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책 이야기

국순전(麴醇傳)

까브드맹 2010. 7. 15. 21:12



국순_麴醇의 자_字는 자후_子厚[각주:1]이다. 그 조상은 농서_隴西[각주:2] 사람이다. 90대조_九十代祖인 모_牟[각주:3]가 후직_后稷[각주:4]을 도와 뭇 백성들을 먹여 공이 있었다. '시경_詩經'에,

 "내게 밀과 보리를 주다."[각주:5]

한 것이 그것이다. 모_牟가 처음 숨어살며 벼슬하지 않고 말하기를,

 "나는 반드시 밭을 갈아야 먹으리라."

하여, 밭에서 살았다. 임금이 그 자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조서_詔書를 내려 안거_安車로 부를 때, 군_郡과 현_縣에 명하여 곳마다 후하게 예물을 보내게 하였다. 신하를 시켜 친히 그 집에 나아가, 드디어 방아와 절구_杵臼 사이에서 교분을 정하였다[각주:6]. 화광동진_和光同塵[각주:7]하게 되니, 훈훈하게 찌는 기운이 점점 스며들어서[각주:8] 온자[각주:9]한 맛이 있어 기뻐 말하기를,

 "나를 이루어 주는 자는 벗이라 하더니, 과연 그 말이 옳다."

하였다. 드디어 맑은 덕_德으로써 들리니, 임금이 그 집에 정문_旌門[각주:10]을 표하였다. 임금을 따라 원구_園丘[각주:11]에 제사한 공으로 중산후_中山侯에 봉해졌다. 식읍_食邑은 일만 호_一萬戶이고, 식실봉_食實封[각주:12]은 오천 호_五千戶이며, 성_姓은 국씨_麴氏라 하였다. 5세손이 성왕_成王을 도와 사직을 제 책임으로 삼아 태평 성대를 이루었고, 강왕_康王이 위_位에 오르자 점차로 박대를 받아 금고_禁錮[각주:13]에 처해졌다. 그리하여 후세에 나타난 자가 없고, 모두 민간에 숨어살게 되었다. 위_魏나라 초기에 이르러 순_醇의 아비 주_酎[각주:14]가 세상에 이름이 알려져서, 상서랑_尙書郞 서막_徐邈[각주:15]과 더불어 서로 친하여 그를 조정에 끌어들여 말할 때마다 주_酎가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각주:16]. 마침 어떤 사람이 임금께 아뢰기를,

 "막이 주와 함께 사사로이 사귀어, 점점 난리의 계단을 양성합니다[각주:17]."

하므로, 임금께서 노하여 막을 불러 힐문[각주:18]하였다. 막이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기를,

 "신이 주를 좇는 것은 그가 성인_聖人의 덕이 있삽기에 수시로 그 덕을 마셨습니다."

하니, 임금께서 그를 책망하였다. 그 후에 진_晋이 이어 일어서매, 세상이 어지러울 줄을 알고 다시 벼슬할 뜻이 없어, 유령_劉伶, 완적_阮籍의 무리들과 함께 죽림_竹林에서 노닐며 그 일생을 마쳤다.

 순_醇의 기국_器局[각주:19]과 도량은 크고 깊었다. 출렁대고 넘실거림이 만경 창파_萬頃蒼波와 같아 맑게 하여도 맑지 않고, 뒤흔들어도 흐리지 않으며, 자못 기운을 사람에게 더해 주었다. 일찍이 섭법사_葉法師[각주:20]하였다. 드디어 유명하게 되었으며, 호_號를 국처사_麴處士라 하였다. 공경_公卿, 대부_大夫, 신선_神仙, 방사_方士[각주:21] 들로부터 머슴, 목동, 오랑캐, 외국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향기로운 이름을 맛보는 자는 모두가 그를 흠모하여, 성대_盛大한 모임이 있을 때마다 순_醇이 오지 아니하면 모두 다 추연[각주:22]하여 말하기를,

 "국처사가 없으면 즐겁지가 않다."[각주:23]

하였다. 그가 당시 세상에 애중_愛重됨이 이와 같았다.



태위_太尉 산도_山濤가 감식_鑒識이 있었는데, 일찍이 그를 말하기를,

 "어떤 늙은 할미가 요런 갸륵한 아이를 낳았는고. 그러나 천하의 창생_蒼生을 그르칠 자는 이 놈일 것이다."

라 하였다. 공부_公府에서 불러 청주 종사_靑州從事를 삼았으나, 격_鬲의 위가 마땅한 벼슬자리가 아니므로, 고쳐 평원 독우_平原督郵를 시켰다. 얼마 뒤에 탄식하기를,

 "내가 쌀 닷 말 때문에 허리를 굽혀 향리_鄕里 소아_小兒에게 향하지 않으리니, 마땅히 술 단지와 도마 사이에서 서서 담론할 뿐이로다."

라고 하였다. 그 때 관상을 잘 보는 자가 있었는데 그에게 말하기를,

 "그대 얼굴에 자줏빛이 떠 있으니, 뒤에 반드시 귀하여 천종록_千鍾祿을 누릴 것이다. 마땅히 좋은 대가를 기다려 팔라."

라고 하였다. 진후주_陣候主 때에 양가_良家의 아들로서 주객 원외랑_主客員外郞을 받았는데, 위에서 그 기국을 보고 남달리 여겨 장차 크게 쓸 뜻이 있어, 금구로 덮어 빼고 당장에 벼슬을 올려 광록 대부 예빈경_光祿大夫禮賓卿으로 삼고, 작_爵을 올려 공_公으로 하였다. 대개 군신_君臣의 회의에는 반드시 순_醇을 시켜 짐작_斟酌하게 하나, 그 진퇴_進退와 수작이 조용히 뜻에 맞는지라, 위에서 깊이 받아들이고 이르기를,

 "경_卿이야말로 이른바 곧음_直 그것이고, 오직 맑구나. 내 마음을 열어 주고 내 마음을 질펀하게 하는 자로다."

라 하였다. 순_醇이 권세를 얻고 일을 맡게 되자, 어진 이와 사귀고 손님을 접함이며, 늙은이를 봉양하여 술·고기를 줌이며, 귀신에게 고사하고 종묘_宗廟에 제사함을 모두 순_醇이 주장하였다. 위에서 일찍 밤에 잔치할 때도 오직 그와 궁인_宮人만이 모실 수 있었고, 아무리 근신_近臣이라도 참예하지 못하였다. 이로부터 위에서 곤드레만드레 취하여 정사를 폐하고[각주:24], 순은 이에 제 입을 재갈 물려 말을 하지 못하므로 예법_禮法의 선비들은 그를 미워함이 원수 같았으나, 위에서 매양 그를 보호하였다. 순은 또 돈을 거둬들여 재산 모으기를 좋아하니, 시론_時論이 그를 더럽다 하였다.

 위에서 묻기를,

 "경_卿은 무슨 버릇이 있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옛날에 두예_杜預는 좌전_左傳의 벽_癖이 있었고, 왕제_王濟는 말_馬의 벽이 있었고, 신_臣은 돈 벽이 있나이다."

하니, 위에서 크게 웃고 권고_眷顧가 더욱 깊었다. 일찍이 임금님 앞에 주대_奏對할 때, 순이 본래 입에 냄새가 있으므로 위에서 싫어하여 말하기를,

 "경이 나이 늙어 기운이 말라 나의 씀을 감당치 못하는가."

라 하였다. 순이 드디어 관_冠을 벗고 사죄하기를,

 "신이 작_爵을 받고 사양하지 않으면 마침내 망신_亡身할 염려가 있사오니, 제발 신_臣을 사제_私第에 돌려주시면, 신_臣은 족히 그 분수를 알겠나이다."

라고 하였다. 위에서 좌우_左右에게 명하여 부축하여 나왔더니, 집에 돌아와 갑자기 병들어 하루 저녁에 죽었다. 아들은 없고, 족제_族弟 청_淸[각주:25]이, 뒤에 당_唐나라에 벼슬하여 벼슬이 내공봉_內供奉에 이르렀고, 자손이 다시 중국에 번성하였다. 사신_史臣이 말하기를,

 "국씨_麴氏의 조상이 백성에게 공_功이 있었고, 청백_淸白을 자손에게 끼쳐 창_鬯[각주:26]이 주_周나라에 있는 것과 같아 향기로운 덕_德이 하느님에까지 이르렀으니, 가히 제 할아버지_祖의 풍이 있다 하겠다. 순_醇이 들병[각주:27]의 지혜로 독 들창_甕爽[각주:28]에서 일어나서, 일찍 금구_金毆[각주:29]의 뽑힘을 만나 술단지와 도마에 서서 담론하면서도 가_可를 들이고 부_否를 마다하지 아니하고, 왕실_王室이 미란_迷亂[각주:30]하여 엎어져도 붙들지 못하여 마침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거원_巨源[각주:31]의 말이 족히 믿을 것이 있도다."라고 하였다.


  1. 흐뭇함, 거나함 [본문으로]
  2. 지금의 감숙성 [본문으로]
  3. 보리 [본문으로]
  4. 주나라 때 농사를 맡은 벼슬 [본문으로]
  5. 시경詩經 주송周頌 청묘지십淸廟之什 제10편 사문思文 1장 [본문으로]
  6. 절구질로 보리의 겉껍질을 제거하는 과정을 묘사한 것 같습니다. [본문으로]
  7. 자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세속을 따름 [본문으로]
  8. 보리로 고두밥을 짓는 과정. 보리로 술을 만들기 위한 전단계인 당화과정이지요. [본문으로]
  9. 교양이 있고, 도량이 크며 얌전함 [본문으로]
  10. 공이 있는 집에 나라에서 세워 주는 문 [본문으로]
  11. 천자가 동지에 하늘에 제사 지내던 곳 [본문으로]
  12. 실봉과 식읍. 실봉은 봉읍에서 바치는 조세를 실제로 받을 수 있는 식봉 [본문으로]
  13. 신분에 허물이 있어 벼슬에 쓰지 않음. [본문으로]
  14. 전국술, 군물을 타지 아니한 진국의 술 또는 세 번 빚은 술. [본문으로]
  15. '태평광기'에 나오는 인물로 술을 먹으면 정신이 아득해져서 '천천히'란 뜻으로 '막'을 이름으로 함. [본문으로]
  16. 만나기만 하면 술자리. [본문으로]
  17. 정신이 아득해져 늘 술에 취해 있 [본문으로]
  18. 잘못된 점을 따져 물음 [본문으로]
  19. 사람됨의 그릇 크기 [본문으로]
  20. [/footnote]에게 나아가 온종일 담론할 때, 일좌_一座가 모두 절도_絶倒[footnote]'대단히 감탄함'이라고 해석한 곳이 많은데, '기절하여 넘어짐' 즉 술을 먹고 취하여 다들 뻗었다는 얘기가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본문으로]
  21. 신선의 술법을 닦는 사람 [본문으로]
  22. 처량하고 구슬픈 모양 [본문으로]
  23. 잔치에 술이 빠지면 흥이 나지 않아 처량하고 구슬퍼지지요. [본문으로]
  24. 임금이 술에 절어 정사를 살피지 않 [본문으로]
  25. 청주(淸酒) [본문으로]
  26. 울창주(鬱鬯酒) , 자주(紫酒) . 찰기장과 향초를 섞어 향기가 나도록 만든 술로 제사의 강신降神에 쓴다 [본문으로]
  27. 술동이 [본문으로]
  28. 항아리 뚜껑 [본문으로]
  29. 금 또는 쇠로 만든 사발이나 단지. [본문으로]
  30. 정신이 흐러멍덩하여 어지러움 [본문으로]
  31. 중국 진나라의 높은 선비로 죽림 칠현의 한 사람인 산도(山禱)의 자(子). 공정한 성풍에 덧붙여 인물을 보는 감식안이 있어 그가 골라 뽑은 인물은 모두 한 시대에서 빼어난 선비였다고 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