다 상당히 올라갔습니다.

 

넷째, 상표에 알코올 도수를 높게 기재하는 경향

와인의 알코올 도수가 낮으면 소비자들이 잘 구매하지 않기에 레이블의 와인 도수를 실제 알코올 도수보다 높게 표시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와인의 실제 알코올 도수는 상표에 기재된 알코올 도수보다 허용 오차 범위만큼(+/- 1도 혹은 +/- 0.5도) 낮을 수 있습니다. 이 또한 강한 것, 숫자가 높은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노리는 마케팅 기법일까요?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와인 평론가들의 점수를 들 수 있습니다. 와인 테이스팅을 하고 점수를 매길 때 평론가들이 마시는 와인의 양은 매우 적고 시음하는 순간은 짧습니다. 심할 때는 하루에 수십 종의 와인을 시음해야 하는데 와인을 많이, 천천히 시음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러다 보니 짧은 순간에 강한 인상을 주는 와인이 높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고, 그런 와인은 대부분 알코올 도수가 높은 풀 바디 와인입니다. 평론가가 이런 점을 감안해도 와인 한 병을 천천히 다 마시고 점수를 매기지 않는 한 첫 입에 강한 느낌을 주는 와인에 더 높은 점수를 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아직 와인을 잘 모르는 소비자들의 구매 포인트 중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히 평론가들의 점수일 것입니다. 이에 따라 와인 생산자들은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점점 알코올 도수가 높은 쪽으로 와인을 만들게 됩니다. 더욱이 유명 평론가가 과일 풍미 가득한 진득한 풀 바디 와인에 높은 점수를 준다면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지겠죠.

 

<참고 자료>

마주앙 공장장 출신 김준철 소믈리에의 와인 이야기 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