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종류

[종류] 알리아니꼬 델 불투레(Aglianico del Vulture)

까브드맹 2018. 8. 9. 08:00

불투레 산과 알리아니꼬 델 불투레 와인

1. 이탈리아 남부의 와인

전국에서 와인을 생산한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이탈리아는 곳곳에 와인 산지가 있습니다. 북으로 피에몬테(Piemonte)부터 남으로 시칠리아(Sicilia)까지 와인을 생산하지 않는 지역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국내에선 남부의 시칠리아를 제외하고 대부분 북부와 중부 지역의 와인이 유명했지 남부의 4개 지역인 깜파니아(Campania), 바실리카타(Basilicata), 뿔리아(Puglia), 깔라브리아(Calabria) 와인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죠. 해외에서도 이탈리아 남부 지역 와인은 비교적 인기가 없습니다.

이탈리아 남부는 고대 그리스인이 식민지를 건설하고 와인을 만든 곳입니다. 그래서 이탈리아 어느 지역보다 오랜 와인 역사를 가졌죠. 그런데 왜 인기가 없을까요? 이곳 와인의 평가가 낮은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19세기 중반부터 유럽의 포도밭을 결딴냈던 필록세라(phylloxera)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유럽 와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대사건을 일으킨 필록세라는 포도나무 뿌리에서 나무 액을 빨아먹는 진딧물 같은 해충입니다. 이 벌레는 주로 땅속의 뿌리에 서식하므로 살충제를 뿌려도 약이 흙에 가로막혀 효과가 별로 없었죠. 유럽의 포도 재배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온갖 수단을 다 써봤지만, 필록세라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포도밭을 초토화하며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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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필록세라가 살기 싫어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땅에 모래가 많이 섞인 곳과 날씨가 너무 무더운 곳이었죠. 유럽에서 이 조건을 갖춘 곳이 북쪽은 프랑스 루아르(Loire) 강 하류였고, 남쪽은 스페인 남부와 이탈리아 남부였습니다. 그래서 이곳엔 필록세라의 침략(?)을 피해간 올드 바인(Old Vine)이 아직 남은 것을 볼 수 있죠.

필록세라가 포도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와인 생산량도 엄청나게 줄어들었지만, 와인은 유럽인의 식탁에 빠질 수 없는 술이므로 피해를 보지 않은 지역에선 최대한 많은 와인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품질은 문제가 아니었죠. 오로지 양, 양, 양이었죠. 남부 이탈리아의 와인 생산지도 이런 상황은 마찬가지였고, 곧 조잡한 향과 맛이 나는 벌크 와인의 대량 생산지가 되었습니다.

미국종 포도나무의 뿌리에 유럽종 포도나무의 줄기를 접붙여서 필록세라의 공격을 버틸 방법을 찾으면서 유럽의 전통 와인 생산지들은 부활합니다. 특히 프랑스는 엉망이 된 와인 산업을 정비하고 소비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품질을 가진 와인을 유통하려고 AOC 법을 제정했죠. 이로 인해 원래 역사와 전통이 있는 데다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품질을 복구한 프랑스 와인은 옛 위치를 회복합니다. 이어서 다른 유명 와인 생산지도 포도밭을 복구하고 품질 관리에 힘쓰면서 다시 예전의 명성을 갖게 되죠. 여기에 필록세라의 공격을 받지 않거나 큰 피해를 당하지 않은 신세계 와인도 가격보다 좋은 품질을 무기로 와인 시장에 등장하는 상황까지 벌어집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유럽 전역에 벌크 와인을 대량 공급하던 이탈리아 남부와 스페인 남부 지역은 그동안 만들어놓은 와인 산업 구조를 갑자기 바꿀 수 없었습니다. 자금이 부족하고 예전처럼 품질 낮은 와인을 만들어도 시장에서 계속 팔렸기 때문이지만,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정치적 혼란으로 와인법 정비와 와인 산업의 구조 조정이 늦어진 것도 큰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선 단위당 수확량을 줄이고 와인 품질을 끌어올리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지만, 두 지역은 여전히 큰 변화가 없는 상황이 지속하였죠. 이렇게 되어 와인 산업의 암흑기에 유럽인을 위해 열심히 와인을 공급했던 스페인과 남부 이탈리아의 와인 산지는 싸구려 와인을 생산하는 낙후한 지역이란 오명을 한동안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이곳들은 과거의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와인 명산지로 탈바꿈하는 중입니다. 특히 스페인의 발전은 매우 눈부시죠. 토종 포도나 모나스트렐(Monastrell)처럼 뛰어난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로버트 파커 같은 손꼽히는 와인 평론가나 와인 스펙테이터 같은 와인 전문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스페인만큼은 아니지만, 남부 이탈리아의 4개 주도 발전을 거듭해서 최근엔 많은 와인 전문가와 애호가가 이곳의 와인에 관심을 기울이죠.

2. 알리아니꼬 델 불투레 DOCG

바실리카타의 위치
(아래쪽의 빨간색 지역이 바실리카타입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2/29/Basilicata_in_Italy.svg/815px-Basilicata_in_Italy.svg.png)

남부 이탈리아 4개 주 중의 하나인 바실리카타는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반도의 앞축과 뒷굽 사이에 있습니다. 4개 주 중에서 와인 생산량이 제일 적죠. 가장 유명한 와인은 그리스인을 의미하는 "엘레니코(ellenico)"의 몰락이란 재미난 뜻을 가진 알리아니꼬(Aglianico) 포도로 만드는 알리아니꼬 델 불투레(Aglianico del Vulture) DOCG입니다. 다른 많은 이탈리아 와인의 작명법으로 짐작할 수 있듯 알리아니꼬 델 불투레는 바실리카타 지방의 불투레 산(Mount Vulture) 부근에 퍼진 화산토(Volcanic soils)에서 재배한 알리아니꼬 포도로 만듭니다. 1971년에 DOC 등급을 받았고, 2011년에는 DOCG 등급으로 승격했죠. 현재는 바실리카타의 유일한 DOCG 와인으로 불투레 지역에 속한 14개 마을에서 생산합니다. 마을 이름은 아래와 같습니다.

불투레 지역에 속한 14개 마을의 위치
(이미지 출처 : https://ilvinodatavola.files.wordpress.com/2011/07/aglianicovulture.gif)

① 리오네로 불투레(Rionero in Vulture) ② 바리레(Barile), 라폴라(Rapolla) ③ 리파칸디다(Ripacandida) ④ 지네스트라(Ginestra) ⑤ 마스키토(Maschito) ⑥ 포렌자(Forenza) ⑦ 아체렌자(Acerenza) ⑧ 멜피(Melfi) ⑨ 팔라쪼 산 제르바지오(Palazzo San Gervasio) ⑩ 베노자(Venosa) ⑪ 라벨로(Lavello) ⑫ 아뗄라(Atella) ⑬ 빤지(Banzi) ⑭ 젠자노 디 루까니아(Genzano di Lucania)

알리아니꼬 델 불투레는 굳건한 탄닌이 들어간 풍부한 구조감을 갖췄고 초콜릿과 체리 향이 나옵니다. 숙성이 덜 되었을 때는 다소 투박하고 거칠지만, 숙성하면서 부드러운 탄닌과 비단 같은 구조감을 갖는 것이 특징이죠. 병에서 6년에서 20년까지 발전할 수 있는 숙성 잠재력이 있습니다. 불투레 지역에선 알리아니꼬를 재배하는 포도밭이 절반을 넘으며, 알리아니꼬의 우수한 품질은 앞으로 이곳 와인의 성공에 견인차가 될 겁니다.

<참고 자료>

1. 휴 존슨, 젠시스 로빈슨 저, 세종서적 편집부, 인트랜스 번역원 역, 와인 아틀라스(The World Atlas of Wine), 서울 : 세종서적(주), 2009

2. 영문 위키피디아 알리아니코 델 불투레 항목

3.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