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와인 종류

[종류] 셰리(Sherry)

까브드맹 2018. 3. 19. 15:30

다양한 셰리 와인들

1. 셰리(Sherry)?

셰리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Andalucia) 지방의 카디즈(Cadiz) 일대에서 생산하는 유명한 강화 와인입니다. 강화 와인은 발효 중이거나 발효가 끝난 후에 과실주를 증류해서 만든 브랜디를 넣어 알코올 도수를 높인 와인을 말합니다. 이렇게 와인의 알코올 도수를 높이는 것은 여름에 뜨거운 날씨가 이어지는 스페인 남부나 오랫동안 항해하는 배에서 와인이 변질되지 않게 하려는 거죠. 그래서 아메리카를 향해 출항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배에도 셰리를 실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청주에 소주를 섞어서 알코올 도수를 높인 과하주(過夏酒)가 있습니다. 여름을 넘기는 술이란 뜻으로 셰리와 같은 원리를 이용한 것입니다. 

이베리아 반도 남부에서 강화 와인을 처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오랫동안 이곳을 통치했던 이슬람 세력이 전파한 증류 기술이 훗날 강화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적 토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카디즈 지역의 셰리 생산 중심지는 '헤레즈 데 라 프론테라(Jerez de la Frontera)'인데, 셰리라는 명칭은 이곳에서 유래했습니다. 헤레즈(Jerez)라는 이름이 영국에서 제레즈(Xeres), 셰리(Sherry) 순으로 발음이 변했다고 합니다.

 

 

2. 셰리 와인에 사용하는 포도 품종

셰리는 팔로미노(Palomino)와 페드로 시메네즈(Pedro Ximenez)라는 두 종류의 청포도로 만듭니다. 팔로미노는 껍질이 얇고 잘 썩을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 키워서 와인을 만들면 개성 없고 밋밋한 맛이 나옵니다. 그래서 오로지 셰리 생산에 쓰려고 카디즈 일대에서만 재배하죠. 또 다른 청포도인 페드로 시메네즈는 그냥 사용하지 않고 건초 매트 위에서 건포도처럼 말린 다음 발효하므로 와인에서 말린 과일 향이 날 뿐만 아니라 아주 달고 시럽처럼 진한 질감을 가졌습니다. 와인 색도 검은빛에 가깝죠. 페드로 시메네즈 셰리는 나중에 드라이한 일반 셰리에 단맛을 첨가하려고 사용하기도 합니다.

 

 

3. 숙성 : 솔레라 시스템

팔로미노로 만드는 셰리는 기본적으로 피노(Fino)와 올로로쏘(Oloroso)로 나뉩니다. 두 종류의 셰리를 바탕으로 만든 것까지 포함해서 크게 6종의 셰리가 있습니다. 

• 피노(Fino)

아몬띠야도(Amontillado)

만자니아(Manzanilla)

올로로쏘(Oloroso)

크림 셰리(Cream Sherry)

아마로쏘(Amoroso)

브라운 셰리(Brown Sherry) : 페드로 시메네즈 셰리(Pedro Ximenez Sherry)

이중 아몬띠야도와 만자니아는 피노를 바탕으로 만들며, 크림 셰리와 아마로쏘는 올로로쏘를 바탕으로 만듭니다. 피노와 올로로쏘는 팔로미노로 만든 화이트 와인의 발효가 끝난 다음 숙성할 때 알코올 도수를 어느 정도까지 높일 것인지에 따라 나뉩니다. 

플로르의 모습
(플로르의 모습. https://en.wikipedia.org/wiki/Sherry#/media/File:FLOR-ValdiviaJerez59.jpg)

팔로미노 와인을 오크통에서 숙성하면 표면에 '플로르(Flor)'라는 야생 효모의 막이 생깁니다. 야생 효모 막은 토양과 기후에 따라 저절로 생기며 전 세계에서 헤레즈와 프랑스 쥐라(Jura),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발생합니다. 또한, 생산자가 똑같은 해에 똑같은 품종으로 똑같이 발효해도 오크통마다 다르게 생겨나며 사람이 양을 조절할 수 없습니다. 보통 여름철에 가지치기를 많이 해서 햇빛을 충분히 받은 포도로 와인을 만들면 많이 생기고, 어린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에선 적게 생긴다고 합니다. 플로르가 생긴 와인 중에서 플로르의 양이 많은 것을 피노로 만듭니다. 피노는 플로르가 없어지지 않도록 브랜디를 조금만 부어서 알코올 도수를 15~15.5%로 강화합니다. 올로로쏘는 플로르의 양이 적은 것으로 만드는데 알코올 도수를 17~18% 정도로 강화합니다. 이렇게 하면 플로르가 죽어서 플로르막이 완전히 사라지죠.

솔레라 시스템의 구조
(솔레라 시스템의 구조.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d/db/Solera-systeem.jpg)

브랜디로 알코올을 강화한 셰리 와인은 종류별로 숙성됩니다. 이때 솔레라(Solera) 시스템이라는 셰리 와인 특유의 혼합 숙성 장치를 사용합니다. 솔레라 시스템은 숙성할 때 가장 오래된 와인을 밑바닥에 두고, 다른 해의 와인을 빈티지 순서대로 차례차례 위층에 쌓는 방법입니다. 맨 밑바닥에 놓는 가장 오래된 와인을 솔레라라고 하며 장소(Ground)라는 뜻입니다. 바로 위층은 1 크리아데라(1e Criadera), 그 위층은 2 크리아데라((2e Criadera)가 되죠. 보통 피노는 3~4층을 쌓아 올리며 올로로쏘는 7~8층을 쌓아 올리기도 합니다. 

와인을 병에 담을 땐 맨 아래층에 있는 통에서 와인을 뽑아서 담고 줄어든 만큼 두 번째 층에서 뽑아서 보충합니다. 마찬가지로 두 번째 층에서 빠진 만큼 세 번째 층에서 뽑아서 보충하죠. 와인을 뽑을 때는 뽑는 횟수와 양을 생산자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피노는 연간 4회에 걸쳐 1/3만 뽑을 수 있으며, 올로로쏘는 연간 2회에 걸쳐 1/4만 뽑을 수 있도록 법규로 통제하죠. 이렇게 서로 다른 해의 와인이 혼합되므로 셰리는 빈티지가 없고 개별 포도밭 이름도 표시하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4. 셰리의 종류

1) 피노(Fino)

헤레즈 데 라 프론테라에서 팔로미노 포도로 만든 와인의 표면에 플로르라는 야생 효모를 내려앉게 해서 향이 배도록 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알코올은 14.5~15.5%까지만 강화합니다. 그 이상 알코올 도수를 높이면 플로르가 죽기 때문이죠. 숙성 기간은 보통 6년입니다.

피노는 드라이하고 섬세하면서 복합적인 향이 납니다. 오랫동안 오크통에서 숙성하지만, 플로르가 와인과 산소의 접촉을 차단해서 산화하지 않으므로 연한 담황색을 띱니다. 플로르의 향이 배면서 피노는 신선한 감귤류의 껍질 같은 향과 아몬드 향이 나오며 구운 빵과 같은 아주 독특한 향도 맡을 수 있습니다.

2) 아몬띠야도 (Amontillado) 

아몬띠야도는 피노나 만자니아 셰리로 만듭니다. 피노를 숙성한 지 6개월이 지나면 계속 피노로 둘 와인과 아몬띠야도로 만들 와인으로 나눕니다. 보통 덜 섬세하고 품질이 떨어지는 걸 아몬띠야도로 만들죠. 숙성 기간이 6년이 넘으면 브랜디를 더 부어서 알코올 도수를 17~18% 정도로 높입니다. 이러면 높은 알코올 도수를 견디지 못한 플로르가 죽으면서 플로르 층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그동안 플로르가 막고 있어서 공기와 접촉하지 않았던 피노가 산화하기 시작합니다. 피노는 산화하면서 진한 호박색으로 변하고 견과류와 비슷한 풍미가 생겨납니다. 맛도 더 진해지고 무게감도 늘어나면서 풀 바디 와인으로 변하죠. 이렇게 만드는 셰리가 아몬띠야도입니다.

솔레라로 숙성이 끝난 아몬띠야도는 원래는 달지 않은 드라이 와인이지만, 특정 시장을 대상으로 판매할 땐 병에 담기 전에 페드로 시메네즈 셰리로 당도를 높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판매하는 아몬띠야도는 드라이(Dry)라고 적혀있어도 대부분 중간 정도의 당도를 가졌죠. 또 상표에 아몬띠야도(Amontillado)라고 표시하지 않은 것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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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만자니아 (Manzanilla)

헤레즈시에서 20km 정도 떨어진 산루카 데 바라메다(Sanlucar de Barrameda) 항구 주위에서 팔로미노 포도로 만드는 셰리로 제조 과정은 피노와 같습니다. 다만 헤레즈에서는 플로르가 봄과 가을에만 활동하지만, 산루카 데 바라메다는 낮은 기온과 높은 습도는 플로르가 헤레즈나 엘 푸에르토 데 산타 마리아(El Puerto de Santa Maria) 지역보다 더 왕성하게 피어나게 하고 일 년 내내 활동하도록 해줍니다. 따라서 다른 곳보다 플로르 막이 두껍게 형성되어 와인을 산소로부터 더 잘 보호하고 결과적으로 다른 곳의 피노 셰리보다 신선하고 섬세한 풍미가 있도록 해주죠. 만자니아는 매우 드라이하고 마실 때 톡 쏘는 듯한 맛이 납니다. 종종 짭짤한 풍미가 나는데 스페인 사람들은 과달키비르(Guadalquivir)강이 바다와 만나는 어귀에서 만자니아를 만들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믿습니다. 스페인어로 카모마일 차를 만자니아라고 부르는데, 와인의 풍미가 카모마일 차를 떠올린다고 해서 같은 이름을 얻은 것입니다.

만자니아의 풍미가 가장 좋은 온도는 섭씨 7~10도 정도이므로 약간 차갑게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함께 먹을 음식으로는 올리브와 아몬드, 혹은 스페인 생햄인 하몽(Jamon)이나 해산물로 만든 타파스가 좋습니다. 만자니아는 피노처럼 섬세하므로 병에 담은 지 1년이 넘지 않은 것을 구매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 번 병을 따면 곧 산화하므로 개봉한 후에는 한 번에 다 마시는 것이 가장 좋죠. 만약 다 마시지 못해서 보관해야 한다면 코르크로 막아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됩니다. 그러면 약 1주일 정도는 괜찮다고 합니다. 만자니아의 종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만자니아 파사다(Manzanilla Pasada)

일반 만자니아는 보통 6년~7년 정도 숙성하지만, 파사다는 좀 더 오래 숙성합니다. 숙성 기간이 7년을 넘어가면 와인 속의 영양분을 모두 소모한 플로르의 막이 희미해지기 시작합니다. 파사다는 아몬띠야도가 되기 직전까지만 숙성하다가 병에 담은 것입니다.

② 만자니아 아몬띠야도(Manzanilla Amontillada)

만자니아 파사다와 비슷하지만, 일부 셰리는 아몬띠야도 보다 품질이 더 좋아지도록 최대 12년 동안 숙성합니다.

③ 만자니아 올로로싸(Manzanilla Olorosa)

피노가 아니라 만자니아로 만드는 올로로쏘입니다. 처음부터 플로르가 생기지 않도록 알코올 도수를 높게 하며 장기 숙성합니다. 

④ 헤레즈 코르타도(Jerez Cortado) 

팔로 코르타도(Palo Cortado)는 플로르를 짧게 유지하다가 주정을 강화해서 제거한 다음 아몬띠야도처럼 숙성해서 만드는 셰리입니다. 그래서 올로로쏘와 특징이 비슷하죠. 헤레즈 코르타도는 만자니아로 만드는 팔로 코르타도 스타일의 셰리입니다.

4) 페일 크림 셰리(Pale Cream Sherry)

단맛을 좋아하는 영국인의 입맛에 맞게 만든 것으로 피노에 포도즙을 넣어서 단맛이 나도록 한 것입니다.

위의 4가지 셰리는 기본적으로 플로르가 발생하도록 해서 플로르의 풍미가 와인에 스며들도록 한 것입니다.

5) 올로로쏘(Oloroso)

올로로쏘는 처음부터 17.5%까지 알코올 도수를 높여서 플로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이러면 와인은 숙성과 동시에 산화하면서 강한 풍미가 생기게 되죠. 그래서 세이버리(Savoury), 미티(Meaty), 너티(Nutty)한 풍미가 있게 됩니다. 맛이 강한 올로로쏘는 대개 페드로 시메네즈 셰리를 넣어서 단맛이 나게 하는데, 이러면 건포도나 말린 자두 풍미도 나게 되죠. 엘 푸에르토 데 산타 마리아(El Puerto de Santa Maria)에서 만든 것은 올로로쏘 델 푸에르토(Oloroso del Puerto), 만자니아로 만든 것은 만자니아 올로로싸(Manzanilla Olorosa)라고 합니다.

6) 크림 셰리(Cream Sherry)

올로로쏘에 페드로 시메네즈 셰리를 많이 넣어서 달게 만든 것으로 진한 금빛입니다.

7) 아모로쏘(Amoroso)

역시 올로로쏘에 페드로 시메네즈 셰리를 넣어서 만든 것으로 금빛이 나며 당도는 아몬띠야도와 크림 셰리의 중간 정도입니다.

8) 브라운 셰리(Brown Sherry)

브라운 셰리(Brown Sherry), 또는 사용한 포도의 이름을 딴 페드로 시메네즈(Pedro Ximenez Sherry, P.X 셰리)는 일반 셰리와 다릅니다. 우선 다른 셰리 와인은 팔로미노(Palomino) 포도로 양조한 화이트 와인을 바탕으로 만들지만, 페드로 시메네즈는 페드로 시메네즈 포도로 만듭니다. 와인을 만들 땐 수확한 페드로 시메네즈를 그냥 사용하지 않고 햇볕에 말려서 수분을 줄이고 당분 함량을 높여서 씁니다. 말려서 당도가 아주 높아진 포도로 와인을 만들다가 중간에 브랜디를 부어서 발효를 멈추게 하죠. 이렇게 만들면 발효가 멈췄을 때 와인에 잔당이 많이 남아서 맛이 매우 달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셰리는 발효가 끝난 다음 강화 과정을 거치지만, 페드로 시메네즈는 포트(Port) 와인처럼 발효 도중에 강화하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그 후엔 다른 셰리 와인처럼 숙성하죠. 이렇게 만든 페드로 시메네즈 셰리는 진한 마호가니나 초콜릿 색을 띠어 거의 검은 색에 가깝고, 무화과와 말린 자두, 건포도 같은 말린 과일 향이 강하게 나옵니다. 또 아주 달면서 시럽처럼 부드럽고 진한 무게감이 있게 되죠.

달콤한 페드로 시메네즈 와인은 디저트 와인으로 마시기도 하고, 올로로쏘 둘체(Oloroso Dulce)와 커머셜 아몬띠야도(Commercial Amontillado), 페일 크림(Pale Cream)처럼 미디엄, 혹은 스위트한 셰리를 만들 때 넣기도 합니다.